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유 Aug 22. 2024

처서가 나를 살린 이유

절기는 기다림이다

엄마?

응, 이제 학교 가?

응, 엄마! 나 어제 정말 오랜만에 시원하게 꿀잠 잤다. 그래서 오늘 기분 좋아.

, 그래?  오고  시원해졌지?

 시원해졌다기보다 일단 중간에  번도  깨고  잤어. 어제까지만 해도 더워서 자면서도 힘들고 일어나면 피곤하그랬거든. 너무 더울 땐 중간에 깨서 샤워하고  적도 있었고. 근데 어제는 그런  없었어.

오, 다행이네. 엄마도 새벽에 선풍기 끄고 잤어.

나는 선풍기는 안 껐는데 그래도 확실히 처서라고 다른 것 같아.

꼬맹이가 처서는 어떻게 알았대?

나 꼬맹이 아니거든. 아니 근데 어떻게 몰라. 인터넷 들어가면 처서라고 뜨잖아.

그래도 애늙은이 같아.

내가 처서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러면서 더위를 참았다고. 처서만 지나면 달라질 거야, 하면서.

처서는 기다림이었구먼.

응, 기다린 보람이 있어.

그래, 이제 조금씩 더위가 사그라들 거야.

사실 엄마가 말복 지나면 좀 나아질 거다, 입추 지나면 선선하다, 그랬는데 딱히 아니었거든. 근데 처서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

와, 양치기 소년 될 뻔했네. 처서가 날 살렸어. 아무튼 올여름 정말 고생 많았어.

응, 엄마도 고생 많았어.


에어컨 없이 올여름 정말 고생 많았다. 내년에는 아무래도 에어컨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살만 하니까 에어컨 생각이 없어졌다. 언론에서는 처서매직은 없다고, 처서가 배신했다고, 열대야가 계속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정말 다른 걸 느끼고 있다. 그 이유는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에어컨이 없어서 아주 미세한 온도 변화와 바람의 변화를 감지하기 때문인 거 같다. 특히 새벽에 산책해 보면 공기가 다르다. 이것이 에어컨 없이 견뎌온 보상인 건가, 싶다.


이전 25화 엄마, 내 말 잘 듣고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