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멀리 있는 친구가 책을 보내주겠다고 책을 골라보라고 하기에 내가 골라서 읽는 건 지금도 많이 하고 있으니 네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이런 책이 도착했다.
: 처음 듣는 이야기
응? 왜? 책의 부제처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궁금해서 선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나라 도서관이 저자와 같은 생각으로 지었나 생각하곤 했다. 요즘엔 좋은 위치에 있은 도서관도 많지만 내가 경험한 많은 도서관들은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저 멀리 저 구석, 심지어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산 밑에 있다. 도서관에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 없이는 오지 말라는 것 같다. 물론 예산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영국의 ‘아이디어 스토어’처럼 기존의 도서관 두 개를 없애고 작은 하나를 짓더라도 유동인구 많은 곳, 사람들이 찾아가기 쉬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가. ‘아이디어 스토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시장 보러 갔다가 가게에 가듯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인 우치다 다쓰루는 도서관은 읽고 싶은 책을 빌리러 가는 장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기능도 있지만 최대의 기능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무지를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읽은 적 없는 책, 읽을 일 없는 책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유한성과 앎의 무한성을 보여주는 공간임과 동시에 겸손함을 느끼는 공간으로서 도서관은 아무래도 사람이 없어야 좋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의도치 않게 어린 딸에게 저자가 말하는 도서관 경험을 조기에 선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딸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딸과 함께 거의 매일 도서관에 갔다. 책을 보러 간 것도 있지만 주된 목적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쾌적해서 갔다. 도서관은 그나마 아기와 함께 갈 수 있는 안전하고 특히 여름엔 쾌적하면서 게다가 공짜인 공간이다. 그런 도서관에서 우리는 책을 읽기보다는 서가 사이를 걸어 다녔다. 가끔 숨바꼭질도 하고, 서가 사이로 까꿍놀이도 했다. 가끔 뭐에 꽂혀서 서로 어떤 책을 끄집어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책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드나들기 시작한 도서관을 중3이 되어서도 매일 간다. 학원 대신 도서관에 가는 셈이다. 학원을 안 다니니까 같이 놀 친구도 없고 혼자서 딱히 갈 데가 없으니까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 가서 꼭 책 읽고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한창 더운 날에는 시원하니까 가고, 비 오면 비 피하러도 간다. 어릴 때 보던 만화책도 보고, 사람들은 뭐하나, 무슨 책을 읽나 구경도 하고, 더러는 공부도 하고, 책을 보다가 잠을 자기도 한다.(책 속에서 책 베고 잠깐 자는 게 꽤 좋다고 한다) 딸에게는 친숙하고 편한 친구 같은 공간인 셈이다.
딸이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엄마된 자, 당연히 흐뭇하다. 친구들은 다 학원에 가고, 집에 가도 아무도 없어서 외로운 딸을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환대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우치다 다쓰루가 말하듯 책 좀 읽었다는 딸이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이렇게나 많구나, 세상에는 공부할 게 많구나, 무지의 세계를 느끼고 학구열에 불타오른다면야 엄마된 자,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