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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Sep 20. 2024

퇴근할 때 집에 가져가는 것

엄마는 집에 책 가져오는 사람

태어나자마자 그림책에 침을 바르고 심지어 뜯어먹고, 젖 먹으면서 내 책에 또 침 바르고 내 책을 뺏고 숨기고 하면서 딸은 어릴 때 책의 맛(!)을 알아버렸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매일 산책 삼아 도서관에  덕분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친숙해졌고, 중학생이  지금도 학원 대신 도서관에 간다.(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랑가 모르겠지만 빌게이츠처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건 하버드 졸업장이 아니라 동네 도서관이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육아휴직하는 동안 본의 아니게 그리고 매우 의도한 끝에 아이가 책과 친숙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분명히 성공한  같다. 그런데 출근하면서 아이와 보내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졌다.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을 하면서 일이 너무 바빴다. 딸이 깨기 전에 출근하여 잠들어 있을  퇴근하여 얼굴을   날도 많았다. (어느 날 딸이 나한테 엄마가 에로스야?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친구 집에서 만화그리스로마신화를 영접하여 에로스와 프시케 스토리를 고 한 얘기였다!)


날이 갈수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쌓여갔다. 아이에게 시간이 아닌 돈으로 뭔가 해주고 싶은 심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옛날 아빠들이 아이랑  놀아주면 장난감이나 간식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돈을 쓴 곳은 책이다.


바쁜 나에게 그림책을 고르는 시간은 휴식이기도 했다. 당시 회사가 대형서점과 가까워서 점심시간에 나가 사 올 때도 있었고, 바쁠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책을 집으로 배달시키지 않고 회사로 주문해서 퇴근할  내가 직접 들고 들어갔다. 엄마가 빈손으로 오지 않고 뭔가 들고 왔다고 생색도 내고도 싶고, 엄마는 책을 고 다니는 사람으로 조금 고상하게? 각인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어릴  주로 그림책이었으니까 늦게 퇴근해서 오더라도 읽어주기에 부담이 없었다. 거의  시간에 집에 도착하면  표지만 보여주고 잠자리에 누워서 어떤 내용인지 상상해 보는 식으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미 잠들어 있을 때는 아이 머리맡에 그림책을 놓아두었는데 그렇게  쌓아두었다가 주말에 몰아서 읽기도 했다. (물론 나 없이도 아이가 먼저 책에 침을 발라두곤 했다) 일주일에 2권만 사도  달이면 십만  ,  년이면 백만  돈이 훌쩍 넘어간다. 회사에서 나오는 복지포인트 전액을  사는데 썼다. 우리 형편에  지출이었지만 꾸준한 콘셉트 유지를 위해 막대한 재정 투입했고 엄마는 책을 가져오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었다.


엄마, 오늘은 무슨 책을 가져왔어?


그 말이 그렇게 좋았다. 내가 퇴근하면 나에게 달려들어 책을 찾곤 했다. 가끔 나를 기다리는 건지 책을 기다리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렇게 책을 기다리는 기쁨을 누렸고, 지금도 가끔 아이에게  책을 산다. 물론 지금은 어릴 때보다 약발이 떨어졌다. 옛날엔 백발백중이었다면 지금은 겨우 3 타율이나 되려나? 제법 커서 자기 취향이 생기기도 했고, 휴대폰도 손에  만큼 옛날만큼 책은 환영받지 못한다. 초심을 잃고 너무 수준 높은 책이나 읽히고 싶은 책을 들이미는 것도 문제다. 강요하면 더 하기 싫은 건 인지상정이니까 아이가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읽으라고 강요는 안(못)하고 언젠가 읽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니면 제목이라도 보고 어디서 얘기 나오면 아는 척이라도 하게 가까이 놔둔다. 내가 읽으랄 때는 안 읽다가 선생님이나 매체에서 언급하여 흥미를 갖게 되는 경우도 꽤 있다. 어쨌든 지금도 책 가져오는 엄마 콘셉트 유지를 위해 꾸준히 책을 산다. 야구에서 3할 타율이면 괜찮은 건데, 그 정도면 타율도 괜찮은 거 아닌가 자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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