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도시의 풍경
고향이 어디예요? 내 고향은 어딥니다. 요즘도 이렇게 묻고 답하나?
고향이라는 말이 왜 이리 어색한지 모르겠지만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고, 여전히 부모님과 친척들이 사는 곳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을 떠난 이후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도 못했다. 가끔 귀농 귀촌을 꿈꾸면서도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안 해봤다. 더더군다나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를 간병하러 오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고. 무릇 인생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다.
고향이라고 특별한 애정 같은 건 없다. 어디 가서 동향 사람을 만나도 큰 감흥이 없다. 뭐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명소가 있길 하나, 하다못해 이렇다 할 먹거리나 특산품 같은 것도 딱히 없는 무색, 무취, 무명의 도시에 가깝다. 고향을 떠난 이후 명절 때 잠깐 왔다가는 곳이었을 뿐이었는데, 엄마 간병으로 주말에 왔다 갔다 하다가 엄마 병이 악화되면서 아예 눌러앉게 되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20년을 꼬박 살고, 지난 1년을 더 살았으니까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낯설고 고향에서의 나는 이방인 같을 때가 많다.
그런 와중에 고향에 아예 눌러사는 삶을 상상해 본다. 엄마 간병이 장기화될 전망이고, 아빠도 늙어가고 있기에 부모 돌봄을 해야 하는데 아픈 엄마는 그렇다 치고 아빠는 이곳을 떠나 살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은 떨어져 지내지만 남편과 딸과 계속 떨어져 사는 것도 싫다. 어디선가 다 모여 함께 사는 상상을 해보는데 이곳이 그곳이 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일자리가 없어서 다들 떠나는 지방소멸도시에서 뭘 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또 아이 교육을 위해 서울로 가도 모자란 판에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딸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맞는지 모르겠다. 제일 문제는 나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약해졌다고는 하나 역마살이 끼어 전 세계를 쏘다니던 내가 이 작고 재미라고는 없는 도시에 짱 박혀 살 수 있을지.
그래도 엄연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고, 앞으로 살아갈지도 모르는 후보지로서 내 고향 제천을 탐색해보려고 한다. 말이 탐색이지 엄마 간병하는 틈틈이 숨 쉴 구멍을 찾고 싶고, 그러다 보면 또 새로운 매력이나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모르고,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정이 들어서 살고 싶을지도 모르지. 요즘 지방소멸도시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데, 진짜 처음 왔을 때 길에서 사람 구경하기 힘들고 한집 건너 한집이 비어 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진짜 소멸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한편 공동화되는 도심에 비해 외곽으로는 새 아파트가 열심히 지어지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소생하는 방법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정책 차원에서 진행되는 심폐소생술의 결과는 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도 궁금하다. 지방소멸도시는 진짜 소멸할까? 소멸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소생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지 지방소멸도시 풍경 속을 한번 들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