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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Oct 01. 2024

지방도시 콤플렉스

한번쯤 잘 살아보고 싶은 도시

큰집 새언니는 나를 ‘역전고모’라고 부른다. 우리 집이 바로 역 앞이기 때문이다. 호칭에 걸맞게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과 기차역 광장에 모여 놀거나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하지만 철길을 따라 걸으며 놀았다. 최근에 KTX개통과 함께 제천역사가 새로 지어졌는데 어릴 때 뛰어놀던 광장은 사라지고 주차장이 되었다.


내 기억에 제천이라는 도시는 교과서에 두 번 정도 등장한다. 먼저 역사교과서에는 삼한시대에 축조했다고 알려진 저수지, 의림지가 등장한다. 제천 사람에게 의림지는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적어도 십여회 이상 소풍을 갔던 곳이다. 사회 교과서에도 제천이 교통의 요지로 언급되는데 중앙선, 충북선, 태백선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중앙선 상행을 타면 원주 지나 서울(청량리)까지, 하행선을 타면 안동, 대구 지나 부산까지 간다. 태백선을 타면 정선, 태백 지나 강릉까지, 충북선을 타면 충주, 청주 지나 대전까지 갈 수 있다. 최근 생긴 KTX를 타면 서울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교통이 좋다보니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강릉으로 놀러 다니곤 했고, 지금도 기차는 나의 최애 교통수단이다.


서울에서 가깝고 그야말로 사통팔달, 전라도 빼고 전국팔도로 가는 교통이 이렇게나 좋지만 제천은 지방소멸도시 중 하나다. 그러니까 교통만 좋은 도시랄까, 교통이 좋지만 그닥 발전이나 성장을 경험하지 못하고 정체되어있다. 내가 대여섯 살 때 제천이 시로 승격됐는데 신작로라고 불리던 횡단보도에 플래카드가 붙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때 시 승격의 기준이 되는 인구가 10만 정도였다고 알고 있는데, 올해 1월 13만 명을 겨우 턱걸이했다는 기사를 봤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큰 변화 없이 소폭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이제는 감소 추세이다. 통계 수치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제천역에 내려서 조금만 걸으면 소멸의 기운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크고 번듯하게 지어진 역사가 무색하게 제천역 주변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고 주변 상권도 모두 죽어있다. 역세권이라는 말도 수도권에나 해당되는 말이고 지방에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천역에서부터 느껴지는 소멸의 기운은 시내(도심)까지 일직선상으로 뻗은 4차선 도로를 걷다 보면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비어 있을 정도로 노후화 및 공동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신기한 것은 인구는 주는데 신축 아파트는 계속 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신축 아파트들은 도심이 아닌 외곽으로 지어져 공동화된 제천 도심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형국이어서 신구 대비가 더욱 극명하게 느껴진다. 관광인구나 요즘 대두되는 생활인구라는 개념도 끌어와도 역부족이다. 제천은 관광도시로서도 존재감이 미미하고, 생활인구를 유치할 만큼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엄청 고민해보고 있다)


엄마 간병으로 내 고향 제천에 돌아왔을 때 너무 싫었다. 돌아오고 싶을 정도로 뭐 하나 딱히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살다 보니 정이 들어서 그런 건지 조금씩 이 도시에 대한 감정이 변하는 걸 느낀다. 평생 아둥바둥 살았지만 제대로 잘 살아 보지도 못하고 늙어버린 내 부모님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새집도 사고 새 차도 사고 새 옷도 사 입었는데 천상 촌티를 벗을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잘 살아보고 싶은 꿈을 간직한 동생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짠한 감정이 올라온다. 싫어서 안 살거라면 몰라도 그래도 가족인데 살아보고자 한다면 싫은 것도 좋게 보려는 마음이 발동된다.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와 콤플렉스, 현실감각은 떨어지고 시대를 앞서갈 능력은 없으면서 또 잘 살아보고 싶은 꿈은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에 동기화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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