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낚시하는 기쁨
엄마, 나 지금 ‘소년이 온다’ 읽고 있는데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 사실 단어를 몰라도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서 그냥 넘어가긴 했는데 너무 많이 나와서…
어떤 말이 그랬어?
엄마, ‘이태’라는 말 알아?
응, 알지. 엄마 할머니가 많이 쓰던 말이야. 정확히는 몰라도 뭘 의미하는 지는 짐작이 가지 않아?
이태가 지나도록 말 한 마디 못 나눴다고 했으니까 시간인 거 같은데…
응, 맞아. 날수를 말해. 느낌상 얼마 정도의 시간일 거 같아?
두 달?
아, 두 해야. 2년. 엄마 할머니가 많이 쓰던 말인데 요즘엔 거의 안 쓰는 말이긴 하네.
그럼 엄마 ‘시취’는 무슨 말이야? 문맥상 시체 냄새일 것 같은데 맞아?
응, 엄마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이지만 그게 맞겠네.
‘체머리를 흔들다’는 무슨 뜻이야?
엄마도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문장 전체를 읽어줄래? 그래야 짐작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체머리를 흔드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엄마도 처음 들어본 말이긴 한데 문맥상으로는 노인들이 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몸이 마음대로 안 되면서 머리가 흔들리잖아. 그걸 묘사한 거 같은데… 확실치 않으니까 한번 찾아볼게. 아, 머리가 저절로 흔들리는 병적인 현상을 말하는 거 맞네.
그럼, ‘젖무덤’이 뭐야?
가슴이 무덤처럼 봉긋 솟아 있잖아. 그 모습에 비유해서 젖무덤이라고도 해.
아, 난 지금 사람이 막 죽어가니까 진짜 무덤을 말하는 건가 했어. 근데 왜 가슴을 보고 무덤을 생각했을까. 산봉우리도 있는데…
그럼 ‘여남은’은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인지는 짐작이 돼?
뭐 개수 같은데…
맞아. 이것도 엄마 할머니가 많이 쓰던 말인데 엄마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느낌에는 여덟아홉 정도를 말하는 거 같은데, 확실하지 않으니까 한번 찾아보자. 아, 열이 조금 넘는 수를 말하는 거네. 열하고도 남는 얼마가 있다, 이런 말인가 보네. 너 덕분에 엄마도 단어 공부 많이 한다.
딸 홍시는 책을 읽다가 모르는 말을 낚시해서 낚시망이 가득 차면 나에게 가져온다. 홍시가 낚아온 단어들을 보면서 딸의 어휘력과 문해력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쓰던 말들이라 익힌 말들을 나는 쓰지 않으면서 딸이 배울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사용했던 단어들을 말했을 뿐인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책이 아닌 생활 속 말로 배운 단어는 음성 지원이 된다. 우리는 낚시망을 풀어 헤쳐 단어를 하나씩 꺼내서 식별하고 배웠다. 내가 아는 건 바로 알려주고, 긴가 민가 하는 건 같이 찾아보고 함께 배운 다음 꿀꺽꿀꺽 삼킨다. 그렇게 홍시가 낚은 단어 망을 다 비우기까지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어휘력도 어휘력이지만 떨어져 있는 우리 사이의 교감을 가득 채우고 이제 잠자리에 든다. 아, 오랜만에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