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이 만난 노벨문학상
엄마, 우리 집에 한강 책 있어?
응, 있지. 왜 지금 읽어보게?
아니, 지금 말고 나중에.
지금은 읽고 있는 책도 있고 학생회 일로 좀 바쁘다고 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덕분에 딸 홍시가 이제 한강 작가 책을 읽게 되는구나, 싶었다. 중3은 한강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서 하루하루 기다리던 나의 마음과 달리, 학생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야구를 본다는 핑계로 딸은 한강 읽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기를 일주일째 나중에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이왕 읽을 거라면 지금 이렇게 온 세상이 한강을 말하는 지금 읽으면 더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뭐부터 읽어보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소년이 온다’로 정했다. 거기엔 딸 홍시와 동갑인 아이들이 나오니까.
홍시야, ‘소년이 온다’에 너랑 나이가 같은 친구들이 나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
오늘도 동호가 널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 사실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내일도 기다릴거야.
그렇게 꼬셔서 읽기 시작했다. 자율학습 시간에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는데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다들 나를 좀 다르게 본다고 해야하나? 지금 품절이라 구할 수 없는데 어떻게 구했냐고도 물어보고, 엄마 책이라고 하니까 너희 엄마가 참 선견지명이 있다고도 하고, 지금 중고서점에서 한강 책이 비싸게 팔리니까 당근에 팔라고도 하고, 자기가 비싸게 팔아줄테니까 팔아서 반띵하자고도 하고, 다 읽고 빌려 달라는 친구도 더러 있고, 무슨 이야기냐, 재미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아무튼 지나가는 친구들이랑 선생님도 와서 너 이거 읽는구나, 한 마디씩 하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 근데 엄마 첫 장부터 좀 어려워. ‘너’가 누구고 누가 ‘너’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
이제 막 읽기 시작했는데 읽자마자 고비가 왔다. ‘소년이 온다’는 여러 시점이 섞여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2인칭 시점으로 시작을 하니 더 어렵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조금 더 가보라고 했다. 가다 보면 너를 만나게 될 거라고. 그렇게 조금 나아간 딸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 수업시간에 몰래 책 읽다가 나 울 뻔했어. 너무 슬퍼. 그런데 말이야. 그 와중에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왜 노벨상 위원회에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한 줄 알겠어. 나 같으면 그냥 바람이 불어 가지가 흔들리고 곧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고 할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해. 여러 번 읽어서 외웠다니까.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 나와 투명한 보석들 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너는 눈을 크게 떠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