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어번케어센터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간병을 위해 주말마다 고향 집에 내려오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 앞에 번듯한 새 건물도 그중 하나였다. 평상시 같았으면 뭐가 새로 생겼나 보네, 하고 무신하게 지나치고 말았겠지만, 건물 외벽에 붙은 ‘케어’라는 단어가 그 속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좀 회복되어 외출이 가능하면 저길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제천어번케어센터
노인들의 어린이집 같은 '데이케어센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봤다.
첫인상은 별로였다. 입구부터 진입장벽이 느껴졌다. 길과 같은 레벨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꽤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옛날 건물들이야 그렇다 치고, 최근에 지은 건물인데 좀 실망스러운 시작이었다. 물론 일부러 그런 건 아닐테고 내가 모르는 건축적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들어가 보니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곳이 아니었다. ‘어번케어’는 한 마디로 ‘도시재생’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난 정권 때 정책 어젠다였다가 지금은 사라진 줄 알았으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입구와 이름부터 아쉬웠다.
이미 지어진 건물, 이름 붙여진 이름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도대체 뭐하는 건물인데 궁금해서 온 김에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1층에는 한방카페테리아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카페테리아는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카페테리아가 생길 예정이었으나 주변 상인들의 반대로 흔적만 남은 것이었다. 애초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이 없어서일까? 역시 아쉬웠다. 한방카페테리아는 이름만 남아있고 로비에는 관광안내데스크와 책 좀 꽂아놓고 테이블과 벤치를 두고 여행자와 지역주민쉼터를 표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2층부터 6층까지는 도시재생지원센터, 사회적 경제 비즈니스 센터, 지역관광협업센터, 패밀리 돌봄 라운지 등 이런저런 중간지원기관 사무실과 주민시설이 입주해 있었다. 이쯤되니 건물의 작명을 담당했을 공무원의 고뇌가 느껴졌다.
여러모로 아쉬운 어번케어센터는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시범사업으로 선정되어 총 96억 원(국비 42억 원, 지방비 28억 원, 협업사업비 26억 원)을 투입하여 만든 건물이었다. 한 푼이라도 예산이 아쉬운 지방소도시의 시장과 공무원들이 야근도 하고, 컨설팅이나 자문도 받아가면서 제안서를 썼을 것이고, 선정되었을 때 시장님이나 국회의원은 국비 얼마를 받아왔다고 시내 곳곳에 플래카드도 붙이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도시재생과 지역주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집 앞에 이런 넓고 쾌적한 건물이 있으니 나라도 이용하자.
알게 된 이상 나라도 자주 이용하자는 마음으로 매일 온다. 엄마 간병으로 답답한 마음을 환기하고 싶은 나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공간이다. 좁은 집을 벗어나 넓고 한가한 쉼터에 커피도 사 가지고 와서 멍도 때리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가끔 오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그런다. 아직 생긴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홍보가 덜 된 탓인지, 알쏭달쏭한 이름 때문인지, 애초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지 않는 탓인지 이용객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만든 걸 어쩔 수 없고, 이왕 만든 것을 어떻게 하면 잘 쓰면 좋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올 때마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100억짜리를 나 혼자 쓰는 건 아깝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쓰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