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도시의 도심 공동화
오랜만에 중앙까지 걸었다. 나에게 중앙은 고등학교때 중앙에 가서 옷 사고 친구들과 만나 놀던 곳이다. 그만큼 중앙은 말 그대로 중심이 되는 곳, 번화가를 말하는데, 중앙에는 제천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시장과 중심 상권임을 보여주는 브랜드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우리 집이 있는 제천역에서 중앙까지 4차선 도로가 일직선상으로 쭉 뻗어있다. 예전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지방은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 몇 번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다가 포기했다. 이제는 버스를 기다릴 바에는 걷는 게 더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제천역에서 중앙까지 걸어서 20분이 채 안 걸린다. 어렸을 때는 굉장히 멀게 느껴졌는데,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운동삼아 걷기에 딱 좋은 거리다.
명색은 중앙이지만, 명실상부한 중앙이 아니다. 명색이 중앙인데 사람 보기가 힘들고, 상점들이 많이 비어있다. 제천역에서 중앙까지 걷다 보면 한 집 걸러 한 집이 비어 있거나, 매매 혹은 임대 딱지가 붙어 있다. 지난주에 갔다가 이번 주에 갔더니 일주일 사이에 빈 가게 하나가 늘어났다. 뒷골목은 그런지 오래고 대로변 1층 상점도 비어 간다. 지방소멸, 인구감소 현상이야 오늘내일 일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들어 왔지만 막상 와서 보니 심각하다. 그래도 그렇지 중앙에 이렇게 사람이 없나? 그래도 아직 13만의 도시인데.
13만의 인구는 중앙이 아닌 외곽에 있었다. 2000년대 후반, 서울에서 한참 일하고 연애하고 임신출산을 하면서 고향 제천에 자주 못 오는 사이 제천에는 신규 아파트 단지가 대거 조성되었다.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 신규 아파트들이 시 외곽으로 조성되면서 전통적인 중심이었던 중앙이 비게 된 것이다. 제천에서 사람 구경을 하려면 중앙이 아닌 외곽으로 가야 한다. 아니 이제 외곽이 중심이 된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많은 시 외곽으로 가면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 이마트, 명지병원, 스타벅스, 시립도서관과 한 때 유행했던 기적의 도서관이 있다. 시 외곽으로 가면 놀랍게도 출퇴근 시간에 차가 막히는 것을 볼 수 있고, 상점가로 가면 주차할 곳을 찾아 빙빙 돌기도 해야 하고, 맛집에 줄 지어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도심에서 통 보기 어려운 젊은이들과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원도심은 원주민들의 보상 문제로 재건축, 재개발이 어려우니 비교적 개발이 쉬운 외곽으로 신축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을 것이다. 당연한 거지만 아파트를 따라 사람이 옮겨갔고, 상권이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중앙의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신축 아파트들이 계속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달 뒤 e편한 세상아파트가 준공 예정이고, 내년에는 GS자이까지 약 2000세대가 공급된다. 신축 아파트들은 주로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라는 점이다. 젊은 층에서 신축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수요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축 아파트가 공급될수록 중앙은 슬럼화되고 외곽의 구축 아파트들도 비게 될 것이다.
이러다 귀신 나올까 무섭다
빈집들을 보고 이렇게 말을 한다. 중앙이 텅텅 비게 되면 어차피 유령도시로 불릴 텐데 역발상으로 유령, 귀신을 모셔서 도시 전체를 귀신 테마파크 또는 방탈출이 아닌 스케일 크게 도시탈출카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처음엔 자조적인 상상이었지만 생각할 수록 역발상과 상상력을 발휘하면 차별화된 지방소멸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