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깔난 도서관 하나 때문에 오겠다는 사람 반드시 있다
엄마, 여기 도서관 좋다.
딸이 내 고향 제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도서관이다. 친구가 거기는 뭐가 있냐고 물어서 한 대답이 다른 건 아직 잘 모르겠고, 도서관이 좋다고 했다고.멋있지 않나? 다른 건 모르겠고 좋은 도서관이 있는 도시. 적어도 딸에게는 도서관 하나가 제천의 인상을 만들었다. 늘 아이를 내려만 주다가 나도 시간을 내서 가봤다. 제천역에서 시립도서관에 가는 버스가 있다길래 버스를 탔다.
"시립도서관 가지요?"
버릇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처음 타는 버스에서는 꼭 물어본다. 기사 분이 내 말을 들은 것은 같은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맞다는 표시임을 알아차렸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을 것이다.
제천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이지만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곳에서 맨 위쪽 끝에 붙어 있어서 강원도, 경상도와 접하고 있고, 문화는 강원도 문화라고 봐야 한다. 강원도 말투가 다소 투박한 면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친절하지 않고 퉁명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강원도만은 아닐 것이다. 부산이 고향인 내 친구가 서울에 와서 놀란 일이 있었는데 가게 점원이 너무 친절해서 자기를 좋아하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방은 말투가 좀 투박하다. 친절하면 뭔가 남우새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겉으로는 아닌 척하다가 갑자기 정스러움이 치고 올라온다. 표리부동하다.
버스 안에 노선도가 없어서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 귀가 먹은 건지, 안내방송이 문제인 건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마 지역명이 낯설어서 들리지 않는 것도 있다. 앞서 파악한 캐릭터상 기사 아저씨게 물어보기는 싫고, 뭔가의 힌트를 찾아 밖을 살피고 있는데 기적적으로 다음 정거장은 시립도서관 입구라는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내렸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도서관 비슷한 건물이 보이지도 않고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길에 오가는 사람 하나 없다. 미아가 된 느낌이다. 위로 아래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또 다시 기적적으로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신다.
"시립도서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다시 한번 기적적으로 시립도서관을 아신다. 심지어 퉁명스럽지도 않고 친절했다. 저쪽 언덕을 가리키며 언덕을 올라가란다. 언덕이 가파르다. 도서관에 가려면 차가 있거나 두 다리 튼튼하고 폐활량도 꽤 좋아야 한다. 올라가는 길에 짓다 만 흉물스러운 아파트를 지나니 드디어 도서관으로 보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도서관이라기보다 세무서의 느낌을 풍기는 멋이라고는 없는 건물에 제천시립도서관 이렇게 쓰여있고, 옆에는 의병도서관이라는 것이 별관처럼 붙어 있다. 의병은 언제부터 제천에서 밀고 있는 역사 아이템 중에 하나이지만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1층에 관장실과 서고,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는 도서관은 처음이다. 2층 종합자료실로 올라갔다. 겉은 관공서 건물처럼 딱딱하게 생겼는데 들어가 보니 최근에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지 깨끗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든 책장과 튼튼한 원목 책상, 그 위에 놓인 탁상 스탠드, 딱딱하지 않고 여유 있고 유연한 자리 배치와 사이사이에 놓인 화분이 인상적인 도서관이었다. 사람은 꽉 차 있었고, 제천에 와서 가장 많은 젊은이들을 본 듯하다.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제천.
얼마 전 일본소도시 사가현의 다케오 시의 도서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는 곳인데 도서관 하나 잘 지어서 최근 몇 년 사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도서관 하나로 이주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잘 짓기도 하고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다케오 도서관은 도서관의 틀을 깬 도서관으로 유명한데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는 자유로운 도서관이라고 한다. 그렇게 파격적인 운영이 가능했던 것은 시립도서관이지만 관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서점인 '쓰타야'를 만들어낸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이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제천은 예로부터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도시다. 지금은 수도권과 지방 격차가 심해지면서 예전만 못하지만 어딜가든 사람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렬한 것을 느낀다. 그런 점을 살려 제천에, 아니 지방소멸도시 소멸의 순으로 기깔난 도서관 하나씩 지으면 어떨까? 입시 공부 치열하기 전 학부모, 은퇴한 중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1인 가구까지 도서관 때문에 이사온다는 사람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찔끔찔끔 돈 쓰지말고 임팩트있는 한방을 도서관에 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