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령 Aug 26. 2024

이령의 꼴통성장실화-꽁트 9탄
-첫사랑

 섣달 바람의 매운 발톱을 밀어내던 생강나무, 산수유의 노랑 꽃망울에서 산골의 봄은 왔다. 


 생강향이 나면 생강나무 비릿한 젖 내음이 나면 산수유 생긴것이 흡사해서 가지를 분질러 냄새를 확인하고서야 구분이 가능했다. 노랑 꽃차례로 복사꽃, 살구꽃, 진달래로 산야는 온통 분홍으로 물들고 졸졸거리던 물길을 따라 물봉선화, 고마리가 오종종 피어나던 봄이었다.


 석이의 충정을 성애에게 뺏기고 키우던 토끼가 우리를 탈출하고 해가는 줄 모르고 타던 썰매를 다음해 겨울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참담함이 내게 엄습해왔지만 난 중학생이 되었다.


" 령아! 립글로스 좀 빌려 달래. 대진이가!"

" 근데 와 니가 빌리러 오는데? 대진이 쫄따구가 니는!"

"......"


 앞집 탁이는 대진이 꼬봉이었다. 전교일등 탁이가 대진이의 꼬봉이라는 건 이해불가였지만 文보다 주먹이 앞서는 건 예나지금이나 만고의 진리이며 덩치가 탁의 두배, 주먹은 서너배는 될 우리학교 주먹 짱, 대진이의 명령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던 탁이가 불쌍하기도 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대진이의 주먹에 쌍코피 난다는 것 잘 알기에 빌려 준거다. 간접 마우스투마우스의 찜찜함이 있었지만 절대로 대진이의 마음에 호응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탁이의 처지를 위하는 대승적 마음이었음을 밝힌다. 더불어 석이를 성애에게 뺏기고 그 헛헛함을 달래기위한 임시 땜빵은 더더욱 아니었음을 밝힌다. 햐~~


 어쨌던 봄이었고 어쨌던 그렇게 탁이를 매개로 대진이와 난 이상야릇한 봄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후로도 탁이는 자주 립그로스를 빌려 대진이에게 상납했고 또 내가 애정하던 꿀꽈베기, 똘이장군, 별사탕등이 상납되어 오기도 했다. 


 탁이는 늘 충직했고 가끔 대진이가 전해주라는 러브레터를 읽으며 지가 대신 얼굴을 붉히곤 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걍 무시하듯 지나치는 대진이의 시크함, 혁을 통해 전하던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패러디한 시,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애정시를 표절한 글을 듣다가 생각보다 유식한 대진이가 쬐금 멋있다고 말했을 때, 떨리는 목소리로 댓빵의 사랑가를 대독하던 탁이의 얼굴에선 순간 아슴푸레한 슬픔이 묻어나곤 했는대......


 중간고사를 치고 대진이와 난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았고 탁이는 여전히 전교일등을 했다. 기다려도 더이상 탁이는 립그로스도 편지도 꿀꽈배기도 대신 전하지 않았다. 전학을 간 것이다.


 전교일등들은 으레 시골학교를 버리고 시내로 유학을 가곤하던 시절이었다.


"령아! 우짜노. 니 사랑 탁이 전학 갔뿟제?......"

대진이가 전해준 한 소식에 내 가슴엔 싸한 생강내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니가 아니고 탁이었다고?!"


 그때부터 난 탁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 주야독경 공부란걸  처음 해야겠다 다짐했다.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알사한 의구심과 어떤 의무감을 안겨주고 떠나간 것이었던 것이었다.(끝)


 


 

이전 08화 이령의 꼴통성장실화-꽁트 8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