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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Aug 26. 2024

이령의 꼴통성장실화-꽁트 10탄
-70년대 이장집 풍경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동민 여러분 아침 잡수셨능교. 오늘 공일이시더. 마카다 빗자루나 호미 삽들고 회관 앞에 모디소, 이장이시더!"


 일요일 아침이면 회관 감나무에 걸린 확성기에선 울동네 근면성실의 표상인 이장의 부역 소집령이 울려 퍼지곤 했다.


 이어서 국민체조 음악이 나오면 근면성실의 성정에 있어 이장을 꼭 빼닮은 남동생과 그 이장을 도무지 닮기 힘든 나는 마당에서 1단계부터 12단계까지 구령에 맞춰 국민체조를 매우 착실하게 수행해야만 했다.(애기였던 여동생은 체조보단 무용에 가까운 동작, 울집 누렁이도 실룩 꼬리를 흔들고 그 장면을 내려다보던 마당귀 은개, 가죽나무 이파리도 차박거리며 박수를 쳤던가~~^^)


 그 시절엔 그랬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국민이니까. 순수한 산동네 동민들은 일사분란하게 새나라 새마을 운동을 이설없이 수행하던 그때 그시절이었다.


 면에서 돌아오신 아빠가 사오신 건 텔레비젼이었다. 주름커튼 같은 드르륵 덥개 너머엔 신세계가 펼쳐지던 문제의 그 마술상자.

 문제는 그 텔레비젼이 우리집에 들어온 이후 일각에선 이장의 귄위에 찬사를 보내는 치들도 생겨났지만 일각에선 반항의 조용한 쿠데타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던 것인데 물론 쿠데타의 주역은 여지없이 나와 남동생이었다.


 '은하철도 999', '들장미소녀 캔디', '미래소년 코난', 의 시간차 시청자로소 행복한 공일을 맞이하던 일정이 빡빡한 나와 동생으로선 공일마다 국민체조와 회관가꾸기에 동원되는 것고 그보다 애정하는 프로그램 채널을 동네 할매들에게  뺏겨야 한다는 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이장님의 공권력 남용이었다.


 밤마다 동네 할매들이 우리 집 마당에 멍석을 펼쳐놓고 '드라마'를 단체관람하던 시절이고 엄마는 밀떡ㄱ이면 밀떡 강냉이면 강냉이를 소쿠리째 내어놓던, 말하자면 그 당시 이장 집은 산골마을의 영화관, 우체국, 전화국, 사랑방의 다름 아니었으니 뽀대는 이장(울 부친)이 다내고 수발드는 무수리 이장의 아내(울 모친)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도맡아야하는 하복으로서 남동생과 나는 최대의 피해자였던 셈인데~~~


 일개 국민, 더불어 어린 우리들로선 어마무시한 그의 권력에 표시나지 않게 반항하는 묘안을 짜기에 이르는데, 다름아닌 공일이면 무작정 나이롱 환자가 되기로 모의를 한 것이다.

"이눔들, 일나라! 일나가 국민체조 하고 밥 묵고 회관마당 쓸어야제"

"에궁, 아빠! 배 아프고 어지럽고......(어쩌구저쩌구)"


 통할리 없었다. 엄살을 부릴수록 궁뎅이만 걷어차였던......

그랬다. 우리 아빠는 3선의 이장 장기집권을 노리는 중이었고 남동생과 난 그 무소불위의 모범생 콤플렉스에 호응할 수밖에 없느 가련한 동민이었던 것이다. 그날이후 몇 해 동안 우리는 그의 권력욕에 희생당하는 불쌍한 동민으로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남동생과 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주권찬탈기라 부르고 아버지는 지긋하게 눈을 감고 추억이라 미화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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