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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Aug 26. 2024

이령의 꼴통성장실화-꽁트 4탄
-새농민

 깡촌의 소나기는 소리로 먼저 온다.


 말발굽 소리가 떼지어 산허리를 넘고 재 너머 산마루가 뿌옇게 비구름을 몰고오면 금새 마당귀 감나무 잎사귀에 흐드드득 비듣는 소리가 따라왔다.


 그때마다 엄마는 텃밭에서 공수한 정구지로 찌지직직 빗소리 장단으로 전을 붙이곤 하셨다. 평온한 산야와 고소한 부침개만으로 마냥 행복하리라 싶겠지만 근본 고여있지 못하는 꼴통 시골아이의 심중에선 알 수 없는 어떤 허전함이 길피없이 샘솟고 있었다.


 앞문을 열면 앞산, 뒷문을 열면 바로 뒤산, 깡촌의 늦여름 우중정취는 비드는 소리가 팔할이었으니 내 감성의 근원은 아마도 그 빗물이었지 싶다.


 뒤안 대나무 잎은 스르륵 물배암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몇일 전 앞집 미애네 장닭이랑 결투에서 패한 울집 장닭은 처량한 신세에 고개를 쳐박고 댓돌 물허벅에 고인 빗물을 서러움 삼키듯 모금모금 넘기는 여름이었다.


 남동생이랑 싸리소쿠리 들고 무논에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야 할텐데. 비는 그칠 기미가 없고


 이장이었던 아버지가 면에서 받아온 '새농민'이 유일한 우리집 독서목록이었으니 그즈음 나는 새농민으로 거듭 날 수밖에!


 요소, 질소, 논 토양의 특성, 지역별 보통 논은 전남이 가장 많고 사질 논은 경기도, 미숙 논은 경남, 습논과 염해 논은 충남, 우리나라 토양의 일반 물리화학 특성은 ph5.6 정ㄷㅎ의 산성토양인 사질토양이다와 같은 류의 정보( 당시 국민핛생이었던 나의 학습과는 행간이 멀어도 넘 멀었던)를 읽고 밑줄 긋고 외우기도 했으니^^


 어느날 대학에 다니던 막내 이모가 방학이라 집에 왔다. 정태춘 박은옥의 카세트 테잎과 '자본주의 이행논쟁'과 에밀리디킨슨의 고시집을 들고~~


 막내 이모의 등장이후 신세계를 맞이한 나는 '새농민'에서 '근원적 고독'을 탐구하는 꼴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자고로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의 매커니즘이 리셋된다는것을 그 때 어렴풋이 알게된거 같다. 비오는 날이면 추억소환이 자연스럽게 번져오는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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