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산골의 산야는 온통 뽀얀 처녀 젖가슴마냥 부풀었다.
생강나무 산수유 복사꽃 참꽃 앞다투어 폭발하고 고마리 물봉선화 애기똥풀 꽃봉오리가 숫총각 부랄처럼 부풀어 올라 동네 도랑물은 사정없이 흘러넘쳤다.
울집 똥개는 뒷집 옥이네 복실이에게 빠져 밤드리 노니느라 주인장(나)의 애정을 개무시 하는 봄이었다.
산골 아이들은 자연의 미메시스를 이행하는데 태생적으로 타고나는거라 겨우내 가잠나루 거뭇거뭇해진 울동네 쪼무래기들과 댓빵 아랫마실 대진이의 눈빛도 복사꽃마냥 블링블링거리기 시작했다.
"령아! 오늘 저녁에 회관 공부방(당시엔 새마을 청년회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다)에 오나?"
"안 가! 혼자 할거임."
"같이 공부하러 가자, 내가 가르쳐 줄게"
"싫거등! 니 지금 공부 쫌 한다고 잘난 척 하는거임?"
"아이다. 같이 하면 더 잘돼니까!"
울집 똥개의 적극적인 작업질을 대하는 뒷집 복실이의 밀당기술을 눈여겨 지켜본 나로선 일단 좀 튕겨보는걸로~^^
저녁밥은 먹는둥마는둥 얼마전 엄마가 오일장에서 큰맘먹고 사준 꽃무늬 원피스에 아빠가 면에 갔다 오시며 사다준 니베아 립그로스까지 야무지게 바르고(다만 몇일전보터 이마빡에 나기 시작한 여드름이 좀 걸리긴 했어도 뭐 이 정도면^^) 발걸음도 가볍게 회관 공부방으로 향했다.
공부하러(명백하게!)
지도 잘 모르면서 가르치는 새마을청년지도자 아재의 수업은 도통 이해불가였지만 뭐
상관없었다.
공부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랑 하느냐가 중요한거니까!
그해 봄 대진이와 난 밀고당기고 참 열심히 했다. 밀당공부를~~~^^
어느듯 꽃차례로 박태기 오동꽃 우거지는 오월이었다. 울집 똥개가 뒷집 복실이랑 신접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개밥을 두배나 차려야 하는 나에겐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었다.
전교일등 대진이가 전국일등하려는지 도시학교로 전학을 가버렸던 것이었다.
같이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해놓고 지혼자 내뺀 의리를 져버린 그 시끼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애이불비의 시간을 간당간당 견디던 봄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