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리내 Jul 11. 2024

치료받을 병원은 어떻게 정하면 될까요?

신뢰와 믿음

 강미자님은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대략 300km 정도 떨어진 광역시에 거주하는 DLBL을 진단받은 림프종 환우이다. KTX를 탄다고 해도 기차 시간만 2시간 남짓, 기차역에 오기 위해 걸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병원에 오는 데만 넉넉히 4-5시간이 걸리는 기나긴 여정으로 병원을 내원하시는 분이다.

 강미자님이 항암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 외래 방문 일정으로 실랑이가 있었다. 항암 후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수치 때문에 중간 외래 방문이 필수인데 절대 외래를 올 수 없다는 강미자님과 꼭 와야 한다는 나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보호자분까지 병동으로 전화가 와서 외래를 안 보고 입원하고 싶다는 것을 요지로 오랫동안 통화를 하였고 결국에는 외래 없이 입원하기 위해 전날 준비해 둔 퇴원약 일수를 모두 바꾸고 입원 예약을 위해 담당 교수의 입원장 발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만 가까웠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 강미자님 집 근처에도 큰 대학병원이 있다고 하는데 왜 머나먼 도시로 병원유학을 온 것일까?



 림프종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올바른 진단이다. 내 몸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 림프종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조직검사를 통해 채취한 검체를 가지고 림프종 아형(종류)을 결정하는 것은 병리과의 몫인데 같은 검체를 가지고도 병원마다 다른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병리과의 역량 차이 때문이다. 결국 치료를 잘 시작하기 위해서는 병리 진단을 정확히 내려주는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림프종 아형이 정해졌다면 진단명에 따라 내과적인 항암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림프종은 고형암과는 달리 수술 치료 없이 내과에서 하는 항암제 투약이 주된 방법이다. 림프종 항암제 결정은 표준화되어있기 때문에 진단명이 정해졌다면 써야 될 항암제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내과 역량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는 항암제는 우리 몸속의 전신 밸런스를 뒤흔드는 치명적인 투약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무 문제 없이 항암제 투약만 진행하면 좋겠지만 항암제 투약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뒤따른다. 백혈구, 호중구, 혈색소, 혈소판 등의 일반 혈액검사 수치 변화, 혈액 화학 검사의 변화, 통증, 오심, 변비, 설사 등의 전신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치료 역량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의료진 간의 굳건한 믿음과 신뢰이다. 이것은 암환자에 국한된 사항이 아니라 병원을 선택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성경에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구절이 여러 번 등장한다. 하혈하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서 병이 나았고, 다시 보고 싶었던 소경은 믿음 하나로 눈을 떴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과학적 시각으로 본다면 근거 없는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의료 현장에 있다 보면 이 '믿음'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진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은 치료과정에 있어서 스트레스도 적고 치료 효과도 좋다. 담당 교수의 말을 신뢰할 수 없고 믿지 못하는데 교수가 내는 처방을 제대로 따를 수 있을까? 간호사를 믿지 못하는데 그들이 주는 약제 하나, 행위 하나 모두 따져가며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호 간에 믿음이 없다면 불평불만만 늘어날 것이고 치료 결과도 좋을 리가 없다. 어떤 계기로든 신뢰가 깨졌다면 그 병원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강미자님은 집 근처 병원을 놔두고 머나먼 곳으로 오는 병원 유학을 힘들어하셨다. 일단 우리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항암제가 결정되었다면 다른 병원에 가도 표준화된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자세하게 설명해 드렸다. 젊은 사람도 먼 길 왕복하면 고된데 중년의 환자가 머나먼 길을 왔다 갔다 하면 더 힘들지 않겠냐고 이야기해 드렸다. 하지만 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강미자님은 우리 병원에 계속 오셨다. 최첨단 시설의 고급 병원도 아니고 교통이 좋은 것도 아니고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병원에 계속 오셨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국 그 굳건한 신뢰와 믿음의 힘으로 강미자님은 항암치료, 조혈모세포 이식을 마치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추적 관찰을 하러 병원에 오셔야 되긴 하지만 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시길 기대해 본다.  




이전 12화 암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