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지난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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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3개월 설명함”
김현성님의 상태에 대한 의사의 기록이었다. 3개월이란 시간이 길다면 긴 시간일 수 있지만 30대 중반의 남성의 여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서 걸어 다니는 이 사람이 3개월 뒤에는 사라진다?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의사의 예상대로 김현성님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중환자실도 다녀오고 고열과 혈액검사 수치 이상으로 치료를 위해 입원 오는 일이 잦았다. 암성 열인지 폐렴으로 인한 열인지 구분할 수 없는 발열이 이어졌다.
“차라리 호스피스로 가지.” 김현성님 상태를 보면서 모든 사람이 했던 이야기이다. 환자 본인이 항암 치료를 거부했고,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완치가 불가능한 병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이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을 바에는 호스피스로 전과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지 않겠냐는 게 나와 동료들의 생각이었다. ‘내가 한번 호스피스 권유를 해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또 그의 앞에 가면 입을 떼기가 쉽지는 않았다.
여명이 3개월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고 3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김현성님은 우리 곁에 계속 함께하고 있었다. 김현성님도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고민이 많았지만 그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봐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연말연시를 보내며 병동 입원 환자들과의 스몰토크 주제로 연말에 대한 계획, 새해 바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김현성님과는 차마 그런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의사가 이야기 한 기대여명보다 두 배 정도 더 살았으니 이제 정말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히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새해를 보내고 어느덧 2월 중순이었다. 설 명절을 지내고도 병원에 오지 않는 김현성님이 생각났다. 설날 연휴 시작 직전에 외래를 다녀간 기록 외에는 병원 방문 기록은 없었다. 분명히 혈액검사 수치가 많이 떨어져서 수혈이라도 필요할 텐데 한 달이 넘도록 병원에 오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김현성님과 가까이 지내던 환우분께 그의 안부를 물었다. 그분은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현성이 갔어요."
"아니 언제요?"
"설날에 집에서 마지막을 보냈대요. 나도 궁금해서 전화를 해보니까 현성이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시더라고요. 현성이가 열 난다고 이제 마지막인 것 같다고 1월에 나한테 문자를 보냈거든. 그때 아닐 거라고 이야기해 줬는데 현성이 생각이 맞았나 봐요."
머리가 멍했다. 당장이라도 스르륵 병동 문을 열고 들어와서 롱카 앞에 앉아있을 것 같은 김현성님은 그렇게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항상 곧 다시 올 것 같았던 그가 이제 더 이상 올 수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김현성님은 항암치료를 모두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생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이 남아있었다. 그는 용기 있는 선택을 했지만 모든 공포와 갈망을 깔끔하게 잘라버릴 만큼 강하지 못했다. 그런 어려움을 이해해 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아쉬움이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뒤섞여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
김현성님, 잘 지내요?
지금은 해열제도, 수면제도 필요없는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계시겠죠?
요즘도 가끔 1호 1번 자리에 있던 김현성님 생각이 나곤 해요.
스르륵 제 앞에 나타나 흥미로운 질문들을 늘어놓을 것 같은 상상을 한답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를 믿고 의지해줘서 고맙고, 제가 어려움을 잘 이해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말 늦게나마 전해본다.
커버이미지 by @mumu_pattern
우리 환자들이 종종 걸터 앉아있는 롱카
이제 김현성님은 거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