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상 식육종(Mycosis fungoides : MF)
여름마다 발바닥이 문제다. 맨발로 샌들이나 슬리퍼를 한 두 번 신고 나면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그 주변으로 물집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아팠다가 간지러웠다가 증상이 반복된다. 여름의 복병이다. 간지러워 긁으면 진물이 나고 그러면 아프다가 딱지가 앉았다가 또 벗겨지고 간지럽고 악순환이다. 올해는 그냥 지나가나 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다. 맨발에 닿는 모래나 이물질과 여름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어우러져 발생되는 이 이름 모를 병으로 괴로울 때면 우리와 함께 했던 균상 식육종 환우들이 떠오른다.
T cell 림프종의 일종이자 피부에 나타나는 다양한 병변이 특징적인 균상식육종(Mycosis fungoides)이라는 림프종은 빠른 진단이 어렵기로 소문난 아형이다. 피부에 나타나는 이 병은 초기에는 건선, 한포진 등의 단순 피부 질환으로 여겨져 스테로이드 연고 등을 바르며 증상 조절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부 병변이 심해져 림프종 진단을 받게 되었을 때는 이미 병세가 많이 악화된 이후인 경우가 많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환우들 중 균상 식육종 진단명이었던 분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낮은 유병률을 보이지만 그들의 이름이 다 기억날 만큼 투병기간이 길고 힘들다.
어깨, 목, 가슴 등에 진물이 나는 병변이 많았던 전희진님. 병변 주변 간지러움도 문제지만 개방성 상처 감염우려가 많았다. 암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상처가 감염될 위험이 커서 상처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분이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 때문에 매일 온몸을 긁어대니 침상 주변에 각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상처가 썩어가는 냄새가 많이 나기도 했다. 환자의 촉각, 통각은 물론 시각, 후각까지 괴롭히는 악질 중의 악질이 바로 균상식육종이다.
전신에 여드름 같은 화농성 병변이 가득했던 문현자님. 항암을 하고 나면 화농성 병변들이 가라앉으면서 조금은 살만해진다고 말하던 분이었다. 전신에 붉은 여드름이 가득 있는 모습이라 주변 환자들이 접촉을 통해 자신도 감염되는 것 아닌지 우리에게 많이 물어보곤 했었다. 몇 차례에 걸친 항암과 조혈모세포 이식에도 불구하고 끝내 암은 정복되지 않았다.
전신이 하얀 각질로 가득했던 김수영님. 가만히 있어도 우수수 떨어지는 각질 때문에 김수영님이 지나갔던 자리는 항상 표시가 났다. 항암 한 차례, 한 차례 진행할 때마다 이제 항암치료 그만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만큼 매번 지쳐있었다. 하지만 결국 가족들의 권유로 끝까지 치료를 이어갔지만 그 치료는 완치로 이어지지 못했다.
제삼자 입장에서 그때 그 환자의 상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심각한 병. 근데 김정수님은 균상 식육종 진단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두드러진 피부 병변 없는 깔끔한 외모에 항암제 반응도 좋았다. 생각보다 빨리 항암 치료를 끝내고 깔끔하게 조혈모세포 이식을 마친 분이다. 삼 형제의 막내로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본인이 이야기할 만큼 한 집안의 귀여운 막내였다. 조혈모 세포 이식까지 씩씩하게 받나 싶었는데 이식 후 퇴원을 너무나도 강력히 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막내다운 느낌이 팍팍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퇴원을 보냈는데 며칠 만에 응급실을 통해 다시 병동으로 입원오기도 했던 철부지 면모의 김정수님. 현재까지 나의 마지막 균상식육종 환지는 좋은 치료 경과를 보이며 우리에게 완치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발바닥의 작은 피부 병변에도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걸으면 심하지는 않지만 통증이 있고 오래 걸으면 병변이 악화되는 느낌이다. 매일 씻고 병변 부위를 잘 관찰해야 하고 소독, 연고 도포 등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작은 병변도 이렇게 힘든데 전신에 피부 병변이 있었던 우리 환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늘에 계신 분들, 완치된 김정수님 모두 편안하시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