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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내 Aug 05. 2024

착한 T-cell lymphoma

말초 T세포 림프종(Peripheral T-cell lymphoma)

 병동 처음 입사하여 신규 트레이닝을 받고 있을 때 이명호님을 처음 만났다. 신규 트레이닝 중이라 미숙한 모습이었는데도 선뜻 IV 할 수 있게 팔을 내주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던 이명호님이었다. 간호사에게 작은 부탁을 할 때도 어렵게 말을 꺼내고 진심을 담은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 분이었다. 


  이명호님은 항암제 투약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퇴원을 하지 않고 특별한 치료 없이 병실에 남아 있었다. 혈액검사 수치상 문제도 없고, 불편하거나 아픈 곳도 없어 보이는데 왜 퇴원을 가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 때쯤, 병동 순회를 하던 수선생님이  “아직은 수치가 많이 안 떨어졌네요. 빨리 바닥 찍고 올라와야 퇴원하실 텐데요”라고 이명호님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명호님이 퇴원을 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 '수치'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명호님에게 투약했던 항암제 중에는 메토트렉세이트(methotrexate, MTX), 씨타라빈(cytarabine)이라는 약물이 있었다.  메토트렉세이트는 혈관 주사로 투여하게 되면 체내에서 암을 공격하고 빨리 몸 밖으로 빠져나가야 하는 약물이기 때문에 약물 투약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독제를 투약한다. 씨타라빈이라는 약물은 독성이 강하고 골수기능을 저하시키기 효과가 크기 때문에 항암제 투약 후 전반적인 골수 기능이 떨어져 결국 호중구가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호중구가 낮아지면 감염에 취약해지기 때문에 이 항암제를 맞은 사람은 바로 퇴원하지 못하고 호중구가 낮아졌다가 반등하는 것을 확인하고 퇴원을 해야 한다.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던 이명호님이 퇴원을 가지 못했던 이유, '수치의 하락'을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씨타라빈이라는 항암제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호중구 저하는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씨타라빈을 투약하는 환자들은 빨리 호중구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호중구가 바닥을 찍고 오름추세가 되어야 퇴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퇴원을 할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며 아침마다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명호님의 진단명은 '말초 T세포 림프종(Peripheral T-cell lymphoma:PTCL)'이었다. T-cell lymphoma의 한 종류이다. 림프종은 크게 B cell 기원과 T cell 기원으로 나뉘는데 이 중에서 T-cell 림프종이 B-cell 림프종에 비해 좀 더 공격적이고 예후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명호는 항암제 투약 반응이 좋아 무사히 6차의 항암제 투약을 완료하고 큰 문제없이 조혈모 세포 이식까지 마쳤다. 이명호님의 착하고 어진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명호님의 암은 말 잘 듣는 착한 T-cell lymphoma이었던 것 같다.  통계적으로 알려진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은 통계일 뿐이며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 진단명과 관련된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마음으로 항상 이명호님이 완치 판정을 받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이루어져서 무척 다행이었다. 이명호님이 조혈모 세포 이식을 마치고 퇴원하실 때 “이제 병동에서는 만나지 말아요.”라고 인사하고 보내드렸는데 그 약속이 영원히 잘 지켜지기를 바라본다. 



'호중구' 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9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편을 참고해주세요 

09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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