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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내 Aug 19. 2024

작은 기적

뇌 침범 림포마 극복

 김지수님은 뇌(brain) 쪽으로 림프종 침범이 있어서 HD-MTX-ARA 항암과 척수 항암을 진행하던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iffuse large B-cell lymphoma:DLBL) 환자였다. 30대 초반의 나이였는데 귀여운 외모에 통통 튀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말투, 외모 모두 어려 보여서 두 아이의 엄마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예쁜 아이를 두 명이나 키우고 있었다. 림포마 병변이 뇌 쪽에 있어서 그런지 대화를 해보면 중언부언하는 적이 많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병동 순회를 하며 잠깐 김지수님에게 들르면, "간호사님, 제가 말이 많이 어눌하지 않나요? 요즘 더 심해진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우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지수님은 뇌 침범 림포마에 적용하는 치료인 HD MTX -ARA 항암을  3주기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중간 반응 평가가 좋지 않아서 R-CHOP으로 항암제를 변경했다.  


 그 당시 김지수님은 혼자서는 잘 걷지 못했고, 두통, 복시, 시야 장애 등을 호소했다. 뇌에 있는 병변이 시신경, 중추신경에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뇌 쪽으로 병변이 커지며 이전에 불편했던 증상들이 더 심해진 것 같아서 김지수님의 컨디션은 더 이상 좋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김지수님은 이제 혼자 거동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보호자 상주가 필요한 상황이라 판단되어 남편이 보호자로 병동에 왔다. 그러고 나서 김지수님은 남편과 병동 복도를 엉금엉금 걸으며 운동도 하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내가 머리를 자르고 왔는데 내가 머리를 잘랐는지 아닌지를 놓고 두 사람이 내기를 하면서 하하 호호 웃기도 하면서...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이 좋은 시간이 그들에게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며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나의 불편한 마음과는 달리 부부는 힘든 와중에도 서로 웃으며 즐겁게 입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지수님의 남편은 교수님과 면담까지 따로 진행했던 터라 이 병위 진행 정도와 예후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내색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항암은 1차, 2차 진행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김지수님이 보호자 없이 혼자 입원을 왔다. 생각보다 컨디션도 좋고 걷는 것만 주의하면 되었기에 우리도 기쁘게 혼자 입원 온 김지수님을 맞이했다. 그동안 뇌 기능 회복을 위해 종이접기, 색칠하기, 뜨개질 등의 손 움직이는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했다. 그 덕분인지 걷는 것도 많이 수월해지고 어눌한 말투도 많이 회복되었다.


  R-CHOP으로 항암제를 바꿀 때 김지수님의 최종 치료 계획은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는 것이었는데 어느덧 여섯 차례의 항암이 다 끝나고 이식 전 항암과 자가 조혈모세포 채집을 할 때가 다가왔다. 최악의 컨디션이었을 때 이식까지 할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나의 예상을 깨고 그 시간까지 와준 김지수님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드디어 힘든 이식 과정이 끝나고 혈액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한 김지수님이 무균 병동에서 일반 병동으로 이실을 왔다. 다음날 퇴원을 앞두고 그동안 고생했고 앞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며 김지수님 손을 꼭 잡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김지수님의 회복은 나에게는 정말 기적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 기적이 이제는 김지수님과 그의 가족들의 일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지난 주 빡빡한 병원 일정 때문에 연재를 한 주 쉬었습니다. 기다리신 구독자 여러분들께 늦게나마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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