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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내 Jul 16. 2024

너 "T"야? (1)

T-lymphoblastic lymphoma

 지난 글에서는 환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림프종의 정의와 진단 검사들에 대해 나누어보았습니다. 이번 글부터는 본격적인 림프종의 유형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림프종의 종류는 아주 크게는 호지킨림프종과 비(非)호지킨 림프종으로 나뉜다는 것에 대해서는 "3화 호지킨씨 안녕하세요?"에서 다른 바 있다.

03화 호지킨 씨, 안녕하세요? (brunch.co.kr)


  비호지킨 림프종은 호지킨 림프종에 비해 월등히 많고 세부 아형(종류)도 다양하다. 비호지킨 림프종은  크게 T세포 림프종과 B세포 림프종으로 나눌 수 있다. 쉽게 말해 T세포에 문제가 있는 림프종은 T세포 림프종,  B세포에 문제가 있는 림프종은 B세포 림프종이라고 보면 된다. 각 림프종 아형들의 임상적인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의학 교과서가 될 것 같아 림프종 아형별 기억에 남는 환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내 마음속에 담아둔 T 세포 림프종 환자는 꽤나 많다. T세포 림프종 환우들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민하고 섬세하며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일끄?


  MBTI가 유행처럼 번지고 누군가의 성격을 소개하는 데 있어 필수처럼 여겨지는 요즘이다. “너 T야?”라는 밈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림프종 중에서도 T세포에서 유래된 림프종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너 T야? "

 이렇게 묻고 싶은 만큼 특이하고 예측이 어렵고 때론 무섭기까지 한, T 세포 림프종... 그걸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꼿꼿해 보였지만 누구보다 두려움과 무서움이 많았던 청년이 있었다.


김현성님은 나보다 두서너 살 어린 키가 무척 큰 청년이었다. 내가 병원에 입사하기 전부터 우리 병원에서 T세포 림프종(T-lymphoblastic lymphoma)으로 항암 치료를 받던 김현성님은 림프종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여섯 차례의 항암 치료를 다 끝내지 않고 병원을 박차고 나간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동료 간호사들은 가끔 항암 치료를 다 마치지 않고 자의로 치료를 중단한 김현성님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그만큼 우리 사이에서는 독특한 유명인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병동으로 누군가의 전화가 걸려왔고 그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사람의 안부와 건강 상태를 물으며 통화를 했다. 바쁜 업무 시간 중 그렇게 길게 통화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 통화를 마친 후 누구냐고 물으니 그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김현성님이라고 했다. 조만간 입원을 올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현성님은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1년여간의 시간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냈다고 한다. 신나게 여행도 다니고 하고싶은 것도 많이 하면서... 하지만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암은 재발했고 이제는 손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된 상태에서 다시 병원에 왔다. 림프종은 통증이 엄청 심하게 수반되지는 않지만 말기로 갈수록 발열, 체중 감소, 발한 등의 증상과 골수 기능 저하가 뒤따른다. 그런 증상 때문에 힘들어하던 김현성님은 완치 목적이 아닌 증상 완화를 위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가장 필요한 치료는 항암치료였고 떨어진 혈액 수치를 올리기 위해서 수혈이 필요한 상황.  다행히 김현성님은 항암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인지하였고 치료를 진행하였다. 이전의 항암보다 더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였을 것이다.


 학구적이고 똑똑한 김현성님은 담당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시간을 좋아했다. 은근히 빠져드는 입담에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정도의 친분이 쌓이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김현성님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었을 때 “누나였어?”라고 놀라며 종종 반말을 섞어했던 본인의 언행에 대해 미안해하기도 했었다. 또 어느 날은 내가 포도당 섞인 수액을 김현성님 침상 근처에 조금 흘렸는데 나 때문에 바닥이 계속 끈적거린다고 쫓아다니면서 말하는 통에 내가 직접 대걸레를 빨아다가 바닥을 닦아주며 둘이 낄낄거렸던 추억도 있다.


 예민하고 똑똑한 T세포 림프종의 전형인 김현성님의 기민함에 놀랐던 사건이 있다. 혈액내과 병실은 감염 관리 때문에 다인실 침상 커튼을 항상 쳐 놓는다. 담당 간호사가 들어갈 때는 환자 이름을 부르는 등의 인기척을 하고 들어가게 되는데 김현성님은 인기척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병실 문을 열고 김현성님 침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미리내 샘?” 하면서 이미 내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처음엔 너무 놀라 “귀신이냐? 어떻게 알았냐” 호들갑 떨며 물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 예민함이 김현성님의 장점이자 그의 삶을 힘들게 했던 원인이라는 것을…


 김현성님은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스테이션 앞 롱카에 앉아 항상 지켜보곤 했었다. 그러다 궁금한 게 생기면 우리에게 지체 없이 묻곤 했다. 간단한 질문들도 있었지만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들은 나중에 알아봐 준다고 하기도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며 나는 간호사로서 점점 성장해가고 있었지만 그의 병은 점점 깊어져가고 있었다. 첫 진단이 시작되었던 머리 쪽 병변이 혹처럼 더 커져갔고 그의 여명에 대한 의사의 언급이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커버 이미지 : 커튼 넘어에서도 발걸음 소리만으로 누군지 알아차렸던 김현성님.

illustrated by @mumu_pat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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