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편의 외롭다는 말

by 휴지기

남편이 금요일 밤에 내려왔다. 경기도로 일하러 간지 2주 조금 못되어서였다. 일 끝나고 바로 내려왔다는 남편은 밤 12시가 거의 다 되어 도착했고, 원래 어두운 색이었던 얼굴은 더 시커메져있었다.


다만 전에는 술을 매일 마셔 간이 나빠서 얼굴색이 어두웠다면, 이번에는 야외에서 일을 하느라 햇빛 때문에 얼굴이 시커멓게 탄 것 같았다. 남편은 집에서의 여느 때처럼, 소주에 라면을 먹고 잠이 들었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남편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기력이 조금 돌아오는 듯했다. 남편과 함께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집 앞 시장을 산책했다.


남편은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재작년인가, 무릎에서 뚝하는 소리가 난 뒤부터 무릎은 계속 좋지 않았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응급처치만 하면서 지금까지 버텼는데 무릎을 꿇고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고 했다. 나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조금 신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이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남편을 물불 안 가리고 일하게 하는 것 같았다. 일하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새끼손가락을 보여주면서도, 조금씩 파인 무릎과 정강이를 보여주면서도 남편은 애석해하지 않았다. 마치, 어딘가에서 받은 훈장을 보여주는 것처럼 남편이 입은 상처들을 조금은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편이 미나리를 씻다가 나에게 물었다.


"돈 못 벌어도 나 사랑하지?"


나는, 남편의 질문이 웃겼고, 애잔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냥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남편이 김치찜을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나리와 콩나물을 듬뿍 넣은, 내 입맛에 딱 맞는 김치찜이었다. 나와 아들은 남편의 음식 솜씨를 극찬했고, 아들은 자꾸만 남편에게 식당을 해보라고 말했다. 식당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식당도 사업이다, 엄마는 한 번 더 망하기 싫다, 이런 말들을 아들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경기도에서의 생활이 외롭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 조금 놀랐다. 남편이 마냥 일에만 몰두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남편의 일이 끝났을 때의 시간들을, 그 외로움과 공허함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남편은 말했다.


"내가 처음 모텔에서 생활했었잖아. 옆방에서 나는 소리도 소린데, 왜 사람들이 모텔 가서 죽는지 알겠더라. 혼자 티비 보면서 라면에 소주를 먹고 있으면 너무 기분이 이상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누나 집에 간 건데 누나 집도 사실 눈치 보여. 아무리 친누나라고 해도, 그래서 그냥 저녁 회사 식당에서 먹고 들어가고 누나 집에서는 잠만 자. 티비도 같이 보지 않고."

"가족이 있으면 안 외로워?"

"안 외롭지."


생각해 보면 나는 여지껏 남편의 감정에 대해 제대로 헤아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남편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이 사실 하나에만 꽂혀서 남편이 어떤 생각으로 일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내 구박들을 견뎌내는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고, 그것이 미안하지 않았었다. 남편 때문에 내 인생 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나는 이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외롭다는 말이, 나를 조금 아프게 한다. 남편 때문에, 오로지 남편의 불행으로 인해 내 마음이 아픈 건 정말 오랜만이다.


항상 나는 나 때문에 아팠다. 남편의 불행이 나의 불행으로까지 이어져, 나는 언제나 내 불행 때문에 내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내 불행을 만든 남편이 얼마나 불행하고 아프고 외로운지는 내 관심밖이었다. 나는 내 불행을 돌보기에도 버거웠다.


남편이 외롭다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소연이었고 고백이었다. 경기도에서의 예상된 일정은 3개월이었다. 3개월 내내 남편은 누나 집에서 눈치를 볼 거고 밤바다 외로울 것이다. 남편에게 일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편을 덜 구박하는 하는 것, 남편 때문에 내가 얼마나 불행하고 가난해졌는지를 덜 상기시키는 것. 그리고 내 말에서 가시를 빼버리는 것. 이 정도뿐일 것이다.


남편은 몇 시간 뒤 다시 경기도로 올라간다. 남편이 집안의 온기를 조금 가져가, 휑한 마음이 조금은 채워지기를, 남편이 덜 외로워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절대 다치지 않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