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설쳤다. 무서운 꿈들을 꾸었다. 여러 개의 꿈이 파편화된 장면으로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그 큰 감정의 줄기는, 실망과 좌절이었다.
15일이 남편의 월급날이다. 남편은 월급을 받지 않은 채로 한 달 반을 일하고 있다. 어제 꾼 무서운 꿈들의 내용은 남편이 결국은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꿈에서는 월급날이 12일이기도 하고 15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날이 월급날이든 남편은 약속된 돈을 받지 못했고, 나는 역시나 또 그랬다며 남편을 원망하고 현실에 좌절했다.
그런 힘든 감정들이 진하게 들 때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설핏 든 잠에서든 또 그런 악몽같이 상황이 반복되었다. 나는 월급을 기다렸고, 월급을 장담했던 남편은 힘없는 목소리로 월급이 미뤄줬다고 말했으며 그때마다 나는 힘든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믿음, 사랑, 소망 중에 결혼 생활 중 가장 필요한 건 믿음이라고 어딘가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 믿음이 없다. 믿음이 부재한 자리를 미약한 사랑과 넘치는 소망으로 메꾸면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남편에게 아주, 정말 많이 속았다. 남편은 나에게 거짓말을 많이 했다. 어떤 거짓말들은 거짓인 줄 알면서 의도적으로 나를 속이기 위해 한 것들이었고, 어떤 거짓말들은 자신도 어리숙하게 진짜로 믿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믿었던 것들이 예상대로 되지 않아 결국은 거짓이 되어버린 말들. 거짓말들.
지금 글을 쓰는 중에 문자가 한 통 왔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경매 처리를 하겠다는 문자. 남편이 죽을 것 같다고 하여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준 적이 있었다. 아니, 그런 적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최근, 가장 큰 금액 대출을 받아준 적이 있었다. 그 대출과 관련된 문자인 것 같았다. 남편이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잘 연락하면서 갚아나가고 있다고.
문자에 적인, 내가 갚아야 할 금액은 아주 큰 금액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악몽으로 잠을 설쳤지만, 내가 이만큼이나 신경을 쓰고 있으니, 이만큼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있으니 이제는 좀 잘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남편의 말들을 더는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막연히. 그러고 싶었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오늘은 맑개 개어,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어도 조금은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구름 그림자가 내린 푸른빛 산을 보며, 아름답다고도 생각했었다.
나는,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간밤에 꾼 악몽들보다 더 끔찍한 악몽 같은 현실이 눈앞에서 우리 모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큰 아가리를 벌리고 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두렵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렇게 카페에서 혼자 글 쓰며 두려움에 떨고, 남편과 통화하며 무섭다고 눈물 흘리고,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산 건 아니다. 그냥 나는 평범하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살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