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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

by 휴지기

남편이 일하러 경기도로 올라간 후 남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는 하루하루 내 삶을 살아나가는 것도 버거웠고,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연민, 그런 감정들을 일으키는 데에도 에너지가 딸리는 느낌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는, 남편이 만들어놓은 이 구질구질하고 비루한 상황에 체념하고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


어젯밤 남편과 통화할 때 남편이 말했다.


"지금 행복해. 일은 너무 고되고, 몸 사리지 않고 일해서 퇴근할 때는 온몸이 다 아프지만, 여기저기서 나를 찾아. 할 일이 있어서 너무 좋아."

"오빠 예전에도 할 일 없어도 계속 사무실은 나갔었잖아."

"집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 했었으니까."


처음부터 삐그덕거렸던 남편의 사업이 진짜 '폭싹' 망한 건 재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남편은 나에게 이혼을 해달라고 했었다. 나랑 아이라도 살려야 한다면서.


나는 회사에 은행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조퇴를 쓰고 나와 남편과 함께 가정법원으로 갔다. 나름대로 준비해 간 이혼 관련 서류는 다 퇴짜를 맞고 법원에 비치된 서류에 다시 내용을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성년자녀가 있어 평일 오전에 법원에서 자녀양육 관련 영상을 보고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고도 했다.


결국 그날 이혼 서류를 접수할 수 없었다. 이혼은 추후로 미루어졌다.


법원에서 나와 법무사인지 노무사인지를 만났다. 남편 회사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


"남편이 똥을 너무 많이 싸놓으셨더라구요. 일이 수습되기가 힘든 사이즈예요. 일단은 이혼을 하시는 게 맞을 거 같아요. 그러고 나서 남편분이 파산 신청을 하시든지 해야 할 거 같아요."


나는, 바닷가 스크린 골프장 앞에서, '파산'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날리고 있었다. 나는 얼굴에 달라붙어있는 머리를 대강 귀 뒤로 꽂으며 물었던 것 같다.


"파산이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가요?"

"그렇죠. 한 몇 년 신용불량자로 살아야 할 거예요."


그 이후에 몇 마디를 더 하고 그 법무사인지 노무사인지 하는 사람은 스크린 골프장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사람이 말한 '파산, 신용불량자' 이런 단어들을 곱씹으며 내 인생이 남편 때문에 진심으로 망했구나, 내 생애 이런 단어들을 경험해 볼 줄이야 하며, 상황을 이렇게까지 끔찍하게 만든 남편을, 결국은 이런 남편을 골라 살고 있는 멍청하고 어리숙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그 후로 2년, 우리는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평일 오전에 법원에 가서 들어야 하는 아이 양육 영상,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우리는, 둘 다 아직은, 이혼이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서로에게 애정이나 연민, 그런 것들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대신 2년 동안은 우리에게 말 그대로 '존버'의 시간들이었다. 하루에도 몇 개씩 집에 우편물이 날아왔다. 다 무슨 캐피털이나 신용정보 같은 데에서 온 우편물들이었다.


남편이 출근해서 하는 일은 여기저기 전화해서 못 받은 돈을 수금하고 또 다른 여기저기에 전화해서 돈을 빌리는 일이었다. 돈이 쉽게 수금될 리 없었다. 당연히 누구에게도 돈을 쉽게 빌릴 수 없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전화를 돌리다가, 한 끼도 못 먹은 채로, 축 처진 어깨로 집에 들어오길 반복했다. 나는 남편의 기운 없는 꼴이 보기 싫어 잠들지 않았는데 일부러 자는 척하고 있던 적도 많았다. 남편은 집에 오면 온갖 불안함에 잠이 오지 않아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다가 잠깐씩 쪽잠을 자곤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나 오늘 한숨도 못 잤어'라고 말했었던 날들이 많았다.


'존버', 말 그대로 존나게 버티길 2년이었다. 그래서 그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지나간 건가? 이제는 버티지 않고 즐겨도 되는 것인가? 아니, 그렇기 않다. 그냥 버티는 것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남편이 요리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밥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요리를 하게 되었고, 자신이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요리라도 하게 되었다. 요리는, 남편의 일 같지 않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결과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요리는, 유일하게 칭찬받을 수 있는 일, 또한 유일하게 가족에게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일이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말들을 금언처럼 마음속에 지니고 살았다. 그러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말이 도망가버린 노인의 상황일까, 아니면 말이 데려온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를 다친 아들을 보고 있는 상황일까. 이 또한 지나갈까. 언제쯤, 언제쯤 지나갈까 이 비루하고 구질구질한 삶은.


글을 쓰고 있는데 오늘 오기로 되어있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영수증 청구한 돈이 안 나와서 돈이 땡전 한 푼 없으니 10만 원을 송금해 달란다. 나는 미친놈이라고 욕하면서 결국 남편에도 또 돈을 보냈다. 결혼 이후 수두룩하게 겪은 일이다. 그러면서 이런 남편이, 이런 내가 어이없고 우습다.


남편은 아무래도 나한테 에피소드 만들어주려고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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