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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찢어진 속옷을 개며

by 휴지기

경기도에서 일하던 남편이 며칠째 집에 내려와 있다.


1차 공사가 끝나 얼마간의 휴식 기간이라고 했으나... 남편에게 '휴식'따위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남편은 여기저기 또 돈을 구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심각하고 처절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은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별 소득은 없는 듯 보였다.


급기야 어제 남편은, 말을 시켜도 대답도 잘하지 않고 가만히, 기운 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다그쳐 묻는 내 질문에 남편은 '됐어, 이제 다 끝났어.'라고 힘없이 말했다.



다음 주 금요일 아침에 협의이혼서류를 제출하러 가정법원에 가기로 했다. 올해 초에 챙겨 온 이혼 서류를 작성하려고 봤더니 3월, 3개월이라는 날짜가 나와있어서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서류 양식인 것 같았다. 다음 주 금요일 오전 9시까지 법원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아이 양육 동영상을 시청한 뒤,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올 생각이다.


금요일에 법원에 가지는 말에 남편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남편은 어떤 질문도,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이혼은 2년 전 처음으로 가정법원을 함께 갔을 때 이루어져야 했을지도, 우리들의 이혼은 단지 2년 동안 유예가 되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혼이 유예되었던 2년 동안 정말 많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었다. 그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꾸역꾸역 감당해 가며 이혼을 미루고 미루었던 건, 희망, 그 망할 놈의 희망 때문이었다. 남편이 잘될 거라고 하면 나는 잘될 거라고 믿었다. 남편이 희망을 가지면 나도 따라 희망을 품었다.


내가 선택한 남자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남편과 살아보니 남편이 그렸던, 나에게 꼭 이뤄주마고 약속했던 핑크빛 미래는 대부분 도래하지 못했다.


핑크는 개뿔, 남편이 나에게 가져다준 미래는 대부분 진회색과 검은색이었다. 나는 남편이 몰고 온 진회색과 검은색 시간들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오래 허우적거렸고, 자주 다쳤다. 때로는 울부짖고 긴 시간 체념했다.


나는 나의 선택이 실패했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실패했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은 나의 선택의 결과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이가 있으니 말이다.


남편의 속옷이 다 해져있다. 땀이 많이 나 러닝셔츠는 누렇게 바래있고 매듭과 천 부분이 다 해져 작은 구멍들이 나란히 뚫려있다. 남편의 사각팬티는 옆 솔기 부분이 가운데 손가락 길이만큼 찢어져 있다. 나는, 남편의 해지고 찢어진 속옷을 개며 남편이 또 불쌍해진다.


우리가 이혼하면 남편은 갈 곳이 없다. 남편이 대학원 다닐 때 어머니가, 결혼하고 5년쯤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편은 늙은 고아이다. 사업이 망해 와이프에게 버림받은 남편이 발 뻗고 잘 수 있는 곳은 세상천지 아무 곳도 없는 것 같다. 이혼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이 말했었다.


"괜찮아. 난 괜찮아. 난 고시원에서 다시 시작하면 돼."


나는 남편이 불쌍하다. 그래도 이혼은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더 불쌍하기 때문이다.


남편 하나 믿고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에서 살면서, 십년 넘게 남편을 기다리고 아이키우고 돈 벌고 집안일을 했지만, 결국은 남편 사업 자금 대주다가 남은 게 하나도 없게 된, 내가 더 불쌍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빚 독촉이 없는 세상에서, 일을 하면 따박따박 대가가 들어오는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고 싶다.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로 남겨두고,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고 말해두고,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없는 삶에 대한 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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