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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저녁밥은 초라하다

by 휴지기

"엄마 밥은 내 밥에 비해 너무 초라하네."


아들이 이틀 전에 한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 급성장기 아들은 뭐든 많이, 잘 먹는다. 음식에 재능도 흥미도 없는 나는, 볶음밥이나 치킨마요덮밥, 만두밥전 같은 한 그릇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도드람에서 양념이 다 되어있는 제육볶음이나 돼지갈비, 닭갈비 등을 사 와서 조리만 해준다.


예전에는 고기를 참 자주, 많이 먹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돼지를 키웠기 때문에 냉장고에는 항상 집에서 직접 잡은 돼지고기가 부위별로 가득했었고, 나는 그 다양한 부위의 고기들을 먹는 걸 즐겼다. 맛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래보다 많이 먹는 편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요즘에는 고기가 잘 땡기지 않는다. 가끔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위도 줄어들었나 저녁은 서너 숟가락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나는 원래, 뭐든 잘 질리지 않는 성향이라 무생채 하나만 있어도, 열무김치 하나만 있어도 그걸 일주일 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무딘 식성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몇 주째 남편이 집에 오고 있지 않아, 주말에 반찬을 만들 사람이 없다. 나는 일요일에 김치 볶음을 만들어 놓고 그걸 일주일 내내 먹는다.


그리하여 나의 저녁 식사는 아들에게 차려준 고기 두세 점과 볶음김치 딱 두 가지다. 거기에 주말에는 500ml 맥주 한 캔.


저녁을 후다닥 먹고 이십 분쯤 티브이를 보며 쉰다. 그러고 나서는 아들에게 운동하러 갔다 온다고 말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 당첨된 복권이 없으면 현금 이천 원을 들고, 당첨된 복권이 있으면 그걸 들고서.


당첨된 복권 금액은 주로 천 원이다. 천 원이 당첨된 천 원짜리 복권을 호주머니에 들고 복권집으로 빠르게 걸어가면서 생각한다.


혹시 이번에는 당첨될 수 있지 않을까? 큰돈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까? 우선 빚을 갚아야겠다. 복권이 당첨돼도 빚은 다 못 갚을 거 같은데.... 그래도 됐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나에게 할당된 행운이 지금쯤은 올 차례가 된 것 같으니 오억이 아니면 이천만 원이라도, 이천만 원이 아니면 오만 원이라도.... 하면서 천 원이 당첨된 복권 한 장을 똑같은 천 원짜리 복권으로 바꾼다.


물론 아직 한 번도 큰돈에 심지어 오만 원조차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건, 하루 삼십 분, 그 시간만이라도 희망을 가져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간만이라도 복권집에 갔다 오는 운동이라도 해야 이 지난한 시간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5월쯤이었을까, 열대야가 찾아오기 전부터, 열기가 가신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 조개구이를 먹고 싶었었다. 나는 조개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그냥 야외 테이블에 앉아 조개구이를 먹는 것이, 환하게 웃으며 조개를 불판에 구워 먹는 것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5월이 지났고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도 지났고, 이제는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이 되었다. 아직도 조개구이는 먹지 못했다. 언제쯤 먹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아이와 단둘이 먹는, 아이가 먹는 고기 두세 점과 볶음김치가 있는 나의 초라한 저녁 식사는 또한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지 모르겠다. 나의 천 원짜리 희망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여전히 천 원만큼의 희망을 안고 어디까지 꾸역꾸역 가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고 지금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별거 상태에 있다. 남편과 이혼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다가도 순간순간 미련 같은 것이, 혹시나 하는 기대 같은 것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모든 것은 나의 결심, 나의 판단에 따라 바뀐다. 나는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초라한 저녁을 먹으면서, 천 원이 당첨된 복권을 호주머니에 들고 복권집으로 가 똑같은 천 원짜리 복권으로 바꿔오면서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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