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차 팔고 작은 중고차로 바꿨어. 오빠 사업이 망했거든.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해두는 거야.
동생들과의 단톡방에 내가 보낸 메시지이다.
이번 주말 엄마 생신을 맞아 친정 근처 새로 생긴 펜션으로 놀러가기로 해서 여행 준비로 단톡방이 분주했었다.
펜션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없어 배달을 시켜 먹어야한다, 펜션에 밥통이 없다, 케이크는 누가 사올거냐, 엄마는 누가 모시고 펜션에 가냐 등을 가지고 논의가 한창일 때, 나의 저 메시지로 인해 단톡방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동생들 누구도 섣불리 답을 하지 못했다.
몇 분 뒤 둘째 동생이 답문을 보냈다.
- 아아...
다시 몇 분 뒤 막내 동생이 답문을 보냈다.
- 마음이 안 좋네.
둘째 동생도 같은 말을 했다.
- 나도 마음이 안 좋네. 언니 경제적으로 힘들어?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 힘들지
둘째 동생이 또 물었다.
- 괜찮아?
나는 솔직하지 못하게 답했다.
- 괜찮지
이게 그저께 우리 세 자매의 단톡 대화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 이틀간 누구도 톡을 올리지 않는다. 아마 동생들끼리 톡으로 또는 전화로 내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 차 바꿨다면서?"
"응, 누가 그래."
"누가 그러긴. 아니, 그렇게 힘들어?"
"응. 근데 지금 망한 건 아냐. 망한 건 이년 넘게 지났고 지금까지 그냥 버티면서 있었던 거야. 더는 안되겠어서 차를 판 거구."
"얼마 주고 팔았는데?"
"몰라."
"중고차는 엄청 싸다는데. 중고차는 얼마주고 샀는데?
"대답하기 좀 그래. 그런 거 자꾸 물어보면 나 집에 안 내려갈 거야."
"아유, 니네 아빠가 너 결혼한다고 니 오빠 데려왔을 때 너도 고생 좀 할거 같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딱 맞네."
"그런 말 자꾸 하면 나 집에 안 가고 싶어진다니깐."
"그래, 알았어. 끊어 그만."
전화를 끊고 엄마는 울었을 것이다.
어쩌면 동생들도 내 이야기를 하다가 울었을지 모른다.
나는 울지 않았다.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엄마의 저 말, 돌아가신 아빠가 남편을 보고 내가 결혼해 고생 깨나 하며 살거라고 했던 말은 내 결혼 생활의 복선과도 같은 예언이었고, 엄마는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저 말을 주워섬겼다.
맞는 말이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이번 주말에 친정에 가고 싶지 않다. 엄마와 동생들의 표정, 안쓰러워 죽겠다는 그 표정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안쓰러워 죽겠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을 직면할 용기가 없다.
나 역시, 아무 것도 아닌 척, 쿨한 척, 눈물나지 않는 척 연기할 자신이 없다.
그리하여 마음 한구석에 친정에 가지 않을 핑계를 찾아보는데 아무런 핑계도 생겨나지 않는다. 아이나 내가 요즘 유행하는 독감에 걸리는 것밖에는 핑계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둘 중 아무라도 독감에나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내게 난처한 상황을 피하려고 아이가 아프길 바라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하찮아,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난은 힘들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하며,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그런데 가족에게 가난을 들키는 것 또한 힘들다. 불쌍해 죽겠다는 시선, 안타까운데 뭔가를 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눈빛, 그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나같이 쿨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진절머리나게 부끄럽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선을 견뎌내며, 진절머리나게 부끄러운 시간들을 버텨내며 친정에 다녀올 것이다.
인생, 어차피 마음대로 안 되니까, 그렇다고 일부러 독감에 걸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언젠가는 잊히겠지, 언젠가는, 기약할 수 없는 훗날의 어느 순간에는 이 일들도 웃음으로 승화하여 가볍게 말할 수 있겠지, 기대하며 다녀올 것이다.
날이 춥다.
마음이 아프니 몸이라도 아프지 않기를,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