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직장이 가까워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그런데 어제는 오후에 출장이 있어 점심 먹고 집에 가서 차를 가지고 출장을 가야 했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과 '출장 갈 때 회사 앞을 지나가겠다, 시간 맞춰 지나가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겠다' 이런 시답잖은 농담들을 주고받다가 한 사무실 동료가 말했다.
"아 그런데 차가 뭔지를 몰라서 확인을 못해보겠네."
그랬더니 내가 차를 판 줄 모르는 다른 사무실 동료 A가 말했다.
"저 선배님 차 뭔 줄 알아요 OO이잖아요."
내가 말했다.
"아, A 씨는 나 차 판 줄 모르는구나. 나 차 팔고 작은 중고차를 다시 샀어요."
A가 농담처럼 말했다.
"왜요? 급전이 필요해서?"
내가 놀라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지? 똑똑하네."
당황했는지 농담을 던졌던 A는 곧바로 내 말을 받아치지 못했다. A는 원래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주말 잘 보내라는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요즘 나의 새로 생긴 특기이다. 분위기를 갑자기 싸하게 만드는 것.
나는 생각이 없어 솔직한 편이다. 뭔가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취사선택하여 보여주고 하는 것에는 재주도 없을뿐더러,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그런 것들을 현명하게 해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비교적 진솔하게 말하는 편이다. 나의 삶에 대해.
결혼 초반에는 얼마나 남편이 일중독인지에 대해 말했다. 남편이 일주일에 6.5일을 일해서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울산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내가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했는지, 그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악을 쓰고 싸웠는지에 대해 말했다.
내가 예전 글에 쓴 것처럼 우리의 결혼생활이 이적의 '다행이다'로 시작해 마찬가지로 이적의 '거짓말거짓말거짓말'로 끝나가고 있다고,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의 '찬밥처럼 방에 담겨' 있는 어린 화자처럼, 나도 찬밥처럼 집에 담겨 있다고 말하면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게 진짜냐면서도 내 하소연을 듣고 소리 내어 많이 웃었다. 나는 이게 진정한 해학이라면서, 나는 불행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하곤 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에게 아빠는, 한 달에 한두 번 와서 재미있게 몸으로 놀아주는 삼촌, 또는 한순간 나타났는가 하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이 나에게는 아주 힘들었다. 내 적성이 아니었다. 타지에서,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말 그대로 고군분투했다. 외로웠고 서글펐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웃으면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을 원망하는 새로운 비유들을 만들어냈고,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도 웃기다고 말했었다. 그랬었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지금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한다. 친밀한 사람들에게는 이혼서류를 제출하러 법원에 갔다 왔다는 말, 돈이 없어 차를 팔았다는 말, 남편이 일을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며칠을 앓았다는 말, 남편의 무릎이 아작이 나서 일어날 때마다 비틀거린다는 말들을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말들을 듣고 사람들이 웃지 못한다. 나만 웃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뭐, 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역시나 또, 남편이 보내기로 약속했던 돈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재촉하고 닦달할 때마다 남편은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줘."
결혼 초반부터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결혼 생활 12년 동안 남편이 말한 '조금'이 지난 시간은 한 번도 도래하지 않았다. 남편의 '조금' 이후의 시간은 어쩌면 유토피아, 무릉도원 이런 것처럼 세상에는 존재하는 않는 이상적인 어떤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 나의 현실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어떤 세상.
2년 전, 내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샀던 크리스마스 에디션 세 장의 수건들이 이제는 다 낡아 버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내고 싶고 돈은 없고 해서 산 빨간색, 초록색, 하얀색의 수건이었다.
2년 전 이즈음에는 2년 후에도 그때의 나처럼 여전히 이렇게 가난하고 구질구질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도 분명히 남편이 '조금만'을 외쳤기 때문에 조만간, 그 '조금'이 지나간 시간이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헛된 말을 믿으면서, 수건 따위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내가 조금 아니 많이, 짠하다.
한 달 반 뒤가 이혼 확정(?) 기일이다. 한 달 반. 남편이 말한 '조금'이 나에게는 딱 그만큼 남았다. 오래 기다렸다. 지쳤고, 그래서 많이 체념하고 포기했다. 산뜻하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 이런저런 연락들과 우편물들, 수많은 불안과 걱정들을 털어버리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다. 남편이 오면 또..... 싫지 않다. 이번 주에도 갑자기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해서 '치킨 먹을래?' 묻던 남편이, 급한 일이 있어 집에 내려왔다고, 작업하다가 그대로 내려와서 옷이 말이 아니라고 멋쩍게 웃으면서도, 집 앞에서 사 온 치킨과 맥주를 내미는 남편이,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망할, 역시 내 발등을 도끼로 내려찍은 것도 나고, 섶을 들고 불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간 것도 나고, 그 높은 절벽에서 안전장치 없이, 겁 없이 뛰어내린 것도 나다.
기형도의 엄마 걱정을 적어본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시절은 지나갔기를 바라며, 이제는 우리가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쉴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