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개천절 다음날인 금요일이었다. 아이 학교는 재량휴업일인데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재량휴업일이 아니라서 오전에 아이가 몇 시간 혼자 있어야 했다. 혼자 집에 있을 아이가 짠해서 그 전날, 농담처럼 말했다.
“내일 엄마 출근할 때 너도 같이 갈래? 엄마 학교 도서관 가서 책 읽고 있어.”
“내가? 왜?”
“그냥, 고등학교 어떻게 생겼는지 보면 재밌잖아.”
“엄마, 내 학교도 가기 싫은데 엄마 학교를 가야 해? 절대 싫어.”
아이는 ‘절대’라는 단어에 강세를 두어 말한다. 아이의 쓸데없이 시크함이 재미있어 풋, 하고 웃었다.
아이는 학교 가는 걸 싫어한다.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그건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왜 학교 가는 게 싫으냐고 물으면 재미가 없다고 대답한다. 혹시 누군가가 아이를 불편하게 해서 그러는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정말, 진짜로 학교에서 하는 활동들이 재미가 없는 것 같다. 학교 수업에도 흥미가 없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랑 노는 것도 가끔만 재미있다고 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도서관에 간다고 했다.
혹시나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선생님께 여쭤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물론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의 모든 부분을 다 파악하실 수는 없으시겠지만 선생님이 보시기엔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주말에 종종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만나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이 아이는 왜 학교 가는 걸 싫어할까, 생각해 본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인데, 그리고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텐데 학교가 재미없으면 하루의 많은 시간이 재미없어진다는 건데 싶어 조금 아쉽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나도 참 학교를 싫어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밤 10시까지 해야 하는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별을 보겠다고 운동장에 누워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에게 말했다.
“야, 하늘에 별이 창창한데 교실에 틀어박혀 공부를 꼭 해야 되냐?”
날씨가 좋은 토요일 오전 수업 시간에는, 창가에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눈부시고 화창한 날 교실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어야 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수업은 그런 생각들, ‘나는 여기 왜 있는 것인가? 내 앞에 있는 수학 문제가 과연 저 햇빛보다 중요한 것인가?, 나는 열여덟인데, 공부 말고 연애를 하는 게 훨씬 더 적당한 나이가 아닌가?’하는, 지금 되돌아보면 사춘기의 허세에 가득 찬 생각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몹시 낭만적이라고 여기던 생각들, 혹은 공상들을 하면서 수업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나는 계속 학교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학교가 나에겐 어떤 구속과 같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진짜로 한 번 학교에 가지 않은 적이 있다. 아니, 학교는 갔는데 기차가 타고 싶어 조례 전에 다시 학교에서 나왔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그날 내가 응시하지 못한 과목의 기말고사 시험 성적은 거의 0점 처리가 되었고, 그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재수까지 하게 되었다.
사범대학에 들어간 나를 보고 고등학교 때 친구는 어이가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야, 너 날씨 좋다고 수업 안 하고 애들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그러면 안 된다.”
그 친구의 우려는 기우였다. 직업을 갖고 나서 알게 된 건데, 나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함께 관계되어 있는 일에는 굉장히 소심하고 걱정이 많았다. 날씨가 좋아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일 따위는, 함부로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내가 왜 이 나이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그러니까 함부로 속단해서 말하고 섣부르게 예단해서 행동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학창 시절에 느꼈던 학교에 대한 감정들, 그러니까 학교는 내 자유를 구속하고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 내가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되돌아본다.
어제 아이의 안경을 바꿨다. 안과에서 처방받은 걸 안경점에 가져갔더니, 안경점에서 안과 처방이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왼쪽 눈이 한 단계 더 나쁜데 덜 나쁜 것으로 되어 있고 난시도 있는데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안경점에서 물어봤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안과에서 처방받은 대로 할까요? 아니면 여기서 측정한 걸로 할까요?”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안과 선생님을 바꿨는데, 괜찮은 분이라고 추천받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안과 처방대로 해달라고 할까? 그래도 난시 교정은 되는 게 좋지 않을까? 안과 처방대로 해달라고 하면 앞에 있는 분이 기껏 측정해 줬는데 안과 의사 결정만 따른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결국은, 나름의 절충안을 마련해 왼쪽 눈 시력은 안과 처방대로 했고 난시는 안경점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참, 이렇게 우유부단해서 어쩌나, 점점 시시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