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침 9시가 조금 못 되어서 아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전에 커피 한 잔 하자는 전화인 줄 알고 기쁘게 받았다. 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휴직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알차게 놀자고 다짐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이 친구 엄마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언니, 언니 아들 지금 다시 집으로 가던데요. 무슨 일 있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진짜냐며, 확인해 보고 이따 전화하겠다고 말한 후 부랴부랴 창밖을 내다보았다. 진짜였다. 우리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잠옷 차림 그대로 신발을 꿰어 신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을 눌렀다. 지하 1층에서 문이 열린 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와 딱 마주쳤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아이는 어제저녁부터 내일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모둠별로 역할극을 해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떨린다고 했다. 역할극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새싹, 흙, 바람, 햇빛(정확하지 않다. 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네 개의 역할로 나누어 새싹이 잘 돋아날 수 있도록 흙, 바람, 햇빛이 도와주는 내용이었다.
우리 아이가 맡은 역할은 ‘흙’이었다.
“새싹아, 네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아이는 역할극에서 이거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그걸 다른 아이들 앞에서,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 해야 한다는 게 너무 떨리고 긴장된다고 했다. 내가 ‘괜찮아, 다른 아이들도 다 그래. 떨리는데 참고 하는 거야.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작게 말해도 돼.’ 이런 갖가지 말들로 용기를 주려고 노력해도 아이는 그 용기라는 게 잘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우는 걸 억지로 보냈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다면 당연히 하루 빠지라고 했겠지만 발표 못하겠다고 학교에 가지 않는 건 너무 나약한 생각 같았다. 앞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상황이 무궁무진하게 많이 있을 텐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발표를 회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아이는 아주 서럽게 울었다.
“엄마, 엉엉, 나 진짜, 엉엉, 학교 안 갈 거야, 엉엉엉”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나도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 아이는 내 짐작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아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 담임선생님께 전화해 상황을 말씀드리고 조금 늦게 등교할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한참을 울다가 가까스로 그쳤다. 서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를 설득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들로 설득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어렸을 때 너보다 더 심했다, 선생님이 질문하신 것에 입모양으로라도 대답을 하면 발표를 시킬 것 같아 정답을 알아도 입도 벌리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다 떨고 있을 것이다, 친구들 앞이 아니라 엄마 앞이라고 생각하고 얘기를 해라, 연기를 못하겠으면 그냥 교과서에 있는 대로 읽어도 된다 등등 그때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설득을 말들을 떠올려 최대한 따뜻한 표정과 말투로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는 결국 학교에 가기로 했다. 근데 문제가 또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교실에 늦어갈 때 반 친구들이 다 자기를 쳐다볼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뒷문이 드르르 열리고, 앞에 서 계신 선생님과 자리에 앉아있는 스무 명 넘는 아이들의 시선이 한순간 자신에게 향할 거 같아서, 그런 순간이 만들어지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머리 잘랐네'라고 아는 체하는 게 싫어 머리도 자주 자르지 않는 아이였다. 그 찰나의 시선과 적막을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으니. 어찌어찌 설득을 해서 학교까지 데리고 갔다. 아이는 학교로 함께 걸어가는 내내 자기 얼굴을 좀 확인해 달라고 했다. 운 게 티 나는지. 코가 빨갛고 눈이 부어 있었다. 당연히 티가 났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아니, 하나도 티 안 나. 괜찮아. "
학교 중앙현관에 도착한 아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침 지나가는 선생님이 계셔 사정을 말씀드리고 아이를 교실까지 데려다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렸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학교 끝나고 '오늘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아이가 대답했다.
"괜찮았어. 별로 떨리지도 않았어."
"그래, 해보면 별 거 아니야. 고생했어 우리 아들."
하기 전에는 죽을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이 있다. 그러니 중요한 건, 해보는 것이다. 아이는 지금도 발표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만약 1학년 때, 발표가 두려워 그 순간을 겪어내지 않고 피했다면, 그 순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통과하지 않았다면 아이는 아직도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한 번 부딪쳐보지도 않고, 오직 상상만으로 말이다.
아이가 흙 역할을 맡아 모둠 역할극에서 했던 대사를, 내가 아이에게 돌려준다.
“새싹아, 네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아이가 자꾸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걸 고백한다. 예를 들어
“엄마 나 요즘 스트레스 좀 받는다고 했잖아. 그럴 때 자꾸 나쁜 말이 나와.” 라든지
“엄마, 나 오늘 본 유튜브에서 욕이 좀 나왔어.”, “엄마, 나 오늘 학원에서 멍 때려서 선생님께 지적받았어.” 이런 것들
한 번은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근데 왜 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 엄마한테 다 말해? 말 안 하면 엄마 모르니까 더 좋은 거 아니야?”
“몰라, 그냥 말하면 마음이 편해.”
아이는 말을 함으로써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날 하루 동안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 같다.
다행이다. 자신이 실수하거나 잘못한 것을 그대로 마음에 죄책감으로 묵혀두지 않고 나에게 꺼내 보일 수 있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남아있어서 말이다.
물론 '아직은' 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