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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지기 Oct 23. 2024

젖몸살에는 양배추를 붙이고 있으면 좋다구?

지 50일쯤 되었을 때 모유를 끊었다. 모유가 많이 나오지 않아 분유와 모유를 함께 먹이고 있던 중이었고, 젖꼭지가 함몰이라 보조기 같은 걸 착용하고 모유를 먹였는데 그것도 아이는 잘 물지 못했다. 모유를 끊으면서 다른 아이들보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우리 세대는 다들 모유보다 분유가 더 좋은 줄 알고 분유만 먹고 자랐는데 대체로 건강하잖아,라고 합리화를 하며 모유를 끊기로 결심했다.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자, 이미 만들어진 모유를 빼지 못한 가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아이에게 모유를 한 번만 빨리면 좀 시원해질 것 같은데 그랬다가는 다시 이런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겪어야 할 것 같아 참고 있었다. 가슴 통증 때문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가슴이 아파 인터넷에서 단유 젖몸살 줄이는 방법에 대해 검색했다. 인터넷에는 양배추를 가슴에 붙이고 있으면 통증이 조금 덜해진다고 나와 있었다. 양배추라니, 양배추는 얇게 채 썰어서 샐러드로 먹거나 반투명하게 데친 뒤 쌈을 싸 먹는 식재료로만 알고 있었는데, 양배추가 젖몸살을 줄여줄 수 있다니, 양배추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나는 마트에 가서 큼직한 양배추 반 통을 사 왔다. 양배추를 깨끗이 씻어 겉에 있는 초록색 잎은 떼어내고 가장 적당한 반구형 양배추 잎을 두 개 뜯어 가슴과 수유브라 사이에 끼워 넣었다.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지만 처음이니까 그렇겠거니, 통증이 조금씩 없어지겠거니 기대했었다.     


양배추를 수유브라 속에 끼워 놓은 채 하룻밤을 지냈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다. 딱딱해지는 가슴이 실시간으로 통증으로 변했다. 가슴 통증 때문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쪽잠을 자야 했다. 둘째 날은 조금 더 작은 잎을 골라 넣었다. 아무래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빈 공간 때문에 양배추의 효과가 없는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찬가지였다. 가슴을 조금만 스쳐도 통증이 너무 심했다. 몇 년 전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도, 온 배와 등에 수포가 올라와 보고 있기가 징그러웠을 때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이건 너무 심하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모유가 콸콸 나왔던 것도 아니고, 모유를 오래 먹였던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통증만 클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몸뚱어리가 참 비루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양배추는 이틀까지만 끼워 넣고 있다가 빼버렸다. 그리고 통증은 삼사일일쯤까지 지속되다가 없어졌던 것 같다.     


그 양배추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볶음밥에 넣어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냉장고에 묵여 두었다가 겉면이 까매진 이후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를 낳으면서 느끼게 된 것 중 가장 큰 사실 하나는, 인간이 동물이라는 것이었다. 산부인과 의사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어야 했을 때, 출산 중 아이 낳을 통로를 넓혀야 한다고 가위로 생살 자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을 때, A4 용지만 한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더러운 개천을 보며 가슴에 유축기를 끼워 넣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모유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을 때, 아, 맞다, 인간은 동물이었지,라는 사실을 너무나 선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지금도 양배추를 보면 그때 생각이 종종 나곤 한다. 젖몸살 없애겠다고 양배추를 가슴에 붙이고 있던 모습을 기억해 보면 우습기도, 허탈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우스웠던 적이 어디 이것뿐이었겠는가? 

     

아이 옆에서 함께 자다가 발뒤꿈치에 눈두덩이를 맞고 불이 번쩍, 했던 순간에 ‘눈앞이 번쩍 한다는 게 실제로 있는 거구나’라는 걸 새삼 깨닫고 어이가 없어 혼자 웃었던 적도 있었고, 팔 베고 누웠던 아이가 잠이 든 것 같아 드디어 육아 해방이다를 속으로 외치며 팔을 서서히 빼던 찰나, 동그랗게 뜬 아이 눈에 깜짝 놀라며 아이의 뜬 눈이 이렇게 무서울 때가 있구나를 느낀 후 스스로 한심하고 우스웠던 적도 있었다.   

  

혼자서 우스워지고 허탈해지고, 또 한심해하고 부끄러워하면서 육아를 하고 있다. 양배추를 가슴에 붙이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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