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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그림

춘봉 씨의 대파 밭.

by 날개



지난겨울을 얼었다 녹기를 얼마나 한 건지.
삭풍에 겉잎이 바스러지는 줄도 모르고 버텨 오던 대파가 연둣빛의 새순을 올린다.
땅 한 줌까지 아껴 안방 담벼락에 바짝 붙여 매년 대파를 심었다.
창고에서 스프링클러를 들고 나온 춘봉 씨는 땅콩 밭과 대파 밭 사이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갈등한다.
결국 대파 밭 쪽으로 자리 잡은 스프링 쿨러에서 분사되는 물줄기.
봄 볕이 부서져 내리면서 물방울과 함께 무지개를 만든다.

곱다. 고와.

이맘 때면 봄 가뭄에 늘 전전긍긍했다. 셋째가 첫 휴가를 온다고 연락 온 지가 40여 년이 흘렀다.
편지에는 휴가 나와서 밭 다 갈아줄 거라고 했었는데.
군에서는 휴가를 떠났다고 했고 셋째는 아직도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탈영인지 실종인지 모르는데 행방불명된 것으로 주민등록에서도 없어져 버렸다.
소식을 알아보려 해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세월.
그 시절 세상이 어수선했던 5월.
춘봉 씨는 대파 꽃이 피면 올 줄 알았던 셋째를 오늘도 기다린다. 아직 꽃이 피려면 며칠은 더 걸릴 것이니.

쾅!
마침표 같은 안방문이 닫히는 소리에 숙자 씨가 기겁을 한다. 환기시키려고 열어 놓은 창문으로 대파 밭쪽에서 들이친 바람 탓이다. 창문을 닫으려는 숙자 씨의 발이 덤벙 젖는다.
방충망에 촘촘한 춘봉 씨의 표정이 스프링클러보다 더 젖어있다.
셋째가 온다고 했던 그해 5월의 그날처럼.
걸레질을 하며 보이지 않게 질금거리는 것은 숙자 씨만이 아니었다.
손만 올려 조심스레 창문을 닫는다.
방충망사이로 들어오는 봄볕이 닫힌 방문에 아련하게 물그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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