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하다. 한참 전부터. 여자는 연신 병상들 사이를 오갔으므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 눈이 여자를 따라다니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눈을 맞추지 않는다. 소리로 부를 수는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그래. 모른 척해봐라. 이따가 침대보까지 갈아야 할 거다. 눈을 거둬들여 천장에 매달아 본다. 잔무늬, 많이 시든 자잘한 꽃무늬. 비라도 머금은 듯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희뿌연 벽지가 딱 지금의 내 기분이다. 조금의 미동도 싫어지는 날. 이런 날은 대건이랑 야학공부방에서 몰래 라면 안주에 소주 한잔 하면 좋은데...... 대건이는 요즘 뭐 할까? 본지가 꽤 되었는데.
누나가 왔다며 여자는 그제야 내 밑을 열어 본다. 여자의 미간이 찌푸려지면 나도 지린내를 알아챈다. 맡은 건지 아니면 여자의 구긴 인상으로 코가 반응을 하는 건지 비린 듯 지린내를 맡으면 누나가 항상 가져오는 훼미리주스가 마시고 싶다. 시고 달큼한 오렌지 주스. 이뇨작용에 도움이 된다며 잘 챙겨 마시라 했지만 나는 늘 조금씩 아껴 마셨다. 너무 비싼 거라서.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렸어도 다른 보호자들 사이에 있는 누나는 바로 보였다. 머리를 또 잘랐나 보다. 이번에도 미용학원에서 잘랐는지 언바란스다. 나는 안다. 누나가 미용학원 수습생들에게 머리를 하는 이유를. 공짜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주스 때문일 거다. 나는 한 번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