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지 않나요

by 유연

소탈하고 꾸밈없지만 일할 때는 꼼꼼하고 단호한 사람. 함께 일할 때의 그를 그렇게 기억한다. 부산국제영화제 대외협력실장 자리에서 3년 전 퇴직하고 아이와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문현정님을 만나, 일과 돌봄 그리고 나이 듦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듯, 가죽공예를 배우며 직접 만든 가방 속에는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들어 있었다.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가면서도, 때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더불어 잘 정리해달라는 부탁까지 놓치지 않았다.


나트랑에서. 그림자 엄마

지금 내 삶의 핵심은 양육

잘 지내셨어요? 여행 다녀오셨다고요?

나트랑 갔다 왔어요. 어렸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은 아닌데, 로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 영화사 다닐 때, 몇 년을 별러서 뉴욕을 꽤 길게 갔었거든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고, 영화제에서 출장을 두 번 갔었어요. 베를린영화제, 우디네영화제. 그런 때 휴가 붙여서 혼자 돌아다니고. 근데 그때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지’ 싶을 정도로 약간 무모하게 여행을 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은 겁이 나서 어디 여행 가는 게 쉽지 않거든요. 이번 나트랑 가는 것도 가족을 인솔해서 가야 되니까 준비하는 과정에 압박이 되게 심했어요. 정확하게는 잘 몰랐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게 내가 지독한 J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가니까 너무 좋았고, 30대 때 그 욕망들이 다시 살아났어요.

국내여행도 재미있는 콘셉트로 가신다고요. ‘어디든 간다’라고 하셨죠?

네. 지금 어쩔 수 없이 한동안은 내 삶의 핵심은 양육인데, 아들과 뭔가 특별한 경험을 좀 해봐야 되겠다 하고요. 여행을 시작부터 재미있게 하면 애가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어디든 간다’라는 제목을 만들었어요. 전국팔도, 지역 뽑기를 만들어서, 뽑은 데는 무조건 간다 콘셉트에요. 이번엔 전주를 가게 됐어요.

일 그만두신 후, 시작하신 건가요?

그렇죠. 제가 퇴직하고 아이가 초등 2학년, 그때부터 이제 시작했죠. 그렇게 다니다 보니까 저는 애를 키우면서 뭔가 사람이 좀 발전한 것 같아요. 애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발전한 거예요. 국내에 진짜 가볼 만한 곳이 많더라고요. 정작 아들과 남편은 시큰둥하지만, 내가 만족하고 아는 게 많아지는 걸로 됐다. 그러고 있죠.


유일한 취미였던 영화가 직업으로

자연스럽게 일과 육아 얘기로 넘어가야겠네요. 영화계에서 일을 오래 하셨잖아요. 처음에 어떻게 영화 일을 하게 됐는지 생각나세요?

생각나죠. 대학생 때까지 부산에서 쭉 살았는데, 부산이 사실 할 게 별로 없잖아요. 유일한 취미가 영화 보는 거였고, 그래서 대학 다닐 때도 도서관 가면 항상 <씨네21>을 펼쳐봤어요. 그러다가 그 잡지 구인란을 통해서 영화 쪽 일을 시작했죠.

마지막 직장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거의 15년 근무하셨어요. 영화제 일은 영화사 하고는 또 많이 다르잖아요. 양육을 병행하기에 어렵지는 않으셨어요?

영화사에서는 홍보 마케팅 업무를 했지만, 영화제는 만들어진 콘텐츠를 상영하는 일들을 하는 거니까 다르긴 해요. 행사를 유치하는 업무가 주여서 일반 사무업무와 비슷해요.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연예인 많이 보지도 않아요.(웃음)

영화제는 1년에 3~4개월 정도 몰아서 일을 하고 나머지는 조금 여유 있게 일할 수 있어서, 육아하기에는 나쁜 환경은 아니었어요. 3~4개월 정도는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해서, 친정엄마 도움을 받았죠.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는 특히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일을 그만두신 건, 아무래도 돌봄 문제가 영향이 있었을까요?

그건 6대 4 정도 같아요. 양육이 6이고, 4는 이제 더 못 다니겠다. 회사의 상황도 그렇고, 저도 지쳤었거든요.

그래도 오래 일했는데, 마음이 어떠셨어요?

진짜 허탈하긴 하더라고요. 일하는 동안 여러 번 그만둘까 했어서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안한다 했던 건데도, 딱 그만두게 되니까 좀 허탈하더라고요. 한동안은 소속이 없는 느낌이, 좀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고 그랬어요. 그래서 내 생활을 되게 열심히 했어요. 한 1년간은 운동도 요가, 수영, PT 바꿔가며 하고, 가죽 공예도 배우고.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았죠. 지금은 돈 안 드는 러닝하고 있어요.(웃음)


화를 덜 내기, 중요해요

아이가 아직은 초등학생이니까, 말씀하신대로 지금 생활의 중심은 양육이실 텐데요. 일을 그만둔 이후에 돌봄에 대해서 달라진 생각이 있으신가요?

애한테 오롯이 집중하고 있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워킹맘일 때는 스스로가 막 모성애가 있다고는 생각 안했고, 낳았으니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그런데 집에 있으니까 이제 얘가 일이니까, 일하듯이 얘한테만 집중하게 돼요. 그러면서 육아를 다시 시작하게 된 상황인 것 같네요. 그래서 그 동안 엄마가 없었으니까 못 한 걸 실컷 해줬죠. 물론 뭐 화도 내고 했지만.(웃음) 요즘은 너무 애한테 몰입하면 오히려 안 좋겠다는 걸 깨달아서 덜하려고 하는데, 걱정이 되게 많은 스타일이라 잘 안돼요. 점점 고쳐 나가려고 하는 거죠.

관심을 조금 덜 가지려고 하신다는 건데, 그래도 이건 꼭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을까요?

화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강식 챙기고 그런 거 좀 내려놓고 화를 덜 내는 엄마가 차라리 낫지 않나 이런 생각. 일단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나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제도 화를 냈지만...근데 화를 내면 항상 사과는 잘합니다.(웃음)

사과를 잘 하신다고 꼭 쓸게요. 아이뿐만 아니라 육아를 도와주셨던 친정어머니도 돌봄이 필요한 연세가 되셨을 것 같은데요.

네. 작년쯤부터 그런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친정엄마랑 성격이 안 맞아서 애를 봐주실 때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이제 나이가 드시니까 혼자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 내가 모시고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누구든 신세를 지면 되게 계속 갚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도 내 아이를 돌봐줬으니까, 내가 또 돌봐줘야 되는 일정 부분의 빚이 있다는 생각도 있고. 제가 퇴직하고는 잔소리를 전처럼은 안 하시니까, 늙으셨나 싶어서 약간 안쓰러움도 생기고요.

그때까지는 딸도 돌봐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왜냐하면 양육을 도와주고 계셨으니까, 딸도 아직 엄마의 돌봄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셨겠어요. 이렇게 얘기하면서 또 하나 배우는 거죠. 저도 나이가 들면서 환경이 바뀌니까 생각도 바뀌는 것 같아요.


가죽공예를 배우며 만든 가방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지 않나 싶어요

50대가 되니까 아무래도 달라지는 것들이 있지요?

몸이 먼저 아는 것 같아요. 몸이 막 여기저기 아프고, 이거 갱년기인가.(웃음) 신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이제 좀 젊은 아이들을 못 따라가는 것들 있잖아요. 직장 다닐 때도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게 50인 것 같고. 직장을 그만두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늙는 게 약간 겁이 나기도 하고요.

50이 여러모로 분기점이셨네요. 마침 건강 이야기를 하셨는데, 재작년에 수술도 받으셨잖아요. 나를 돌보는 것도 필요한 시기죠.

저한테는 큰일이었죠. 애가 아직 어리니까, 스무 살 될 때가 환갑인데 그때까지는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는 진짜 얘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살아야 되겠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가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보다는, 애를 돌보지 못할 상황이 되는 게 걱정이고. 어쨌든 50이 되고부터는 아이 때문에도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은 이제 70까지, 20살까지 키우고 10년만 즐겁게 살자 라는 목표?(웃음) 그래서 공부하느라 쉬었던 러닝도 다시 하고 있죠.

맞아요. 최근에 사회복지사 공부도 하셨잖아요. 그것도 돌봄과 관련된 일이네요.

의도를 가지고 한 건 아닌데, 저는 약간 운명론자거든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될 일이라서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복지사도 그냥 우연히 하게 된 거지만, 나중에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한 과정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항상 끊임없이 뭔가를 하시는 것 같아요. 언제든 그냥 가만히 쉬지는 않으시는데,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뭔가 멋진 말을 해야 될 것 같은데..(웃음)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지 않나 싶어요. 왜 그런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얘기하면서 나를 발견하게 되네요. 양육은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고, 내가 흥미를 가지는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전업주부로서의 일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거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거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장 돈 버는 일이 아니라 이런 가방을 만들더라도, 그래야 오늘 하루는 내가 뭔가 했다 싶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으세요?

지금은 일단 사회복지사 자격증 기다리고 있고요. 하반기부터는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사실 심리적으로는 좀 겁이 나죠. 나이가 드니까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도 어려워지고요. 어딜 가도 나보다 다 어린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부담감이 있어요.


잘되면 좋고 안 돼도 괜찮아

아마도 다시 사회생활을 준비하실 것 같은데, 앞서 아이를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책임감을 말씀하셨잖아요. 아이에게 강조하는 가치관이 있는지, 어떤 어른으로 자랐으면 하시는지요?

거짓말은 절대 안 된다. 그걸 항상 얘기하고요. 친절한 사람이 되자. 남의 말을 잘 듣자. 그리고 제가 원한다고 그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잘되면 좋고 안 돼도 괜찮아’ 그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어른도 하기 힘든 걸, 아이들한테 너무 완벽한 인간을 요구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아요. 그래서 완벽하지 않아도 사회에 부딪히면서 깨달아가고,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이 아이가 나하고는 조금 더 다르게 살았으면 해요.

아이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이거 하나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바라시는 게 있다면요?

바뀌기 힘들겠지만, 공부만 가치 기준으로 삼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해요. 그건 진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들이 공부만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전직 영화인이시니,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좋았던 작품 추천 부탁드려요.

극장 가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은 넷플릭스를 많이 이용하게 되네요.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더 원더>가 생각나요. 가족으로 인한 상처, 혹은 어떤 죄책감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어요. 그리고 4월에 개봉하는 <끝장수사>. 전 직장에서 제작한 영화라 미리 추천합니다.

사전 홍보까지, 직업정신을 잃지 않으시네요. 역시 일 체질이신가봐요.

아, 그런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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