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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맥도강
Sep 02. 2024
자유통행
6회
대통령은 NSC회의를 마치자마자 곧장 평양의 정 위원장 집무실로 직통전화를 걸었다.
한시각이 급했던 상황이라 이런저런 요식행위는 생략하고 대통령이 직접 정 위원장을 찾았다.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의 2층에 위치한 정 위원장의 집무실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호위사령관이었다.
곽 사령관은 당연히 남쪽의 당직자가 전화를 건 것으로 생각하여 거만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
“남쪽에서 뭔 일이요! 남쪽에서 머시기 볼일이 있었어 전화를 건 것이오?”
“아 네 위원장님께서 직접 받으셨군요, 저는 한국대통령입니다!”
“아 아 그러십니까! 몰라뵈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는 대원수님을 호위하는 호위사령관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라요, 대원수님께 연결해 드리갔습니다!”
호위사령관이 어찌나 당당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지 대통령이 순간적으로 정 위원장으로 착각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독도전쟁 이후 남북의 두 정상은 이따금씩 직통전화기를 마주 잡았다.
민족의 생사가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온 정신을 집중하여 다시금 목소리를 마주했다.
남북정상의 집무실에 설치된 구형의 검정색 직통전화기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위원장님! 오늘 미국대통령과 장시간 통화를 했습니다,
사태가 워낙 심각하여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말씀 안 하셔도 미국대통령이 뭐라고 협박질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만 우리 공화국은 일없으니 편안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전화상으로 길게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민 대통령이 이렇게 머뭇거리는 데는 CIA에 의한 도청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마 머릿속에서 맴도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을 때 대통령의 조심스러운 태도와는 달리 정 위원장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뭐 오늘 밤에라도 우리 공화국을 까부수겠다고 협박 질이라도 한 모양입니다만 우리도 충분히 대비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재래식으로 싸우자면 재래식으로 싸울 것이고, 핵으로 싸우자면 핵으로 상대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 어떤 전쟁에 대해서도 우린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작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민 대통령이었고 정 위원장은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정 위원장도 도청의 우려를 잘 알고 있었기에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의 성격이 강했다.
“위원장님! 일단은 우리가 만나야겠습니다,
지체 없이 만났으면 합니다!”
“그럽시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일전에 대통령님이 제안하신 건에 대해서는 우리도 전폭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할 테니까 이참에 실무적으로 종결을 짓는 것이 좋갔습니다,
또 미제가 우리 공화국에 대해서 뭐라고 협박 질을 했는지 대통령님께 한번 들으나 봐야 갔습니다!”
남북 정상 간의 짧은 통화는 이후 전개될 엄청난 일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평상시 같았으면 수십 년도 더 걸렸을 법한 대단히 어려운 의제들도 민족적 위기상황 앞에서는 단 며칠 만에 해결해 내는 광속의 속도전이 펼쳐졌다.
말 많은 정치권조차도 우리의 국토를 지키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낡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발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반도가 북미 간의 핵전쟁 터가 될 수도 있는 국가적 위기국면 앞에서는 여야의 정쟁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적어도 이민족의 침입 앞에서는 똘똘 뭉쳐서 함께 싸우려는 오래된 DNA가 있었고,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낸 최근의 성과물도 있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길게 뜸 들일 여유도 없이 2029년 11월의 첫날 속전속결로 만남은 이루어졌다.
아침 아홉 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만난 두 정상은 오전 내내 실무회담을 가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
도 내외신 기자들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모종의 협의정도로만 생각했지 또 다른 중요 의제가 협상테이블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이미 남북 간에는 큰 틀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라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남북 정상 간의 합의문 서명식을 오후 일정으로 잡아둔 상태였다.
점심을 마친 두 정상은 그 유명한 도보다리를 거닐며 미국이 들었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을법한 은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위원장님! 뉴프레지와의 통화 중에 알게 된 중대한 사실이 있습니다,
전쟁이 발생한다면 어쩌면 미군만의 단독작전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이 말에 정 위원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자위대를 끌어들여서 미일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면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민 대통령의 다음 말은 정 위원장의 비수를 찌르고 말았다.
“다음 달 24일을 최종 기한으로 설정하면서 그때까지 위원장님께서 굴복하지 않는다면…"
차마 다음 말을 바로 잇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린 후 다시 이어나갔다.
"즉석에서 성탄절 폭죽놀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작전에는 놀랍게도 일본이 아니라 중국지상군과의 합동작전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방금 이 말은 정 위원장으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정 위원장의 오른쪽 눈가 주변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순간적으로 다리 난간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잠시 현기증이 나서 중심을 잃었던 것인데 대통령이 부축을 하려고 하자 정 위원장이 웃으면서 제지했다.
“일없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우리를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데 허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갔지요!”
실제로 이 장면들은 지금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촬영하는 방송카메라로는 방금 전의 이 상황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여 두 정상이 나무벤치에 마주 앉았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삭이면서도 정 위원장은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했다.
“성탄절 폭죽놀이라고요?
그것도 자위대가 아니라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미제와 합동으로 쳐들어온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위원장님! 공중과 지상으로 역할분담을 한 모양입니다,
위원장님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중국의 괴뢰정권을 수립하겠다는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그렇게 야합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저 멀리 숲 속에서는 고성능의 망원경카메라로 두 정상의 입모양을 집중적으로 촬영하면서 필요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인 정 위원장이 준비해 온 접이식 전통부채가 저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민 대통령의 발언 중에도 손수 부채를 펼쳐서 가림 막을 만들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중국의 배신행위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동안 언급을 자제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실상은 북중관계의 파탄을 상징하는 단어였습니다!
이천 년대 들어서 동북공정이 등장하자 우리 장군님께서도 이제는 중국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자주 말씀하셨더랬지요!
예로부터 중국은 우리의 국토에 관심이 많은 외세였습니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저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고구려에 뿌리를 두고서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해 온 우리 공화국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으니 말입니다”
따듯한 눈빛으로 정 위원장을 바라보던 민 대통령이 별안간 정 위원장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위원장님 고맙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합의한 여행자유화 조치는 장차 민족통일의 굳건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이 힘을 합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정 위원장도 자신의 나머지 왼손을 대통령의 두 손위에 다시 얹으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우리를 둘러싼 외세들이 제아무리 미쳐서 날뛰더라도 우리 민족을 영원히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본시 하나였기에 언젠가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암요 조만간에 그렇게 될 겁니다,
우리 민족의 역량을 총동원해서라도 겨레 앞에 닥친 작금의 위기상황을 잘 극복해 냅시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각기 맞잡은 양손을 힘차게 흔드는 것으로 더욱 과시되었다.
민 대통령이 미리 준비해 간 서류봉투를 정 위원장에게 전달하면서 저 멀리서 영상을 찍고 있던 내외신기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조만간 중국을 방문하여 시 주석을 만날 계획입니다,
시일은 촉박합니다만 그때까지 우리 측의 제안에 대한 판단을 해주신다면 중국 방문길에 큰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우리 대통령님을 대단히 신뢰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다 좋습니다,
민족의 번영과 우리 인민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사업이라면 마다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위원장님”
정 위원장이 보란 듯이 활짝 웃으며 컬컬하게 말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받아버리면 됩니다!
코쟁이든 땟놈이든 쪽발이든 까짓것 얼마든지 오라 하십시오!
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을 다시 한번 더 보여줄 테니까 말입니다!”
TV모니터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미중일 지도부의 반응은 신기하게도 비슷했다.
통일한반도의 위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존재였
다.
세계 8위의 한국 경제력과 정교하게 완성된 핵보유국 북한과의 결합은 끔찍할 정도로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세 나라는 통일 한반도의 도래를 막을 수 있는 필승의 카드 한 장을 아껴두고 있어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TV모니터를 지켜봤다.
판문점 평화의 집 1층 로비에서는 남북한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인들이 ‘남북정상회담 기념 평화음악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공연을 준비할 시간이 극히 짧았음에도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축하공연들이 풍성하게 이어졌다.
지금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가야금과 대금 4중주의 조화 속에서 남북의 두 여가수가 ‘나의 살던 고향은’을 감미로운 목소리로 열창하고 있다.
석양이 붉게 타오를 때쯤 드디어 남북의 두 정상이 나란히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사전에 그렇게 합의를 한 듯 정 위원장이 먼저 마이크 앞에 섰다.
십일 년 전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세기의 정상회담을 하면서부터 정 위원장은 이미 국제적인 지도자로 부상되었다.
“오늘 우리 북과 남의 두 정상이 기쁜 마음으로 합의한 것들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모두 두 가지인데 먼저 개성공단에 관한 건입니다,
개성공단을 오가는 모든 출입인과 통관물품에 대하여 아무런 제한 없이 전면적인
입출경
을 허용하겠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시설의 설치와 사용도 24시간 제한 없이 전면 보장하겠고…”
정 위원장의 발표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지만 이 정도의 발표만으로도 내외신 기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정 위원장이 만면의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놀라고 그러십니까!
지금 발표하려는 두 번째의 합의사항을 들으시면 놀라서 뒤로 자빠지겠습니다!
기자 선생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이제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정 위원장의 재치 있는 입담에 좌중은 폭소가 터져 나왔지만 정 위원장의 바로 옆자리에 서있던 민 대통령은 다음순간 의식적으로 표정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북과 남은 육지와 바다 하늘길을 망라하여 모든 방면에서의 전면적인 자유왕래조치를 상호 합의하였습니다!”
이것은 개성공단의 활성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내외신 기자들뿐만 아니라 TV를 통하여 이 방송을 지켜보던 지구촌의 모든 이들이 함께 흥분하는 순간이었다.
장내는 또다시 카메라 플래시 터트리는 소리와 고함치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때 당돌하게도 맨 앞줄에 앉아있던 독일출신의 젊은 여기자가 번쩍 손을 들었다.
아직 질문시간이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정 위원장을 향하여 큰 소리로 질문했다.
“한반도의 통일을 합의하신 겁니까?”
질문소리가 너무도 또렷하여 1층 기자실은 물론이고 방송을 지켜보던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는 순간이었다.
몹시도 당황한 척 두 눈을 번쩍 뜨는 쇼맨쉽으로 대응하던 정 위원장이 해맑게 웃으면서 민 대통령을 바라봤다.
그러자 민 대통령도 밝은 표정으로 화답하면서 침착하게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통일로 나아가는 첫걸음 정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도로와 철도부터 시행하고 바닷길과 하늘 길은 준비가 되는대로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도로와 철도는 이미 남북 간에 연결된 구간들이 있습니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간단한 입출경 신고를 마치게 되면 최장 180일까지 남북한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한번 터져버린 질문공세는 이젠 기자들의 질의응답시간이 되고 말았다.
“EU처럼 국경을 완전히 개방한다는 것입니까?”
“언제부터 시행합니까?”
정 위원장은 이런 식의 혼란스러운 기자회견은 적응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민 대통령은 일상적인 경험자답게 능수능란하게 대응했다.
“남북한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입출경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스마트폰에 탑재된 모바일 여권을 제시한 후 입출경을 확인하는 스탬프만 받게 되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한 시점에서 남북한이 내어놓은 이 파격적인 조치의 첫 반응은 한마디로 초대박이었다.
여기저기서 질문들이 쉼 없이 쏟아졌다.
“외국인도 간소화 절차로 북한여행이 가능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외국인도 남과 북에서 체류하는 기간의 범위 안에서 최장 180일 동안 구분 없이 가능합니다”
“방문 횟수에는 제한이 없습니까?”
“네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유학이나 취업 등 장기체류도 가능합니까?”
“현재 남북한이 적용하고 있는 규정보다도 훨씬 완화된 형태의 장기체류 규정을 남북한 당국이 구체적으로 협의해서 조만간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때 조용히 취재에 임하고 있던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한국특파원 기자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남과 북은 이제 이 간소화 여행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서로를 다른 나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민 대통령이 옆자리의 정 위원장을 바라보면서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민 대통령은 지금 고도의 정치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 정 위원장은 평소의 거침없는 성격답게 시원하게 답변했다.
“그렇습니다! 종국적으로 북과 남은 곧 합해져야 할 통일의 대상이지 서로 다른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의 여행자유화 조치는 그 대장정의 첫발을 땐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머지않아서 손전화기에 출입국일자를 찍는 번잡스러움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맨 뒷줄에 앉아 있던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이탈리아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고 대통령이 지목했다.
“이 여행조치는 1989년 11월 10일부터 동독이 시행하기로 했던 여행 간소화 행정조치와 매우 흡사합니다,
혹시 그 당시 동독이 시행하려던 행정조치를 벤치마킹한 것입니까?”
민 대통령이 이 이탈리아 기자를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보더니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잘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독은 여행 간소화 행정조치를 시행도 해보기 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이한 독일은 이후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남북한은 독일의 통일과정을 교훈 삼아서 미래의 통일시점이 다소간 지연되더라도 안정 속에서 통일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그 첫 조치로서 남북한 국민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선택했습니다,
팔십여 년간의 분단체제로 형성된 이질적인 감정은 결코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부대끼면서 점진적으로 동질감을 회복해
나
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번조치는 남북통일의 연착륙을 시도하는 대단히 중요한 조치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뉴욕타임스의 서울특파원도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큰 키에 금발의 머리를 단아하게 뒤로 묶은 중년의 여기자였다.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한 시점입니다,
과연 위험한 북한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한국인들이 있을까요?
오히려 대량의 탈북사태가 발생하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11월 9일 밤의 대혼란이 재현되지 않을까요?
불편하시겠지만 정 위원장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이 끝나자 모두는 정 위원장의 얼굴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싫든 좋든 그는 이제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고약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뚜벅뚜벅 단상으로 다가오고 있었을 때 사람들의 생각만큼 그의 표정이 어둡지는 않았다.
또다시 세계인들은 정 위원장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치 그는 연설하듯 씩씩하게 말했다.
“오늘 우리 북과 남의 두 정상이 합의한 여행자유화 조치는 큰 혼란 없이 정착되리라 자신합니다!
내가 우리 공화국의 인민들을 믿지 못하였다면 이러한 행정조치는 결단코 결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자선생 말대로 남쪽으로 내려간 우리 인민들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지도자는 인민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 것입니다,
기자 양반! 답변이 되었습니까?”
다소 거친 화법으로 만용에 가까운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정 위원장은 인상 한번 쓰지 않고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넘치는 여유에서 우러나는 그 당당함 앞에서 뉴욕타임스 기자조차도 더 이상은 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 위원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을 때 그의 태도는 더욱 결연해 보였다.
“금년 봄에 있었던 독도전쟁을 모두들 기억하실 겁니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우리 공화국이 결행했던 핵무력의 과시는 외세로부터 우리 민족의 국토를 지키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습니다!
금일 북과 남이 합의한 여행자유화 조치는 통일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민족적 차원의 조치입니다,
따라서 차후 미제가 일으키게 될 전쟁과는 그 어떤 관련성도 없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빌려 분명히 밝힙니다!”
일명 워룸이라 불리는 백악관의 전시상황실,
참모들과 함께 로켓맨의 넘치는 만용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뉴프레지의 큼직한 오른손 안에서는 텍사스산 호두알 두 개가 '삐꺼덕'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있었다.
무표정한 자세로 뒤쪽 벽에 기대어 서있던 튼볼보좌관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오히려 잘되지 않았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실제로 저 조치가 시행된다면 칠십 퍼센트가 넘는 평양시민들이 한국으로 탈북하게 될 텐데 평양은 삼일 안에 유령도시가 되고 말 겁니다,
부담 없이 크리스마스 폭죽놀이를 즐기게 생겼으니 차라리 잘됐습니다!”
작전명 ‘크리스마스 폭죽놀이’는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백악관의 당면 과제가 되어 벼렸다.
세계인들 앞에서 마음껏 지껄여대는 북한지도자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어느 누구도 미국을 세계 최강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뉴프레지는 구겨져버린 미국의 체면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더욱 빡세어진 텍사스산 호두알 부딪치는 소리를 통해서 재차 확인했다.
평화의 집 로비에서는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멈출 기미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오늘 합의한 두 조치들은 언제부터 시행합니까?”
“지금 즉시 발효되는 것입니까?”
외신기자들의 질문공세는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튀어나왔지만 어느새 정 위원장도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농담까지 곁들이면서 또박또박 답변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준비시간을 거쳐서…”
정 위원장의 이 말에 장내는 또다시 폭소의 도가니가 되고 말았다.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을 미중일의 지도자들에게 보여주려는 정 위원장의 계산된 자신감이었다.
“오늘 북과 남이 합의한 모든 조치들의 시행일은 다가오는 10일부터입니다”
“왜 하필이면 11월 10일부터입니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때 민 대통령이 정 위원장에게 부담스럽다면 대신 답변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려 했지만 정 위원장은 그럴 뜻이 없었다.
“다가오는 11월 10일은 동독이 시행하고자 했던 여행자유화조치의 사십 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회피하지 않고 이 세계사적인 날과 정면으로 부닥치겠습니다!
그 당시의 동독은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보란 듯이 멋들어진 결과물을 세계만방에 보여주갔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정 위원장이 민 대통령을 향해서 투벅투벅 걸어가더니 대통령의 왼손을 움켜쥐고 함께 만세를 불렀다.
세계인들이 지켜본 오늘 정 위원장의 모습은 대단히 적극적이고 자신감에 넘쳤다.
해맑은 표정으로 만세를 부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기 위하여 내외신기자들은 거침없이 카메라
플래시
를 터트렸다.
다음날 아침 민 대통령은 청와대의 창밖 표정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잠깐이나마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어 어느새 습관처럼 되어버린 행동이다.
어제 지구촌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어 놓았던 판문점회동을 회상하면서 이후의 일정에 대한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삼일특공대에서 작성한 한반도실행계획은 이제 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었고 다음 순서는 중국 흔들기였다.
미 공군과 중국 지상군이 공중과 지상에서 동시에 공격해 들어온다면 현실적으로 막아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G2의 공조를 깨뜨리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어떻게든
중국을 흔들어서 저들 간의 공조를 깨뜨려야만 작은 희망의 싹이라도 틔울 수 있었기에
중국을 흔들어야 했다.
삼일특공대에서 제시한 중국흔들기의 비밀 병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의 역린 건드리기였다.
이 문제를 두고서 장고를 거듭하고 있었을 때 비서실장이 다급하게 들어와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대통령님! 수에레브 교황대사로부터 방금 연락이 왔는데 교황께서 쾌히 승낙하셨답니다!
이번 성탄절 축하 미사를 평양에서 하시겠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이 말에 대통령이 얼마나 기뻤던지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몇 차례나 힘차게 흔들어 됐다.
“다행입니다! 정말 잘됐어요!”
대통령은 그래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던지 혼자 박수를 치기도 하면서 기쁨에 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교황께서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정말 큰 결심을 하셨어요,
이제야 저 멀리서 다가오는 평화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서실장도 감격에 겨운 듯 눈가 주변이 붉어졌다.
비서실장이 말할 땐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나마 떨렸다.
“교황님의 평양방문 사실을 크게 알리는 홍보 전략을 준비하겠습니다!”
“암요 암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교황께서 전쟁의 먹구름을 물리치기 위해서 한반도로 오신다는데 크게 영접해야겠지요,
두고 보세요! 교황님의 방문으로 이제 한반도는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게 될 겁니다,
아니 꼭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하늘이 주신 기회가 분명합니다!”
저녁 무렵 로마교황청의 긴급성명이 발표되었다.
교황이 성탄절 기간인 12월 22일부터 26일까지 사박 오일 간의 일정으로, ‘한반도평화를 위한 평양대기도회’를 주관하기 위하여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이었다.
교황의 평양방문 소식에 미국이 발끈하고 나섰다.
국무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서 교황의 평양 방문은 북핵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식적인 철회를 요청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뉴프레지가 날린 SNS
X
는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늙은 교황이 치매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며 조롱했던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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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가톨릭신자들의 분노를 자초하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고 이로 인하여 교황의 평양방문에 동행하겠다는 가톨릭신자들이 구름처럼 늘어났다.
미 대통령의 전용 휴양지인 캠프데이비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준비 중이던 뉴프레지는 튼볼 안보보좌관에게 소리쳤다.
“그런다고 우리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폭죽놀이가 취소되는 일 따윈 절대로 없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튼볼!”
튼볼은 아무런 댓구없이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뉴프레지의 느닷없는 돌출행동 때문에 부글부글 끓었다.
뉴프레지의 정제되지 않은 텍사스 카우보이식 지도력이야말로 미국이 당면한 심각한 리스크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11월 10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새벽부터 경의선도로에는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남북출입사무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제1차로 개방된 두 곳의 도로 출입로 중 대부분은 경의선출입로로 몰려들었다.
실제로 동해선 출입로에 비해서 이동자체가 편하기도 했지만 개성공단으로 입출경하는 관계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삼통이 자유로워진 개성공단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두 곳의 철도 남북출입사무소는 막바지에 접어든 북한지역 철로 구간의 공사가 끝나는 대로 제2차로 개방될 예정이다.
그리고 항만과 공항을 이용한 일반인들의 여행까지는 실무적인 준비과정을 더 거쳐서 제3차로 개방될 예정이었지만 기업이나 정부차원의
입출경
은 오늘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정각 아홉 시가 되자 출입관리사무소의 문이 활짝 열렸다.
일반 차량들은 좌우의 창문을 열고 양방향으로 설치된 검색대 위에 스마트폰을 접촉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모바일 여권을 검색기에 살짝 갖다 대자 곧바로 ‘삐리릭’ 소리와 함께 출입일자의 스탬프가 자동으로 찍혔다.
그런데 대형버스가 들어오자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휴대용 검색기를 지참한 출입사무소의 직원들이 직접 버스에 올라서 처리하려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나마 현 상황에서는 최상의 방안이기는 했지만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옥에 티가 분명했다.
대형버스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양호한 편이었다.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교통카드로 요금을 지불하는 행위와 같았기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의 행렬도 빠르게 빠져나갔다.
예상했던 대로 노인들을 모시고 가는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았고 거의가 북쪽의 고향을 찾아가는 이산가족들이었다.
한국 전쟁 때 무심코 떠나온 고향땅을 팔십 년이 다되어 방문하게 된 실향민들의 설레는 감정은 차량에 가득 실린 선물보따리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서 대기 중인 귀향인들 가운데는 어느덧 사만 명을 웃도는 북한이탈주민들의 행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윤 비서관의 삼일특공대에서는 처음부터 이들을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이들의 역할 여하에 따라서는 사십 년 전의 동독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 거대한 차량행렬들 사이에는 의외로 외국인들도 많았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동토의 왕국을 하루라도 빨리 경험하고 싶은 호기심 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무전여행지로 선택한 것이다.
이들의 복장은 간편복에 배낭 하나씩을 어깨에 메고 있었을 뿐 자유로움에 방해되는 그 어떤 거추장스러움도 거부했다.
그들의 배낭에는 한결같이 삼각모양의 작은 깃발들이 나부꼈다.
천주교 평양교구 명의로 대량 제작하여 북한으로 출경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준 예쁜 깃발로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양 대기도회’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만 명의 젊은이들 대부분은 마지막 일정으로 평양대기도회에 합류할 계획으로 북한지역의 들과 산을 마구 헤집고 다닐 예정이었다.
젊음이라는 열정은 대단히 전염성이 빠른 특징이 있어 이들로 인하여 북한의 젊은이들도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천천히 그렇지만 광범위하게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말이다.
윤 비서관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장 팀장과 함께 이 역사적인 장면을 마주했다.
장 팀장의 태블릿 PC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던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의 현재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봤다.
“정 위원장이 대량 탈북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 근거는 뭘까요?”
이 말에 윤 비서관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의 왕국을 이미 이십 년 가까이 통치한 지도자라면 인민들에 대해서 가지는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있지 않겠어?
자신감의 표현이겠지!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만 제1단계의 한반도 실행계획은 무난히 안착될 거야”
“늦어도 한 달 안에는 결정이 나겠지요?”
“어쩌면 한두 주안에 판가름 날 수도 있겠고…”
북한을 향해서 끊임없이 밀려들어가는 차량들의 물결은 이 시각 현재 전 세계의 이목을 또다시 한반도로 집중시겼다.
경이로운 시선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던 윤 비서관의 감정이 벅차올랐다.
“저 행렬들을 보라고! 한번 터져버린 통일의 물줄기는 이젠 누구도 막을 수가 없을 거야,
저 도도한 역사의 물꼬를 누구라서 막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야.
난 우리 민족의 역량을 믿어! 멋지게 해낼 거야 우리 민족은!”
정작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내심으론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걱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1989년 11월 9일 밤 한꺼번에 몰려든 동독인들에 의해서 철옹성과 같았던 베를린 장벽은 일시에 무너졌다.
그런데 사십 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북한 주민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초조한 심정으로 자유 통행 3일째를 무사히 보낸 다음날 아침이었다.
민 대통령은 최 실장과 국토부장관을 집무실로 불러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점검했다.
대형 벽걸이 TV화면에서는 4일째 자유통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의 출입경 표정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동시에 개성과 금강산, 평양의 실시간 현장 모습들이 생동감 있게 방영되고 있어 마치 통일이 이루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화면을 골똘히 바라보던 대통령이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하는 말이다.
“장관! 세계 최강의 IT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모바일 여권에 스탬프를 찍느라고 저렇게까지 시간을 허비해야 되는지 고민해 볼 문제 같지 않습니까?”
버스에 오른 출입사무소의 직원들이 휴대용 검색기를 이용하여 일일이 전자스탬프를 찍느라 지체되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던 대통령이 하는 말이었다.
“대통령님의 지시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조치한 결과입니다만…”
장관의 이 말에 대통령이 화면을 더욱 뚫어지게 쳐다봤다.
“장관! 하이패스처럼 할 수는 없을까요?
모바일여권을 일일이 수동작으로 확인할 것이 아니라 하이패스처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나라의 교통 업무를 총괄하는 국토부장관이 대통령의 질문에 쩔쩔매고 있었다.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대통령의 질책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대통령은 당장의 명료한 해답을 원했기에 장관의 다음 말을 잘라버렸다.
“우리나라의 IT기술 수준이라면 장관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실력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장관!”
얼굴표정이 사색으로 돌변한 장관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대통령이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알아요 장관! 쉽지는 않다는 것을요!
하지만 통일을 향해서 거침없이 질주해야 할 판국에 저런 자잘한 걸림돌들은 우리 정부가 나서서 신속하게 치워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정부의 역할이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저희들의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차후로는 대통령님의 지적에 앞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도록 더욱 긴장하겠습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더욱더 긴장해서 통일의 문을 활짝 열어젖힙시다,
우린 잘할 수 있어요, 아니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국토부장관이 돌아가자 대통령은 습관처럼 집무실의 서편 창가 쪽으로 걸어갔고 최 실장도 이내 뒤따랐다.
청와대의 경내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구경하던 꼬맹이를 발견하자 대통령이 익숙한 동작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엄마의 치맛자락 뒤로 재빨리 숨어든 꼬맹이가 3층 창가를 빼꼼히 바라보고 있었을 때 꼬맹이의 엄마가 대통령에게 가벼운 목례로 감사를 표했다.
이렇듯 우리 국민들과 언뜻언뜻 눈길이 부딪칠 때마다 대통령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에너지의 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이렇듯 열심히 창가로 걸어갔다.
“최 실장! 잘되겠죠?”
“이제 겨우 삼일이 지났습니다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이제 겨우 삼일이 지났지요,
그런데 난 어째서 삼 년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매일매일이 피가 마르는 것 같아요”
“정 위원장님을 믿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자신감이 넘쳐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음 행보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북경말씀이시죠?”
“그래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되겠지요!
제아무리 크고 강대한 국가라 할지라도 약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굳이 그들의 목덜미에 난 비늘을 움켜 잡아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되겠지요,
그래야만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다면 난 당연히 그렇게 할 겁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대통령은 마치 그 옛날 고구려의 안시성을 지키던 양만춘 장군의 결기처럼 말하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장군의 마음가짐이 이처럼 단단하지 않았을까?
한반도를 향해서 거의 매일 발진하던 전략폭격기들의 출격 횟수도 남북한의 여행자유화 조치 이후 잠시 뜸해졌다.
하지만 동서해상을 휘젓던 세척의 항공모함은 여전히 주변을 맴돌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동해는 니미츠호가 미일연합훈련을 핑계 삼아 어슬렁거렸고 서해는 레이건호와 루스벨트호가
한반도
인근해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주체 못 할 힘을 과시했다.
항공모함 세 척이 한 달 가까이나 한반도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은 뉴프레지 대통령의 경고가 단순한 허풍이 아님을 알게 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미 대통령 뉴프레지가 공언했던 대로 전쟁은 다음 달 성탄절 이브까지만 잠시 유보되었을 뿐이다.
그 안에 북한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크리스마스를 콕 찍어서 폭죽놀이를 개시하겠다는 백악관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촌 사람들이 그토록 오지 않기를 바랐던 공포의 12월은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전쟁이 될지도 모를 북미전쟁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팔십 년 전의 참혹했던 전쟁을 또다시 경험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는 정파와 이념의 구분이 없었다.
전쟁을 회피할 수만 있다면 남과 북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해 보자는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충분히 형성돼 있었다.
이런 와중에 극우성향의 한 야당 정치인이 유튜브 방송에서 했던 말이 큰 논란을 야기했다.
뉴프레지 대통령이 예고했던 ‘크리스마스 폭죽놀이’를 환영한다는 실언을 함으로써 그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
급기야 이 정치인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는데 그만큼 전쟁을
회
피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내부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한 달 전 도보다리 위에서 민 대통령이 정 위원장에게 전해준 서류는 삼일특공대가 작성한 한반도 실행계획의 제2단계 보고서였다.
정 위원장이 평양으로 돌아가고서 정확히 2주일의 시간이 지났을 때 대통령집무실의 검정색 직통전화기가 또다시 즐거운 비명을 질러 됐다.
“일전에 대통령님께서 전해주신 선물에 대해서는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해 보았더랬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그래요 까짓것 한번 해봅시다!입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대통령님만 믿고 가볼 테니까 우리같이 큰일 한번 저질러봅시다!”
“정말 잘 결정하셨습니다!
위원장님의 결단으로 우리 민족은 이제 올바른 이정표를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두 강대국이 연합하여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민족최대의 위기 상항입니다만 우리가 한 덩어리로 대응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북과 남이 힘을 합친다면야 그 무엇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우리 공화국은 이제 아무런 의심 없이 대통령님과 함께 갈 테니까 우리가 함께할 통일여정을 잘 안내해 주십시오!”
자유여행을 기반으로 하는 제1단계의 한반도실행계획에 이어서 보다 심화된
제2단계로 넘어가는 결단도 정 위원장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OK’ 싸인으로 화답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 위원장의 결단은 곧장 행동으로 옮겨졌다.
남과 북의 실무진들이 서로 마리를 맞대고 실무준비에 돌입했다.
이미 정 위원장이 삼일특공대의 보고서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터라 핵심사항에 대해서는 특별히 시간을 끌만한 쟁점사항은 없었다.
속도감 있게 준비한 합의사항들이 최종적으로 정리되자 12월의 첫날인 토요일 아침, 남북한 정부가 동시에 중대 소식을 발표했다.
다음 주 월요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중대 합의사항을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이 소식에 세계의 여론은 또다시 한반도로 집중되었고 서울과 평양에 파견된 특파원들을 잔뜩 긴장시켰다.
최근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뉴스들은 웬만하면 초대형 특종감이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 이 합의내용을 알아내어 특종 보도할 것이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한편 은밀히 진행되던 한반도 내부의 일들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던 미중일 세 나라 정부는 태연한 척하던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적전 분열의 조짐마저 보였다.
이미 3주 전에 NEO작전도 마무리되었지만 뉴프레지 대통령이 너무 시간을 끌면서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불만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백악관 내부에서도 튼볼 안보보좌관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지만 대내외의 빗발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뉴프레지 대통령은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치킨게임도 상대가 돼야 짜릿할 텐데 말이야,
이봐! 우리 미국은 대형트럭 나비스타야!
그깟 미니 서브콤팩트 정도를 가지고 무슨 걱정들인가!
내가 한국대통령에게 약속한 크리스마스 폭죽놀이는 지상최대의 불꽃놀이가 될 테니까 두고 들 보라고!”
미국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나비스타 이론은 천만다행으로 우리 민족에겐 전쟁에 대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팔십 년 전의 참상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남과 북의 팔천만 구성원들은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태세였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도 동정 어린 시각으로 응원했다.
드디어 세계인들에게 요란하게 예고되었던 그날이 되자 판문점 자유의 집 일대는 몰려든 내외신 기자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합의사항을 발표한다고 했으니 전면적인 여행자유화를 뛰어넘는 초대형 메시지를 기대하면서 잔뜩 입맛을 다셨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된 시간인 열 시가 다가오자 내외신 기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자유의 집 일대가 온통 금빛 물결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남북한의 국회를 통째 판문점으로 옳겨놓은 듯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에서부터 가슴팍에 금배지를 단 의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태양빛에 반사된 금배지들이 여기저기서 빛을 발산하여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한국의 국회의장단과 원내대표단 각 상임위원회의 의장단까지 참석했고, 북한에서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단과 3개 부문위원회 위원들까지 총출동하여 그 위세를 과시했다.
경쟁적으로 터트리기 시작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자유의 집 앞마당에서는 남북한의 실무진들이 준비한 특별한 이벤트가 시작됐다.
오늘의 메인이벤트에 앞서 흥겨운 전통놀이 한판이
펼쳐졌다.
한지바구니가 매달린 대나무장대를 중심으로 사물놀이패가 신명
나게 놀기 시작했다.
열기가 달아오르자 남북의 두 의회수장을 필두로 남북한의 정치인들이
모래주머니 몇 개씩을 움켜쥐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징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한지바구니를 향하여 각자의
손에 쥔
모래주머니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세계인들은 오징어 게임에서도 보지 못한 이 재미난 놀이에 푹 빠져들었다.
대나무에 매달린 종이바구니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지만 모래주머니의 공격 횟수가 더해지자 어느덧 조금씩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북한의 입법위원들이
합심하여
다시
집중적으로 그 틈새를 공격하자 드디어 종이바구니가 떡하니 두 동강 나고 말았다.
이때 현장에 모인 내외신기자들은 물론이고 TV 생중계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지구촌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축 대통합코리아연방 통일헌법제정 준비 위원회’라고 써진 현수막이 힘차게 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통일헌법제정 준비 위원회는 순수하게 남북의 두 의회가 중심이 된 위원회였다.
남북 의회의 두 수장이 공동 준비위원장이 되고 남북의회에서 각기 다섯 명씩 모두 열 명의 위원들로 구성되었다.
위원회가 내년 3월까지 통일헌법의 시안을 마련하게 되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 남북 의회의 의결절차를 거쳐서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내년 7월 중 헌법제정을 위한 제헌선거를 거친 후 대망의 통일헌법을 공포하면 늦어도 내년 하반기 중으로 통일정부를 구성하기로 전격 합의되었다.
그동안 철저하게 보안에 부쳐왔던 한반도의 통일 일정이 드디어 전 세계인들 앞에 화려하게 공개된 것이다.
이렇게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놓고 일순간 터트리는 충격요법이 필요했던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리려는 성탄절 폭죽놀이의 부당성을 최대한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도보다리 위에서 민 대통령에게 전해 받은 보고서를 정 위원장이 토시하나 달지 않고 전폭적으로 수용했던 것도 사실은 현실적인 타당성에 그 이유가 있었다.
삼일특공대는 처음부터 북한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 타당성에 주안점을 두고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 6월 말
삼일특공대가 작성한 제2단계의 한반도실행계획을
보고하면서 윤 비서관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
다.
“완전한 통일은 십 년 후쯤으로 이월시키고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 가능한 체육과 산림 도로 철도분야라던가 문화 예술 관광 교육 분야에 걸쳐서 조심스럽게 확대해 나가
는 안입니다,
이념, 정치, 국방 같은 딱딱하고 서로 대립되는 분야들은 모두 내려놓고 이삼십 대 젊은 세대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그냥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봤으면 합니다,
당연히 코리아연방의 국기는 한반도기가 될 것이고 애국가는 아리랑이 되겠죠,
‘코리아연방’이라는 국호아래 남북한의 팔천만 국민들이 서로 부담 없이 하나 될 수 있는 작은 통일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코리아연방정부의 역할은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기존 남북한 정부의 역할은 자연히 축소되어 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통일의 마지막 단계인 제3단계의 한반도실행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학술적인 차원에서나 잠시 다루어지다가 공염불처럼 사라지고 말 보고서였지만 성탄절 폭죽놀이라는 민족최대의 비상시국 앞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한반도 실행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통일 밑그림은 기회를 만난 불씨처럼 거센 활화산으로 불타올랐다.
자유의 집 앞마당에서는 ‘축 대통합코리아연방 통일헌법제정 준비 위원회’라고 써진 현수막이 힘차게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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