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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04. 2024

중국의 역린

8회

국내성에서 한국대통령의 의전 책임을 부서기장에게 떠넘긴 채 홀연히 현장을 떠나버린 장더장 당서기의 행위는 그야말로 무책임의 극치였다.

그런 그가 황급히 당도한 곳은 장춘 외곽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전통찻집.

찻집 안쪽의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작은 룸은 밀담을 나누기에는 더없이 적당한 자리다.

“왕 회장! 느닷없이 나타난 한국대통령 때문에 졸지에 내 모가지가 달아나게 생겼소,

대통령이 북경에서도 한바탕 난리를 친 모양이던데 여기까지 내려와서 저 난리를 치고 다니니 내 목인들 온전할 수가 있겠소?”


탁자 위에 벗어놓은 하얀색 중절모를 어루만지던 왕 회장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장 서기장! 이럴 땐 말이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버릇을 가져봐요,

혹시 압니까? 그 속에서 해답이 보일지!

이런 때일수록 제대로 된 공을 세워서 북경양반들 묵은 체증을 시원하게 뚫어줄 생각을 해보란 말이오!”


오히려 공을 세워보라는 왕 회장의 달콤한 제안에 장 서기장이 구미가 당기던지 자리를 바짝 당겨 앉았다.

“오호라! 천지회 차원에서 벌써 비책을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그려”

찻잔을 내려놓은 왕 회장이 주변을 살피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려고 했을 때 그의 표정에선 비장감이 묻어났다.

“내일 한국대통령이 공항으로 이동할 때 지나가는 도로변에 우리 아이들을 대기시켜 놓을 테니"  


이 정도까지만 듣었을 뿐인데도 장 서기장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테러는 안 돼!

명색이 주변국의 대통령인데 수습이 안 되는 상황으로 내어 몰리면 내 모가지가 열 개라도 감당이 안 되지!

북경에서도 이런 방식은 원하지 않아요! 절대로 안 돼요 안돼!”


장 서기장이 호들갑을 떨면서 반대하고 나서자 왕 회장이 피식 웃으며 시거에 불을 붙였다.

“테러는 안 되지! 누굴 바보로 아시나?

그렇잖아도 북경에 앉아서 지시만 해대는 영감탱이도 수위조절을 당부하던데 내 말은 테러를 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개망신을 주자는 거지,

한국대통령이 북경대에서 함부로 지껄인 대가치고는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야!”


그제야 장 서기장의 표정이 돌변하면서 왕 회장 쪽으로 더욱 귀를 밀착시켰다.

“어떻게 말이요?”

왕 회장이 시거연기를 천장으로 쏘아 올리며 호기롭게 말했다.

“안 그래도 썩은 달걀 한 트럭분을 따로 장만해 두었거든!

마침 외신기자들도 잔뜩 몰려와 있으니까 홍보는 우리가 신경 안 쓰도 될 것 같고, 한참 폼 잡고 대통령차량이 지나갈 때 썩은 달걀을 퍼부어서 개망신을 주자는 거지!,

풋하하하! 한국대통령이 우리 땅에 와서 한 짓이 있는데, 고구려 광개토왕 코스프레를 하면서 출국하게 해서는 안 될 것 아니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 꼴이 정말 우스워지지 않겠어!”

“옳거니! 그건 안 될 말이지!

한국대통령이 동북지방까지 와서 고구려족 영웅놀이를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썩은 달걀을 퍼부어서 개망신을 주자는 그 말만 들어도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갑니다,

됐어요! 됐어, 그것으로 갑시다!”  


그런데 이들이 나누던 은밀한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 사람이 있었다. 옆방에서 찻잔을 정리하던 조선족 동포아가씨 종업원 영숙이었다.

하지만 영숙으로서도 정작 이 대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누구로부터도 주목받지는 않았다.


대통령은 5성급 호텔인 연변국제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길림성의 영빈관이 있는 장춘시까지는 이동시간만 해도 족히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 먼 거리라 대통령의 요청으로 가까운 연길시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 오전 연길공항에서 곧장 출국하는 것으로 일정의 조정이 이루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윤 비서관의 머릿속에서 대통령의 방중 이벤트가 기안되기 시작한 것은 뉴프레지 대통령으로부터 중국지상군이 참여하는 성탄절폭죽놀이의 실체를 전해 들은 직후였다.

윤 비서관은 삼일특공대로 하여금 특단의 대응책을 주문하면서 동시에 은하에게도 별도의 역할을 부탁했다.


11월 초의 어느 날 저녁, 조용히 연길공항에 내린 은하는 택시를 타고 오빠 창우의 집으로 향했다.

도로가에 흐드러지게 꽃 피웠을 코스모스 군락지도 어느덧 새까만 씨앗들만 남긴 채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반쯤 내린 차창을 통해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그리운 고향의 냄새 그대로다.

벌써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길을 지날 때면 코스모스 향내 맡으며 윤 비서관과 함께 걷던 추억이 소환되어 절로 미소 지어졌다.


같은 시각, 성주는 딱히 볼일도 없으면서 한적한 저녁시간을 택하여 무작정 연길시내를 걸었다.

기수와 경태마저 떠나버린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를 홀로 지키는 성주의 옹고집은 그의 스승 배 교수에 대한 의리 때문이다.

민족극장 앞을 지날 땐 지금도 배 교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아 문득 성주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배 교수는 이곳 동북 3 성지역을 고구려가 지배하던 우리 민족의 고토라고 주장하면서 우리 동포들에게 주인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머지않은 시기에 다가올 한반도 통일의 시기에 연변조선족 자치주까지를 아우르는 한민족의 대통일을 주장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주장이었고 바로 이 주장 때문에 장백산천지회가 겨눈 흉탄에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다.


연길시장 안쪽 한 편의 구석자리 우두커니 서있던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의 빛바랜 목간판이 보일 때까지 성주는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면서 걸어왔다.

교수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라지만 사실 홀로 연구소를 지키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부쩍 활력이 넘쳐났다.

일본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독도를 지켜낸 사건은 이곳 동포사회를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우리 역사에 대한 초빙 강의도 늘어나고 연구소 주최의 분기세미나도 활력이 넘쳐나자 성주를 주시하던 장백산천지회의 눈초리도 더욱 매서워졌다.


창우는 아버지가 장백산천지회의 흉탄에 비명횡사하자 그토록 충성하던 공산당으로부터 출당조치를 당하게 되어 크게 낙담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연길시내에서 부동산업자로 변신하여 제법 기반을 다졌다.

창우 특유의 친화력은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이곳 사회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져 공산당원이라는 특별한 타이틀을 박탈당하고도 뚝심 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창우는 동포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던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미안함을 다소나마 덜어냈다.


오래된 연구소의 목문이 삐꺼덕 소리를 내면서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손님이 창우와 함께 들어섰다.      

“은하 누나!”

이십여 년 전, 성주가 연변대학 사학과에 재학 중일 때 지도교수였던 배 교수의 연구실에서 처음 은하를 본 이후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런데 강산이 두 번이나 흐른 뒤에도 또다시 가슴이 콩닥거렸다.       

“잘 있었지! 아버지의 흔적이 지워지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성주가 이렇게 잘 지켜주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 든든한지 몰라, 정말 고마워!”


회의실로 사용 중인 중앙 홀에는 예닐곱 명의 연변대학 동포학생들이 다음 달 초로 예정된 4분기 학술모임을 앞두고서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성주의 안내로 중앙 홀을 지나 안쪽 내실로 들어섰다.

내실로 들어선 은하가 옛 생각이 났던지 작은 방안 여기저기를 살펴보면서 살포시 미소 지었다.

익숙한 듯 이불장위에 놓인 방석부터 꺼내 가지런히 놓은 후 마치 자신이 주인이라도 되는 듯 주방으로 가 찻상을 준비했다.


주객이 뒤바뀌어 버린 모습이 어색했던지 성주가 일어서려고 하자 창우가 제지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그냥 내버려 둬! 은하가 옛날생각이 나서 그러는가 본데, 그래도 요즘은 연구소에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네?”

“네, 독도전쟁 이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쪽발이와 코쟁이 놈들을 한방먹이지 않았습니까?

또 자유왕래로 남북 간의 통일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이곳 동포사회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성주가 최근의 동포사회 분위기를 신명 나게 말하고 있었을 때 준비한 찻상을 들고 은하가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단정하게 반무릎 자세로 앉은 은하가 녹차 잔에 뜨거운 물을 조심스럽게 따르더니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은 저 그냥 들어온 게 아닙니다,

지금 대통령님을 모시고 있는 윤 선생님의 당부 말씀이 있고 해서 들어왔습니다,

두 분이 도움을 주셔야 되는 사안이라…”

은하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면서 더욱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다음 달 중순쯤에 대통령님께서 중국을 방문하실 거래요,

어쩌면 마지막 일정으로 이곳을 다녀가실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만약 일정이 그렇게 정해진다면 연길공항에서 출국을 하게 되실 텐데 가급적 우리 동포들이 많이 나오셔서 환송을 해준다면…”


“형님! 난 매형의 의도를 알 것 같아요, 여기가 어딥니까?

동북 3성 가운데서도 조선족 자치주의 한복판 연길입니다!

우리 재중동포들이 출국하려는 한국대통령을 환송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중국공산당을 통쾌하게 한방 먹이겠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일격을 가하겠다는 한국정부의 전략으로 봐야 됩니다!”

그제야 창우도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 서방이 하는 일이라면 우리야 뭐…

그런데 벌써부터 으스스한 생각이 드는구먼,

어쨌든 극도로 조심해야 될 거야!

당국이 다른 건 다 용서해도 소수민족의 이탈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하는 법이 없거든!”                  


은하를 통해서 은밀하게 전달된 디데이 일자는 12월 20일 오전 11시 30분,

장소는 연변국제호텔이다.

이제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의 모든 관심사는 다음 달 한국대통령의 연길 방문에 대비한 물밑작업에 집중됐다.

창우는 행사준비에 보태라며 적지 않은 목돈을 쾌척했고 은하도 연구소의 청년단원들과 함께 거의 매일 일손을 보탰다.


성주는 연구소의 가장 큰 행사인 마지막 분기모임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 움직이면서 행사의 사이즈를 대폭적으로 키웠다.

배 교수 시절부터 분기모임의 횟수를 따져본 결과 족히 100회는 된다고 판단하고 대대적인 제100회 특집 행사의 홍보전략을 마련했다.

관건은 인원동원이었다.

최대한 많은 동포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딱딱한 학술토론회의 형식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색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회심의 빅카드가 있었지만 연구소의 역량으로서는 능력 밖의 일이었다.

이럴 때 은하가 나섰고 은하를 통하여 윤 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드디어 디데이를 하루 앞둔 오후시간,

연구소 홀의 정 중앙에 나란히 연결된 탁자에는 이십여 명의 청년단원들이 둘러앉아서 마지막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 한편에 끼어 앉은 은하도 바쁜 일손을 보태고 있었을 때 성주가 인쇄소에서 얻어온 색색별의 파지종이를 트럭짐칸에 잔뜩 실어왔다.

궁금해하는 청년단원들에게 파지 한 줌을 허공에 뿌리면서 말했다.

“어때? 대통령님 지나가실 때 우리 동포들이 휘날려줄 오색종이, 폼 나지?”


그런데 창문 밖에서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장백산천지회의 건달 서너 명이 갑자기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중 키 작은 녀석 하나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껌을 씹어대면서 실내에서 아무렇게나 침을 마구 뱉어 됐다.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 거니? 파지 쪼가리를 뿌려대면서 무슨 수작놀이를 하는 거니?

의! 성주! 내가 너희들 지켜본다고 했지?

조금이라도 말썽을 부리는 날엔 너희 조선족들 완전히 박살 내 버린다고 했어? 안 했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던 청년단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혈기왕성한 일이십 대의 청년단원들이 모두 일어나 눈알들을 부알이니 방금까지의 기세등등하던 천지회 패들도 일순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쌍방이 뒤 엉겨서 한판 붙을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성주가 겨우 만류하면서 사태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패거리 중 한 명이 은하를 골똘히 살피는 눈치였고 자칫 은하의 존재가 드러날 수도 있어 내심 성주의 신경을 건드렸다.

다행히 더 이상의 소란 없이 천지회 패들이 돌아갔을 때 청년단원중 한 명이 미러링 케이블을 이용하여 스마트폰과 TV를 연결시켰다.

그러자 국내성을 방문한 한국대통령이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장면들이 CNN 방송을 통해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중국의 언론매체들은 한국 대통령의 방중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지만 해외방송에서는 한중간의 역사전쟁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국내성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간도 땅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던 우리 동포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중국의 오십오 개 소수민족가운데 유일하게 본국과 국경을 맞대는 소수민족이 바로 조선족이다.

만약 이들이 본국에 통합되기를 바라는 독립투쟁이라도 벌인다면 그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나가 중국은 심각한 내전상태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이런 가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당국은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고, 그 사정을 모르지 않았던 자국 내의 언론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입소문이란 것이 발이 없어도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던가.

대통령의 방문소식은 그야말로 삽시간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대통령은 길림성의 부서기장이 준비하겠다는 만찬도 극구 사양한 채 가벼운 차림으로 연길시장 나들이에 나섰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의 현장모습을 몸소 체험해 보고 싶다는 명분으로 최소한의 수행원만으로 이동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이십여 년 전의 기억이었지만 몸이 기억하는 대로 윤 비서관은 익숙하게 앞장서 걸어갔다.


윤 비서관의 목적지는 근방에서는 제법 맛집으로 소문난 우리 동포가 운영하는 작은 순두부집이었다.

탁자 대여섯 개가 전부인 이 작은 식당의 손님들 대부분이 우리말을 사용하는 동포들이어서 대통령 일행은 정겨운 마음으로 빈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대통령은 이제 겨우 이틀 밤을 중국에서 보냈을 뿐인데도 마치 오랜 세월 억눌려 살아온 사람처럼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 압박감 때문에 마음 편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고 이제야 편한 마음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기다리던 순두부 뚝배기가 나오자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순두부 속살 위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끓고 있던 벌건 고추 다진 양념 위에다 통째 밥 한 그릇을 집어넣은 뒤 숟가락으로 쓱싹 말았다.

대통령이 연신 땀까지 흘리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버리자 일행들은 놀라운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윤 비서관은 은하의 안내로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에서 고향집과도 같은 편안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잖아도 이 식당에서 은하와 성주 일행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윤 비서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을 때 한국 대통령임을 알아본 주변의 동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시장 여기저기서 입소문을 듣고 모여든 동포들로 인하여 삽시간에 식당 밖까지 꽉 들어차게 되어 통행이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이때 자리에서 일어난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면서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주며 따뜻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는 ‘건강하셔야 됩니다!

곧 우리나라가 대통합 코리아연방으로 큰 통일을 이루게 될 텐데 그때까지는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된 우리나라를 꼭 보셔야 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 말을 들은 노인들은 대통령을 격하게 포옹하면서 울기도 하고 함께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굳이 고조선 고구려 발해까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청일 간의 간도협약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한 우리 민족의 영토로 존재했었다.

언제나처럼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었지만 일제의 농간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남의 나라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어버린 설움이 복받쳤을 것이다.

온갖 악전고투를 겪으며 힘겹게 살아가던 땅에서 생전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았겠는가!

모두가 함께 만세 부르고 눈물 흘릴 때 대통령도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기 위하여 안경을 벗었다.


밖에서 이 감동적인 장면을 지켜보던 은하와 창우는 더 이상의 진입을 포기한 채 군중들 사이에 파묻히고 말았다.

이때였다. 군중들 사이에 끼여 있던 한 앳된 아가씨가 감정에 겨운 나머지 울음을 터트렸다.

뜻밖에도 영숙이 울면서 주변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내일 대통령님 공항 가실 때 장백산천지회가 썩은 달걀을 마구마구 던져서 우리 대통령님을 망신 준다고 했습니다!

썩은 달걀을 한 트럭이나 던진다고 했어요!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 젊은 아가씨의 당찬 고발은 운집해 있던 수백 명의 동포들에게 치가 떨리는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평소 우리 동포들에게 온갖 패악질을 일삼던 장백산천진회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변을 방문한 고국의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해서 썩은 달걀을 한 트럭이나 던질 계획이라고 하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영숙의 폭로에 이어서 곧바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내일 대통령님 공항 가실 때 우리 동포들이 모두 나와서 배웅합시다!”


고함을 지른 사람은 성주였다.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의 청년단원들과 함께 식당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성주가 큰 소리로 외쳤고, 주변에 모여있던 수백 명의 군중들이 일제히 환호하면서 호응하기 시작했다.

“맞소! 맞소! 우리 동포들이 모두 다 나옵시다!”

“천지회 간나들이 썩은 달걀을 못 던지게 우리가 막아줍시다!”

“간도땅을 방문한 우리나라 대통령을 우리가 보호합시다!”


성주의 선동에 군중들의 반응폭발적이었다.

이럴 때 청년단원중 한 명이 식당에서 의자 하나를 잽싸게 들고 나와 성주 앞으로 가지고 왔다.

의자 위에 올라선 성주가 다시 한번 더 기세 좋게 외쳤다.

“내일은 팔십만 우리 동포들이 모두 나와서 만세운동을 벌이는 날로 정합시다!

연변국제호텔에서부터 연길공항까지 나란히 서서 대통합코리아연방을 지지하는 만세운동을 벌입시다!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썩은 달걀을 던지기 위해서 동원되는 천지회보다도 우리가 몇 배로 더 모일 수 있다면 대통령님을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연설을 마친 성주가 대통령을 바라보았을 때 순두부집 앞에 모인 수백 아니 어느새 수천으로 불어나버린 군중들은 일제히 환호성과 함께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환한 표정으로 대통령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성주가 내려온 의자에 올라갔다.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여러분들을 뵙고 있습니다만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 이 땅은 오천 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서려있는 우리 민족의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광개토대왕이 말달리던 고구려의 광활한 벌판이 바로 여기 간도 땅이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 이후 이 땅의 영유권을 두고서 여러 혼전이 있었습니다만 317년 전, 드디어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짐으로써 양국의 국경을 명확하게 확정 지었습니다,

동위토문 서위압록! 동쪽으로는 토문강이요,

서쪽으로는 압록강이 양국의 국경임을 백두산정계비에 또렷이 새겼습니다,

그래서 토문강과 연결된 송화강의 동쪽에 위치한 여기 동간도 지역, 지금 여러분들이 계시는 바로 이 땅이 분명한 우리 민족의 영토로 합의되었던 것입니다!”


“옳소! 옳소!”

모국의 대통령이 여기 조선족 자치주를 우리 민족의 영토라고 선언했으니 현지의 분위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던 동포들은 북받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눈물을 흘리면서 격정적인 동작으로 환호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저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의 표정은 달랐다.

적지 않은 수의 부하를 대동하고 나타난 왕 회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면서 시거연기를 뿜어댔다.

함께 서 있던 길림성의 장 서기장을 바라보며 삼합회의 두목다운 거친 언사를 내뱉는다.

“저기 저 작자가 미쳐도 보통으로 미친 게 아니구먼,

맘껏 지껄여 보라지! 내일이면 톡톡히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줄 테니까”

“왕 회장! 그래도 주변국의 대통령이신데 작자라는 표현은 좀…

미친놈이라면 모를까, 크하하하하”

두 사람은 내일 벌어지게 될 극적인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맘껏 키득댔다.

왕 회장의 입장에서는 북경의 사주를 받고 실행하는 거사였기에 딱히 걸림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왕 회장을 둘러싼 그의 수하들도 내일 일어나게 될 재미난 일들을 상상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한참 열기가 달아오른 대통령의 연설은 이제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고 발언 수위도 위태위태하기만 했다.

순두부식당을 정점으로 꽉 들어찬 수천 명의 관중들이 숨소리마저 죽이면서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이제 역사적인 코리아연방의 출범이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코리아연방의 첫 번째 과제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제멋대로 팔아먹은 여기 동간도 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북한만의 작은 통일이 아니라 조선족 자치주까지를 포함한 대통합코리아연방을 수립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 동북지역의 가장 예민한 곳인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 연길시내의 한복판,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의 모국 대통령이 굳이 조선족 자치주까지 찾아와서 지금 대단히 위험한 대중연설을 하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조선족의 중국이탈을 부추기는 연설을 하고 있었으니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후벼서 파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치안유지의 책임자인 조선족 자치주의 공안국장은 사실나무 떨 듯 떨기만 할 뿐 그 어떤 대응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그 자신도 조선족으로서 중국공산당에 온갖 충성을 다하면서 어찌어찌하여 공안국장의 자리까지 올랐기에 지금 이 사태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당국은 국경근방 소수민족들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던 차였다.

그런데 모국과 국경을 접하는 조선족 자치주에서 자칫 독립투쟁의 불씨라도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당국의 무자비한 보복으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단 한순간의 방심으로 민족별로 갈기갈기 찢겨 나가 버린 구소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예상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김일경 공안국장 앞에 놓여있는 선택지가 다양하지도 않았다.

엄청난 후폭풍을 예상하면서도 사태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의 모가지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국의 대통령을 함부로 체포할 배짱도 없었고 수천 명의 동포들을 자극하는 해산작전을 전개할 능력도 없었다.

그저 길림성공안청에 보고하여 현재의 사태에 대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릴 수밖에는 없었다.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길림성공안청장의 목소리도 떨렸다.

“김 국장! 내 말 잘 들으시오,

오늘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사태가 폭동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지금의 사태를 잘 관리하는 것이오,

내가 이 밤중으로 내려갈 테니 그때까지는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조치하시오! 내 말 알아듣겠소?

어설프게 대응하다가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자칫 폭동으로 비화될까 봐 두려워하는 길림성공안청장의 긴장감이 절절이 배어 있었다.


제발 오늘 밤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초조하게 서있던 김 국장 옆으로 훠치산이 부하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국장님! 무슨 좋은 구경이라도 났소?

공안이 벌벌 떨면서 뒷전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데 폭도들 진압이 되겠소?

그렇게 겁이 나면 공안대신 우리가 나서 주리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김 국장이 훠치산을 바라보며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윗사람들 믿고서 함부로 까부는 것도 눈치껏 해야지,

여기 모인 사람들을 자극해서 진짜로 폭도로 돌변하면 너네 조직인들 무사할 것 같해?

까불더라도 좀 생각이란 걸 하면서 까불어란 말이야!”

김 국장의 말에 훠치산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자신들의 계획을 알 리 없는 김 국장이 내일 이후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생각할수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연변국제호텔의 대형 세미나실,

아침 열 시부터 시작된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의 제100회 특집행사가 드넓은 홀 안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특별 프로그램이 초대박을 터트리고 말았다.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은 서도밴드의 공연이 벌써 한 시간째 진행되고 있었다.

사랑가에 이어서 바다를 열창할 때는 세미나실을 꽉 채운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함께 합창하는 감동적인 모습이 연출되었다.


십 년 전, 조선 팝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태어난 후 지금은 K팝과 더불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장르의 창시자가 바로 서도밴드다.

향후 삼 년 치의 공연 일정이 짜여있던 서도밴드를 연변에 살고 있는 성주가 그것도 갑자기 섭외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 비서관의 삼일특공대는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참견하면서 오늘의 거사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예고된 열한 시 삼십 분이 다가오자 연변국제호텔 앞은 족히 십만을 웃도는 거대한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서도밴드가 신의 한 수가 되었지만 어제저녁 연길시장에서 있었던 사건이 우리 동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통령은 부서기장이 정성껏 준비한 중국방문 일정의 마지막 조찬행사에 참석했다.

느닷없는 한국대통령의 방문으로 그 뒤처리를 감당해야 했던 지방 관료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심히 못마땅했을 것이다.

특히 어젯밤 연길시장에서 행한 대통령의 발언은 그 도가 지나쳐서 감당하기가 어려운 수준이었다.


애당초 의전 책임자였던 길림성의 당 서기장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부서기장은 일체의 감정표시 없이 자신의 소임을 다 하고자 했다.

이렇듯 진정 어린 부서기장의 모습에 적잖이 감동받은 대통령은 부서기장에게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부서기장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다가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사정들이 한숨 돌리게 되면 부서기장님을 꼭 한번 초청하고 싶으니 부디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잔뜩 말썽만 피우고 떠나는 대통령이었지만 부서기장은 변함없는 온화한 표정과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저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자 하였습니다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초청해 주신다면 꼭 방문드리고 싶습니다”


밤새 달려온 길림성공안청장의 진두지휘 하에 새벽부터 중무장한 수백 명의 공안들이 호텔근방을 철통같이 경호했다.

공안청장은 1층 세미나실에서 방금 끝난 서도밴드의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의 행사를 전격적으로 금지시키고 내방객 모두를 내어 보냈다.

호텔곳곳에 부착된 모든 홍보물의 철거를 지시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호텔에서 연길국제공항까지는 5Km 남짓한 짧은 거리로서 차량으로 이동할 경우 고작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약속되었던 시간이 다가오자 성주의 날카로운 눈빛 신호가 떨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오십여 명의 연구소 청년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몰려나온 동포들을 길가에 도열시켰다.


대통령 일행이 공항으로 출발하려는 순간까지도 끝내 장 서기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서 대통령이 부서기장의 환송을 받으며 연변국제호텔을 나서는 장면을 CNN방송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곧 재미난 사건이 터지기라도 한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     


곧 재미난 사건이 터질 것을 기대하며 TV모니터를 지켜보는 이들은 북경에서도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허 원장은 곧 발생할 재미난 사건의 최종책임자였으므로 초조한 표정으로 집무실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사태의 추의를 관찰했다.

방금 전에도 왕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큰소리로 호언장담 했었다.

“원장님! 주변국의 일개 대통령이 중화제국에 맞서면 어떤 꼴로 쫓겨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겠습니다,

개망신을 당해서 줄행랑치는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보게 될 겁니다,

으핫핫핫! 이번에는 실수가 없을 테니 저만 믿고서 편안하게 지켜보셔도 됩니다!”


방금 왕 회장과의 통화를 마친 허 원장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런 궂은일을 처리하는 데는 장백산천지회만 한 조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일처리 방식이 너무도 거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주변국의 대통령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지나치게 거친 방식은 불가하다고 단단히 주의는 주었지만 그럼에도 허 원장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감히 대통합코리아연방을 거론하다니!

제아무리 주변국의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어!

우리의 경고를 보여주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그래도 왕 회장만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허 원장이 돌아서며 양 손바닥으로 무르팍을 내리쳤을 때, 그가 입은 붉은색의 청나라 전통복장에서는 착 감기는 듯한 절도 있는 소리가 났다.


연변국제호텔의 앞마당에는 몰려든 외신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공항까지 대통령의 차량을 추적하면서 생중계하려는 방송차량들은 이미 출발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다.

양 도로가에는 떠나가는 한국대통령을 환송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정반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든,

어쨌든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인파들로 붐볐다.


이때 저만치서 언제나처럼 흰색 정장차림의 왕 회장이 좌우에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거만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가 주변을 쓱 한번 둘러보더니 도로변에 꽉 들어찬 인파들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시거연기를 뿜어댔다.

한국대통령 망신주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드디어 대통령의 의전차량이 호텔지하 주차장을 천천히 빠져나오고 있었을 때 훠치산의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표적 출발’

훠치산이 문자를 확인한 후 휴대폰을 높이 들고 좌우로 크게 흔드는 사전에 약속된 행위를 개시했다.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에게 행동개시를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이 동작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이들은 놀랍게도 도로가에 도열해 있던 수백 명의 공안들이었다.

공안들이 일제히 빠지면서 자리를 비켜주자 어림잡아 일천도 더 돼 보이는 일단의 청년들이 두 방향에서 움직였다.

장백산천지회가 동원한 괴청년들은 각자의 호주머니에 썩은 달걀 네 개씩을 집어넣은 채 도로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호텔의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대통령의 의전차량이 도로에 진입하기 위하여 우회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천지회의 행동대장 훠치산이 검정색 장갑을 낀 오른손을 쭉 뻗더니 엄지손가락을 땅아래로 툭툭 흔들어 댔다.


작전개시를 알리는 손짓 신호와 동시에 대통령의 의전 차량을 향해서 썩은 달걀들이 집중적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탄 의전차량이 삼백 여 미터를 지나는 동안 썩은 달걀이 쉼 없이 날아들었고, 결국 준비한 한 트럭 분량의 달걀을 모두 던지고서야 투척행렬은 끝이 났다.

도로가는 노란색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썩은 달걀로 인해서 시궁창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역겨운 냄새가 낭자하자 임무를 마친 일단의 괴청년들은 저들끼리 키득키득 웃으면서 이 성공적인 한국대통령 망신주기를 자축했다.


손수건으로 코를 털어 막은 채 먼발치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왕 회장이 공안들을 진두지휘하던 길림성의 공안청장에게 대놓고 엄지 척을 보냈다.

대단히 흡족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약속대로 잘되어 가고 있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장백산천지회의 썩은 달걀 투척장면은 내외신기자들에겐 놓칠 수 없는 특별한 취재거리가 되었다.

세계 유수의 방송매체들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한국대통령의 환송회 장면을 긴급속보형식으로 내어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압권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흩어지려는 군중들 사이에서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의 청년단원들이 자리를 지켜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군중들이 더 이상의 동요 없이 자리를 지켰다.


상황이 웬만큼 평정되자 호텔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또다시 검정색의 리무진 차량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겨우 네 대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공안의 오토바이 호위까지 받으며 대통령이 탄 의전차량이 도로에 올랐다.

부서기장이 도로까지 따라 나와서 따듯한 미소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번에는 진짜가 틀림없었다.


성주는 은하로부터 대통령 의전 차량의 위장작전을 전해 들었던 터라 천지회의 달걀투척 이후를 대비했다.

환송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재중 동포들은 썩은 달걀냄새로 인하여 차마 자리를 지키고 있기가 힘들었지만 청년단원들의 고함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극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은 어제 연길시장에서 영숙의 제보를 받은 경호팀이 부서기장에게 특별히 요청하면서 기획되었다.

대통령 의전차량의 위장전술은 심지어 공안에게도 비밀에 부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되었는데 놀라운 일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탄 리무진이 멀쩡하게 시야에 나타나자 보도양쪽에 끝없이 도열해 있던 수많은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십여 미터 간격으로 수백 장의 현수막들이 일제히 펼쳐졌다.

빨간색 바탕에 파란색의 글씨로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라고 새겨진 현수막이었다.

연도에 모인 군중들은 신기하게도 그 인원수가 점점 더 불어났다.

엄청나게 많은 현수막들이 펼쳐지고 우레와 같은 만세소리가 들리자 계란투척 이후 흩어지던 구경꾼들조차 다시 운집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다음 작전이 개시되었다.

성주가 비닐봉지 속의 오색종이를 한 움큼 부여잡은 채 공중으로 힘껏 뿌렸다.

이것을 신호로 도로 양쪽에 도열해 있던 사람들이 오색종이를 허공에 뿌리면서 만세를 불렀다.


운집한 우리 동포들의 손에는 향토연구소의 청년단원들이 나누어준 비닐봉지가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만세!”

“대통합 코리아연방 만세!”

도로의 양방향으로 도열한 인파의 행렬을 공안은 오만이라고 추산했지만 대부분의 취재기자들은 십만 이상이라고 기사화했다.


색색의 종잇조각을 뿌리면서 만세를 부르는 광경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진한 감동을 자아냈다.

이렇듯 감동적인 광경을 차마 차량 안에서만 지켜볼 수 없었던 대통령이 천천히 달리는 리무진의 선루프 위로 상반신을 드러내며 일어났다.

두 손을 흔들면서 우리 동포들의 만세장면을 좌우로 바라보던 대통령이 갑자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연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동포들도 덩달아서 함께 눈물 흘리며 대통합 코리아연방을 목이 터져라 연호했다.


CNN의 전파를 탄 이 압도적인 장면들은 이번에도 남과 북의 팔천만 국민들은 물론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촌사람들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달래면서 다 함께 지켜봤다.

이 시각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동북지방의 한가운데를 겨냥하여 차르봄바급의 수소핵폭탄이 터져버린 격이었다.

북경의 고관대작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온몸을 부덜부덜 떨어야 했고 급기야 동북공정의 실질적 책임자인 허 원장은 솟구친 뇌혈압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집무실의 책상을 의지한 채 겨우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도 기어코 이 말을 내뱉었다.

“왕징 네 이놈!

저따위의 건달 놈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저런 놈을 믿어서는 이런 꼴을…”


전혀 예상 밖의 장면들이 현장에서 급반전의 형태로 전개되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슬금슬금 물러나는 자들은 장백산천지회의 패거리들이었다.

왕 회장도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피우던 시거까지 길바닥에 던져버리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돌아섰다.

“저 저런 흉악한 조선족들 때문에 모든 걸 다 망쳐버렸어! 에잇 퇫!”


동북 3 성지역, 그것도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시내의 한 복판이다.

모국의 대통령이 십만이 넘는 자기 민족 동포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지금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수백 장의 현수막에 적힌 글귀를 액면 그대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광경을 연출한 이들의 의도는 명백했다.

중국에서 조선족 자치주를 분리하여 코리아연방에 대통합시키겠다는 것이다.


TV를 지켜보던 길림성의 당서기는 갑자기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극도의 공포감이 몰려왔다.

썩은 달걀을 던져서 한국대통령의 출국 길에 망신을 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수만 아니 십만도 더 되는 조선족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와서는 오색의 종이가루를 뿌려대며 대통합코리아연방 만세를 외치고 말았다.

대통합코리아연방 만세라니!

저 말은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만의 통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 자치주까지를 포함하는 대통일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장 서기장은 이젠 정말로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에 TV를 향해서 재떨이를 던지면서 광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생중계 영상을 지켜보던 시 주석은 즉각 왕 서기를 주석실로 불러들였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달려온 왕 서기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사정없이 왕 서기의 무르팍을 구둣발로 걷어찼다.

끙끙거리면서 일어서는 왕 서기를 향해서 이번에는 양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후려갈긴 후 큰 소리로 고함쳤다.

“지금 즉시 상무위원회를 소집하시오!”

구둣발로 걷어 차인 무르팍을 매만지면서 우물쭈물거리던 왕 서기에게 시 주석이 또다시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왕 서기의 머리를 한 대 더 내려치려다 말고 주석실의 집무책상을 내리치면서 분노를 달랬다.

“어서 꺼지지 못해!”  


북경의 주석집무실에서는 시 주석을 중심으로 모두 일곱 명의 정치국상무위원들이 자리에 앉았다.

이들의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들이 연신 흘러내렸다.

시 주석의 날벼락을 피하기 위하여 공산당 상무위원으로서의 체통 따위는 무시하고 무작정 달려왔다.

“이것은 소수민족의 반란 행위가 분명합니다,

엄중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왕 서기가 좌중을 바라보면서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시 주석이 팔짱을 낀 채 지그시 눈을 감자 다시 큰 소리로 그가 말했다.

“저 사태를 적당히 넘긴다면 이제 겨우 진정상태에 들어간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또다시 독립의 기운들이 뻗쳐 나올 겁니다,

이번 차에 소수민족들의 독립의지가 발현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조치해야 합니다!

조선족을 강하게 억눌러서 그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다른 상무위원들도 제각기 한 마디씩을 거들면서 이구동성으로 단호한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니까 초장에 짓밟아야지요,

조선족 자치주에 대하여 신속하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탱크부대를 진격시켜서 혼란을 진압해야 합니다!”

“조선족의 자치주 권한을 박탈해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당국의 단호한 의지를 천명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한국대통령을 중국법원에 기소하고 한국과는 국교를 단절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시 주석의 인상이 더욱 찡그려지면서 길게 한숨을 내어 쉰다.

“퓨∼”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시 주석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색됐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시 주석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 내 잘못입니다, 한국대통령의 북경대 연설 이후 내가 너무 흥분했어요,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서 정해진 공식일정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얼마나 목이 탔던지 찬물 한 컵을 쉬지도 않고 들이킨 시 주석이 탁자에 물 컵을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자 컵 속의 남은 물들이 쏟아져버렸다.  

“지금 한국대통령이 우리에게 보여 주려는 의도는 명확합니다!

우리더러 동북공정을 멈추라는 것이에요,

조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조선족 자치주를 심하게 흔들어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균열을 내겠다는 협박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코리아연방이 조선족 자치주까지를 포함하는 대통합 코리아연방을 추진하겠다고 나선다면 다른 소수민족들이 너도나도 독립하겠다고 미쳐서 날뛸 것 아닙니까?

우리의 약점을 파고드는 무서운 경고가 분명한데도 당의 상무위원이란 작자들이 비과학적인 감정 배설만 늘어놓고 있으니…”


시 주석이 생각을 정돈하면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었을 때였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왕 서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시 주석에게 실추된 자신의 충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한국대통령의 출국을 보류시키고 동북지역에서의 소란난동죄에 대하여 엄중한 사과를 받아내야 합니다,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 무식한 왕 서기의 태도에 시 주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오른 손가락으로 어서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왕 서기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입장을 정한 듯 시 주석이 자리를 바짝 당겨 앉자 다른 상무위원들도 자리를 당겨 앉으며 시 주석과 눈동자를 맞추었다.

“이런 때일수록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차분한 음성으로 말한 시 주석이 왕 서기를 바라볼 때는 냉철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단순 무식! 과격한 행동이 작금의 사태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 성찰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국익을 위한 어떤 고차원적인 해법들이 모색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이 말입니다!”

시 주석의 호통소리에 왕 서기가 온몸을 떨면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한 시 주석이 감히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중국공산당의 결론을 제시하려고 했다.

“자 이렇게 정리합시다,

오늘 조선족 자치주에서 발생한 특이 동향에 대해서는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 당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단 한국과의 외교적 마찰은 이 정도에서 수습하는 게 옳아요,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우리로서도 감당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가 있어요!”


이때 시 주석의 다음 말까지 중단시키며 격정적으로 끼어든 사람은 군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앙군사위원회의 부주석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서 군부의 강경한 태도가 천명되었다.

“방금 주석님의 말씀은 인민해방군의 압록강 진격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그것은 불가합니다!”


이 말에 시 주석의 눈자위가 파르르 떨리면서 자신의 감정상태를 애써 숨기려는 듯 팔짱을 낀 채 의자를 뒤로 젖혔다.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방중기간 한국대통령이 보여준 결연한 태도로 볼 때 북미 간의 군사적 충돌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을 제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인민해방군이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조선군뿐만 아니라 한국군과도 맞서는 사태를 상정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조선의 핵시설 폐기를 명분으로 연대한 중미연합군과 민족통일을 명분으로 외세와 항전하는 남북연합군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세계인들에게 두 강대국이 남북한의 통일을 방해하는 악당의 모습으로 비칠 수가 있어요,

세계의 여론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전쟁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구도는 우리당의 건국투쟁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우리 인민들의 지지를 구하는 문제도 만만치가 않아요”


시 주석이 완강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군부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부주석으로서도 쉽게 물러설 사안이 아니었다.

“미군의 선제공격을 신호로 인민해방군의 진격 준비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마당에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주석님의 말씀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묵인 하에 조선을 점령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앞으로 또다시 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조선은 역사적으로도 고구려의 잔여고토가 분명하니까 우리 중국이 흡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동북공정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지 세계의 여론 따위를 걱정하면서 좌고우면 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여론 따위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이대로 더 방치했다가는 자신의 권위까지도 흔들릴 수 있겠다고 판단한 시 주석의 표정이 싸늘하게 돌변했다.

부주석을 노려보면서 호통 치듯이 말했다.

“지금 날 가르치려는 겁니까?

공산당 중앙상무위원이라는 사람이 자기 조직의 내부 분위기에만 사로잡혀서 국가의 중요 사업을 면밀하게 따져볼 능력이 결여되었다면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요!

상무위원으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천삼백여 년 전 저들이 분열되었을 때는 우리가 백제와 고구려까지 정복할 수 있었지만, 저들이 뭉쳐서 대항하자 어렵게 정복한 대동강 이남의 영토를 다시금 내어주었던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감정이 아니라 이성의 힘이 작동하는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향후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전략적 선택이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함으로써 과학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시 주석의 강력한 경고성 발언에 부주석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호기롭게 발언하던 방금까지의 풍모는 온데간데없이 시 주석에게 구십 도로 깍듯이 머리를 조아렸다.

“죄…죄송합니다! 잠시 흥분하여 판단력을 잃었었나 봅니다,

차후로는 자중 또 자중하겠습니다!”


즉각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부주석의 태도가 흡족했던지 시 주석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으로 자리에 앉을 것을 지시했다.

“그만큼 얼렀으면 됐어요!

이젠 적당히 달래주면서 휴전을 선택하는 것이 옳아요,

때가 좀 더 무르익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면서 우리의 사업을 준비했으면 합니다,

암요! 우린 결단코 동북공정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가 아니니 한발 물러서자는 것이에요”


시 주석 아니 시 황제의 방금 이 말은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중국공산당의 최종 결론이 되었다.

시 주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함께한 상무위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찻잔을 높이 들었다.

이날 노회한 시 황제를 멈추게 했던 것은 대통합코리아연방의 불길이 중국내부의 다른 소수민족들에게로 번져나갈 수 있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자칫 이 위험한 뇌관을 잘못 건드려서 오십오 개의 소수민족들이 분열되는 최악의 사태를 그는 몹시도 두려워했다.


조선족 자치주를 한반도와 단절시키는 문제는 고차원적인 정치문제로서 간단하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멈추지 않는다면 한국의 조선족충돌질은 계속될 것이고, 이것은 자칫 구소련의 전철로 나아가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멈추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위험한 상항으로 내몰릴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멈추어야 했다.


이것으로 삼일특공대의 노림수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중국의 역린을 사정없이 비틀게 되면 저들은 필시 발광하게 될 것인데 그 틈새에 저들의 가장 아픈 곳을 쑤셔서 항복을 받아내는 역린 비틀기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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