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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05. 2024

성탄절 폭죽놀이

9회

중국방문을 마치고 대통령 일행이 서울공항에 도착했을 무렵 중국외교부 대변인을 통해서 전격적으로 중국의 변화된 정책이 발표되었다.

조선의 핵문제는 관련국들이 대화로 풀어야 될 사안으로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선제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

만일 혈맹인 조선이 침략받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중국은 일체의 좌고우면 없이 항미원조에 나설 것이다.

방중기간 한국대통령이 밝힌 중국의 국가이익을 존중하는 여러 조치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코리아연방의 UN가입 등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적극 지지하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G2연합의 군사작전은 최종적으로 무산되었고 성탄절 폭죽놀이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지상 작전의 부담을 중국군에 떠넘길 수 있어 비교적 홀가분하게 전쟁을 준비하던 백악관으로서는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백악관은 경악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생각을 되돌리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백악관의 관료들은 독도패전으로 자존심이 상해버린 뉴프레지 대통령의 강박관념이 적성국 중국과 결탁하는 우를 범했다고 불평했었다.

특히 국방부장관은 북한이라는 살쾡이를 잡겠다고 중국이라는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이라면서 사사건건 뉴프레지의 정책에 딴지를 걸며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이로써 미중합동작전의 폐기와 동시에 중국은 다시금 미국의 공적으로 규정되었다.

중국지상군 대신 미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지간한 강심장인 뉴프레지로서도 선뜻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성탄절 폭죽놀이에 대한 전략적 고민도 커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하고야 말겠다는 뉴프레지의 분노가 줄어들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중국 외교부가 발표한 전향적인 대외적 조치와는 별개로 내부적으로는 서슬 퍼런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대통령의 전용기가 연길국제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용정시내에 배치되어 있던 탱크 기갑사단이 연길시내 대로변에 나타났다.

이것을 신호탄으로 전격적으로 조선족 자치주 전역에 계엄령이 발령됐다.

이것은 조선족뿐만이 아니라 모든 소수민족에게 중국당국이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결코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을 넘게 된다면 어떤 조치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결연한 메시지였다.


성탄절 폭죽놀이의 기한이 목전에 닥친 상황에서는 잠깐의 휴식조차 사치였다.

고단했던 3박 4일간의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대통령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곧장 청와대 지하벙커로 향했다.

현 상황에 대한 국방부장관의 브리핑이 이어지는 동안 NSC 상임위원들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에 임했다.


국가안보실장이 차분한 어조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대통령님의 중국방문 성과로 인하여 백악관의 입장이 무척 당혹스럽게 되었습니다,

미군 단독으로 수행하는 전쟁은 필연코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지상군의 투입 없이는 이 전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실제로 중국이 미국의 대척점에서 이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면 미국은 상상이상의 큰 전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지상 작전에 따른 막대한 미군의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됩니다!”


최 실장의 발언 중간에 대통령이 불쑥 끼어 들어서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아니지요! 한 가지가 더 있지요!

북한은 이미 우리와 통일을 협의 중인 코리아연방의 일원입니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의 전쟁은 코리아연방과 미국의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땅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이 우리 땅을 공격한다는 것은 세상 이치에 맞지가 않지요,

그들은 주둔 기지를 모두 비워주고 일본으로 떠나든 본국으로 떠나든 좌우지간 떠나야 할 것입니다,

이만 팔천에 이르는 주한미군은 우리 땅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본의 독도 침략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이제 그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대통령을 위시한 그의 참모들은 닥쳐오는 위기를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기회로 전환하기 위하여 불굴의 투지를 발휘했다.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이 관저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영부인의 부축을 받지 않고서는 내실에 들어서지도 못할 정도의 극한의 피로가 몰려왔다.

영부인의 도움으로 겨우 양복만 벗었을 뿐 샤워도 마다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미국시민들의 한국철수작전인 NEO작전이 개시된 지도 이미 5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십만 이상의 미국 시민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심지어 태연히 평양 시내를 활보하는 미국인들도 상당수였으니 이것으로 미국정부의 NEO작전은 사실상 실패한 작전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동해와 서해상에는 여전히 세척의 항공모함들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고 며칠 간격으로 죽음의 백조 편대가 노골적으로 북한영공을 넘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남과 북을 이동하는 상황에서는 익숙한 공포들을 하나둘 물리치고 있었다.

더군다나 교황의 평양방문 일정이 다가오자 서울과 평양 그 어디에서도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두려움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가 빚어낸 기적 같은 현상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계엄령이 선포된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대로변을 점령한 수십 대의 탱크들로 살벌한 풍경을 자아냈다.

밤 열 시 이후의 야간통행금지조치로 생기를 잃어버린 도시는 오직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숨바꼭질만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로서의 훈기를 찾을 수 없었다.


세계인들을 감동시킨 십만 인파의 재중동포 만세사건이 끝나자마자 공안은 즉각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만세사건을 주도한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를 불온단체로 지목하여 폐쇄조치하고 성주를 비롯한 오십여 명의 청년단원을 체포하기 위해서 자치주전역을 들쑤시고 다녔다.

미리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성주일행은 대통령의 의전차량이 연길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을 신호로 제각기 흩어져서 꼭꼭 숨어들었다.

십만 이상의 소수민족이 참여한 역대 급의 만세운동이 미칠 파장을 티베트나 위구르의 탄압을 통해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분위기 속에서 조선족에 대한 당국의 사상교육은 거의 매일 실시되었다.

조선족들에 대한 3관 교육이라 하여 역사관 민족관 조국관을 새롭게 심어주는 교육이었다.

조선족의 역사는 중국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의 역사이고,

조선족은 중국에 살고 있는 55개의 다양한 민족가운데 하나의 민족이며,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다는 사상교육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실시했다.


이번사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길림성의 공안청장은 장춘으로 돌아와서도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아직 왕 회장으로부터 단 한 통의 전화도 없다는 사실은 공안의 대응에 불만이 커다는 증표다.


이때 밖에서 작은 소란이 이는가 싶더니 내심 애타게 기다리던 왕 회장이 훠치산을 대동하고 불쑥 나타났다.

뒤따라서 비서실 소속의 공안이 황급히 들어왔지만 청장이 괜찮다며 오히려 차 대접할 것을 지시하자 왕 회장이 그 큰 엉덩이를 소파에 내려놓으며 투덜댔다.

“저 예쁜 아가씨는 말이야,

내가 올 때마다 기다리라고만 하니 어디 성질 급한 사람은 화닥질이 나서 살겠는가 말이야,

사람을 봐가면서 기다리라고 해야지 젠장!”


잔뜩 짜증을 부리며 투덜대는 왕 회장에게 몰래 숨겨둔 재떨이까지 꺼내오던 공안청장이 너스레를 떨 듯이 말했다.

“시거나 한 대 피우면서 그만 화 푸시오 왕 회장!

이번에 천지회에서 고생이 참 많았는데 중간에 일이 꼬여버려서 우리 입장에서도 왕 회장 보기가 민망하게 되었소,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할 만큼 한 것이니 너무 섭섭하게는 생각하지 마시오!”


훠치산이 시거에 불을 붙여주자 시거연기 한 모금을 천장으로 쏘아 올린 왕 회장이 거만하게 말했다.

“섭섭은 무슨! 청장이야 할 만큼 한 거 다 아는데, 단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지금 그딴 소리나 들으려고 장춘까지 달려온 건 아니고, 앞으로 우리 살길에 대해서 청장하고 긴한 대화를 좀 나누었으면 하는데”


그 사이에 찻잔을 들고 들어온 앳된 공안이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이번에도 왕 회장의 시선은 허리를 숙이는 비서 공안의 가슴 쪽으로 향했다.

이전부터 종종 있어왔던 일이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지만 작정을 하고서 훔쳐보려는 자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음흉한 눈빛의 왕 회장이 비서 공안의 가슴이 연상되는 손동작을 하면서 훠치산을 바라보며 개글스럽게 웃어댔다.


매번 반복되는 이런 장면은 청장으로서도 불쾌하기가 이를 데 없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눈물보가 터져 버릴 것 같은 비서 공안에게 어서 나가라고 눈짓하는 것으로 수습하는 것이 다였다.

오늘도 찻잔을 내려놓기가 바쁘게 휑하니 나가버리자 왕 회장과 훠치산이 한 건 했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으며 청장을 모욕했다.

부하직원 앞에서 무참히도 자존심이 짓뭉개져 버린 청장이었지만 북경의 어른들과 연줄이 닿아있는 왕 회장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왕 회장에게 차분한 어조로 되물었다.

“생각해 둔 좋은 방안이라도 있었던가 봅니다?”


왕 회장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청장과 눈을 맞추었다.

“우리 아이들의 말이 지금 배은하가 연길시내에 숨어있다는 거야”

“배은하라면?”

순간 왕 회장이 지난 일들이 떠올랐던지 음흉한 미소를 드러내며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면서 청장의 얼굴을 향해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빵!”

청장이 놀란 표정으로 멈칫하자 왕 회장이 낄낄대면서 말했다.

“그 왜 오래전에 이 손으로 보내버린 배 교수 말이요!”

“배 교수라면 왕 회장이 직접 처리하지 않았소?

이십 년도 더 된 일인 것 같은데, 그래서요?”

“거참! 말귀를 대개 못 알아 들어시네,

동북아역사재단의 윤 팀장이란 작자가 이제는 한국정부의 머리통 역할을 하는 모양이던데 그 자의 마누라가 배 교수의 딸이지 않소?”


한국정부의 기획통이라는 윤 비서관의 배우자가 바로 배 교수의 딸이라면?

이번 만세사건의 본질을 한국정부에 의해서 잘 기획된 사건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청장이 오른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면서 재빨리 일어났다.

집무책상 위의 업무용 PC 앞으로 다가간 청장이 배은하의 출입국사실부터 조회해 보았다.

지난달 초 홀로 입국하여 아직까지 출국한 사실이 없으니 자치주 어딘가에 은신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것을 잘만 활용한다면 당국으로서도 한국정부를 반격할 수 있는 건덕지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자리보전을 걱정해야 하는 그 자신의 고민거리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었다.


“당신이 어서 공을 세워서 만세사건으로 실축된 과오를 어느 정도는 만회를 해 주어야 내가 북경 가는 길에 윗분들한테 말이나 한번 넣어 볼 텐데,

조선족 만세사건으로 당신 자리도 간당간당하지 아마!”

명색이 길림성의 공안책임자를 상대로 일개 삼합회의 두목 따위가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었지만 왕 회장의 말은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청장으로서는 실축을 만회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고 그것은 신속하게 공을 세우는 일이다.


볼일을 끝낸 왕 회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청장! 당신과 우린 꽌시로 맺어졌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마시오!

당신과 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공동운명체다 이 말이요”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청장이 덥석 왕 회장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포개어 잡았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왕 회장!

오늘 왕 회장이 귀띔해 준 방책에 대해서는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품을 한번 만들어 볼 테니까 윗분들한테 말씀이나 잘 넣어주세요,

왕 회장만 믿겠습니다!”


왕 회장이 돌아가자 청장이 직접 수배자명단에 배은하의 이름을 입력시키면서 갖다 붙인 죄목은 ‘출입국관리법 제3조 위반’이었다.

중국에 입국한 외국인은 중국의 법률을 준수하여야 하며, 국가안전을 해치고 사회공공의 이익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무시무시한 죄명이었다.

이렇게 해서 은하는 공항이던 항만이던 자동차를 통해서든 길림성을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불현듯 청장이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조선족 자치주의 김일경 공안국장에게 전화했다.


길림성 공안청장의 내밀한 전화를 받은 김 국장은 배은하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은하라면 당시 동북아역사재단의 윤 팀장과 결혼하여 한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연길시내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배 교수의 딸이 한국대통령과 함께 방중 했던 윤 비서관의 부인이라면?

이후의 고차방정식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조선족 출신으로서 산전수전 끝에 이 자리까지 올라왔을 때는 그만이 가진 동물적인 육감이 있었다.


잘 생각해 보라는 공안청장이 던진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 김 국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이 방책이야말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될 것 같았다.

같은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만세사건의 가담자들과 한통속으로 비치고 있는 이 기분 나쁜 상황이 문제였다.

그런데 이 상황을 단번에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판단하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는 금세 화색이 돌았다.


대통령이 재중동포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출국하던 바로 그날,

윤 비서관은 연길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은하에게 급히 연락하여 지금 즉시 출국할 것을 재촉했다.

이후 전개될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을 때 신속하게 출국하지 않으면 큰 문제에 봉착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윤 비서관의 예상보다도 전격적으로 계엄령이 발동되면서 자치주를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원천 차단되고 말았다.


그 순간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면서 다방면에 걸쳐서 소식통을 두고 있던 창우의 판단력은 매우 빨랐다.

일단 연길시내의 외곽으로 은하를 급히 피신시켰다.

은하가 피신했던 곳은 연길시 외곽의 작은 시골집으로 창우와 은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추억의 옛 집이었다.

오래전 배 교수가 연변조선인향토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남에게 팔았던 옛 집을 가끔씩 연변을 방문하는 은하를 위하여 최근에 다시 매입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소유권을 넘겨받지 않은 상태라 당분간은 공안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지만 그 안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성탄절 이브를 이틀 앞둔 토요일 오전,

성탄절 폭죽놀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신의 사도가 서울공항으로 입국했다.

대통령은 천천히 트랩을 내려오는 교황을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북미 간의 전쟁을 막기 위하여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남북한의 여행자유화 조치로 공격의 표적이 대단히 산만해졌고 마지막 단계에서 중국마저 발을 빼게 만들었다.

미군단독으로 수행하는 전쟁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었지만 뉴프레지는 여전히 성탄절 폭죽놀이를 중단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되돌려놓을 최후의 마지막 카드는 이제 교황의 평양방문뿐이다.


당초 미국은 핵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이라는 악당을 혼내주는 단순한 구도를 원했다.

악의 축인 평양이 착한 도쿄를 괴롭히는 단순한 구도가 형성되어야 했다.

그래서 ‘짠’하고 미국이라는 정의의 보안관이 나타나서 평양을 실컷 두들겨 패주는 서부영화 같은 극적인 장면을 원했다.

이렇게 단순한 그림이 그려져야 초강대국의 존재감이 부각되어 지구상 유일의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끼어든 한국정부의 농간으로 오히려 한반도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고 미국은 피해자를 괴롭히는 악당으로 둔갑됐다.

급기야 교황까지 등장하여 성탄절미사를 평양에서 개최하겠다고 저 난리를 부리는 통에 당초의 구도와는 정반대의 구도로 변질되고 말았다.


대통령과 교황이 함께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은 생중계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구촌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백악관의 대통령집무실에서 안보보좌관 튼볼과 함께 이 모습을 지켜보던 뉴프레지는 TV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질렀다.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것 같은가!

당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주고 말겠어!

지상최대의 성탄절 폭죽놀이를 내가 멋떨어지게 보여줄 테니까 모두들 기대하라고!”     


사전에 수백 대의 관광버스를 준비한 한국정부로서는 일거에 몰려든 손님들일지라도 교통편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다.

오전 열한 시경 교황을 따라나선 수만 명의 십자군 행렬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경유하여 평양을 향해서 출발했다.

놀라운 사실은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이미 시행되고 있었던 것인데 버스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서도 출입신고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다.

전체구간이 하이패스 구간으로 변경되어 모바일 여권이 발행된 스마트폰을 지참하는 것만으로도 출입신고 절차가 자동으로 처리되었다.

자유여행 사십여 일만에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인 특유의 진취적인 문화가 첨단 IT기술과 접목하여 그 위력을 발휘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관광버스의 행렬이 향했던 제1차 집결지는 북한 유일의 천주교 성당인 평양의 장춘성당이었다.

1980년대 후반 북한은 대외적인 선전차원에서 비밀스럽게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천주교인 두 명을 어렵사리 찾아냈다.

실제로 이들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하게 되면서 북한에도 가톨릭신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인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 해 장춘성당이 건립되어 교황청에서 파견한 특사가 축성식과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지나는 동안 교황의 평양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들이 마을 도처에 내어 걸렸다.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성하의 평양방문을 환영합니다’와 같은 극진한 문구들 일색이었다.

차량 행렬을 향해서 손을 흔드는 북한주민들의 표정에서는 전쟁대신 평화를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들이 서려 있었다.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는 통상 두 시간이면 도달하는 거리다.

하지만 교황이 연도에 도열한 주민들의 환영인사에 일일이 손을 흔들면서 천천히 달려온 까닭에 오후 두 시를 넘겨서야 평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평양의 도심이 시작되는 버드나무 거리에 다다르자 일행들은 평양시민들의 압도적인 함성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장춘성당까지 이어진 거리의 양쪽으로 남녀노소의 평양시민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찼다.

삼백만 평양시민 중 족히 일백만은 거리에 나왔을 정도로 엄청난 환영인파였다.

이들은 양손에 꽃술과 한반도기를 격정적으로 흔들면서 단 하나의 단어만을 외쳤는데 그것은 바로 ‘평화!’였다.


드디어 리무진 차량에서 교황이 내리자 정 위원장이 먼저 다가와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최고 수준의 인사를 나누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자세를 바꿔가면서 모두 세 번의 포옹을 한 후 서로 맞잡은 손을 평양시민을 향해서 번쩍 들어 올렸다.

도로가에 도열한 채 이 모습을 지켜본 평양시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의 간절한 심중을 표현했다.

“평화! 평화! 평화!”

일백만의 평양시민들이 함께 합창하는 평화라는 단어 속에서 전쟁을 거부한다는 북한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 장면들은 실시간으로 생방송 중이던 CNN을 통해서 전 세계인들의 안방까지 그대로 전송됐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평화!’라는 구호는 지켜보던 세계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스무 대의 호위 오토바이가 선두를 형성한 가운데 교황과 정 위원장이 함께 탄 오픈카의 카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연도를 가득 매운 평양시민들이 열정적으로 꽃술을 흔들어대는 광경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일렁이는 것처럼 전율을 불러왔다.


평양시민들의 열열한 환호 속에 도착한 장춘성당은 방금까지의 흥분된 마음가짐을 삽시간에 가라앉힐 만큼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무엇 때문에 침묵의 교회라는 별칭이 붙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분위기다.


교황과 함께 오픈카에서 내린 정 위원장이 어딘지 모르게 잔뜩 어색한 티를 내었다.

아마도 생전처음 경험하는 종교적인 분위기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모양이다.

손을 모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교황과 함께 움직여야 할지를 몰라서 어색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때 다정한 표정으로 다가간 교황이 정 위원장의 왼손을 그의 오른손으로 맞잡았다.


조선천주교인협회 간부들의 안내로 두 사람이 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정 위원장의 왼손에서는 끈적끈적한 땀방울이 맺혔다.

그럴수록 교황은 더욱더 힘을 주어서 정 위원장을 저 안쪽까지 이끌고자 했다.


먼저 입장하여 대기하던 사람들이 모두 뒤로 물러서자 이제는 오직 두 사람만이 십자가상이 있는 정면으로 걸어갔다.

교황은 단상 앞에 이르고서야 정 위원장의 손을 놓아주고 홀로 무릎을 꿇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온 사제들과 마당에 모여 있던 신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앉아 교황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가만히 서있던 정 위원장을 몹시도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황이 울먹이기 시작하자 교황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사제들도 함께 울먹이며 기도했다.

울먹이는 소리는 곧바로 성당 밖으로 전염되더니 평생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북한사람들까지 울먹이게 만들었다.

교황의 기도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울음소리는 모두가 똑똑히 공유했다.

교황이 지배하는 강열한 분위기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급기야 교황 바로 뒤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정 위원장까지도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기도를 마친 교황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또다시 정 위원장의 손을 잡고 함께 성당 밖으로 걸어 나왔다.

교황은 마치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정 위원장의 손을 움켜잡았고 스스로 북한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교황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정 위원장은 교황을 자신의 전용차인 벤츠 리무진에 태우고 교황이 묵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함께 이동했다.

이 와중에서도 교황의 오른손은 여전히 정 위원장의 왼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영빈관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놓아주지 않았다.


여행자유화 조치 이후 평양에는 남쪽과 해외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하여 호텔의 빈방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대동강 변에 위치한 평양호텔을 통째 비워놓고 교황과 함께 입국한 손님들을 기다렸다.

평양호텔은 4층짜리의 아담한 호텔이지만 170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어 교황과 함께 입국한 삼백여명의 교황청 수행 인원이 투숙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문제는 역사적인 교황의 평양방문을 쫒아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거대한 인파가 12월 한겨울에 묵을 숙식공간이었다.

유럽 각 지역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천여명에 이르는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 그리고 지구촌 여기저기서 교황을 따라나선 족히 수만에 이르는 일반인들이 문제였다.

그 해결책을 북한당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평양대기도회가 열리는 능라도 종합경기장에서 제시했다.

부지면적만 12만 평이 넘고 15만 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다는 세계최대 규모의 능라도 종합경기장은 아름다운 대동강 변에 연꽃모양으로 우뚝 서있었다.

종합경기장 내 팔십 여개의 선수침실을 비롯하여 십여 개의 실내체육관과 각종 휴게실 회의실 사무실을 숙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수천 명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게끔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해외에서 몰려든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대동강 변의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자유롭게 강의 풍광을 즐기는 노숙야영을 자처했다.

북한당국도 노숙야영자들을 위한 간이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전력을 다해서 지원했다.

이렇게 되자 급작스럽게 수만 명의 인원이 몰려든 형편치고는 큰 무리 없이 숙식공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교황의 평양방문 이튿날인 12월 23일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백화원을 출발한 교황의 전용차 파파모빌레가 장춘성당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거리를 지나가는 평양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양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면서 교황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교황이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은 미국도 전쟁을 개시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전쟁의 먹구름까지도 물리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그들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뉴프레지가 예고했던 성탄절폭죽놀이의 기한이 임박하자 자연스레 세계인들의 이목은 평양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평양은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주시하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신했다.

교황이 집전하는 일요일 아침 미사를 보기 위하여 장춘성당의 앞마당과 그 주변일대까지 인파의 물결로 가득 들어찼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조선중앙 TV를 통해서 교황의 강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했다.

교황의 기도가 얼마나 절절했던지 신앙생활의 경험이 전무한 북한사람들조차 교황이 기도할 때는 함께 두 손을 모으는 행위를 따라 할 정도였다.

교황의 강론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축원하는 내용으로 일관했고, 교황의 기도 역시 오직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장춘성당의 앞마당으로 걸어 나온 교황이 해맑게 미소 지으며 자신들의 부모와 함께 참석한 북한 어린이들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몇몇의 아이들이 교황의 손짓에 반응하기 시작하자 금세 수십 명의 아이들이 교황을 둘러쌌다.

교황이 아이들에게 일일이 머리에 손을 얹어서 축복을 내리고 있었을 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은 마치 수줍게 미소 짓는 천사와 같았다.

교황은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손을 맞잡고 놀기도 하면서 저녁이 될 때까지 그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다음날 장춘성당에서 발표된 교황의 성탄절 메시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기원하는 메시지였다.

특별히 한반도의 평화를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선제공격을 온몸으로 반대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지만 이에 맞서는 뉴프레지 대통령의 반응 또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서슴없이 미친 영감탱이라고 부를 정도로 교황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무작정 평화만 외쳐대는 교황의 태도를 경멸했다.

사실 뉴프레지는 어려서부터 대단히 보수적인 색채의 남부지역 복음주의 교파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매사를 선과 악이라는 2분법으로 구분하는 버릇이 있었다.

핵으로 일본을 위협하고 미국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북한은 당연히 악당으로 분류되었다.

악당은 물리치고 응징해야 할 대상으로서 설사 적잖은 희생이 따른다 하더라도 그 희생을 감수해야 된다는 신념이 그를 지배했다.


교황이 평양의 장춘성당에서 성탄절 전야 행사를 진행하고 있던 특별한 상황에서도 뉴프레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들만의 특별한 성탄절을 위한 마지막 기도를 했다.

하지만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펜타곤에서도 이 시점에서의 성탄절 폭죽놀이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작전으로 분류하고 조용한 성탄절이브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펜타곤마저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경악하는 사태는 실제로 일어나고야 말았다.

성탄절 폭죽놀이의 개시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국방부장관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명령의 진위여부를 뉴프레지 대통령에게 재차 물었지만 뉴프레지는 대단히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했다.

“장관! 나는 지금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장관에게 명령하는 것이오!

내가 한국대통령에게 공언했던 대로 12월 25일 자정을 기하여 성탄절폭죽놀이를 개시하시오!”

군통수권자가 내리는 공격 명령을 국방장관으로서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성탄절이브의 축제가 끝나고 드디어 운명의 25일 자정이 되었다.

동해와 서해에 집결해 있던 세 척의 항공모함에서 작전개시를 알리는 요란한 비상벨이 울려댔다.

두 달 가까이나 동서해상을 어슬렁거리던 항모전단에서 수십 대의 전투기들이 동시다발로 출격했다.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의 목적지는 북한영공, 보란 듯이 북한영공을 침범하는 도발을 감행하면서 북한의 대공포 사격을 유도했다.

지금 뉴프레지에게 필요했던 것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 명분을 쉽게 허락할 의사가 없었던 한반도는 두 정상 간의 핫라인 직통전화로 이 상황을 공유했다.

미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이 북한영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국방부장관의 보고를 받자마자 민 대통령은 곧장 정 위원장에게 전화했다.

“위원장님 인내하셔야 합니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지금 시위를 하고 있을 뿐 결코 교황이 계신 평양을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전 세계가 숨죽이며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먼저 반응하지 않는다면 결단코 저들이 먼저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공을 넘나들면서 잔뜩 약을 올리려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압니다,

우리 측의 대공포사격을 유도하여 전쟁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수작질이 분명하갔지요,

뻔히 알면서도 인내하기가 참으로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만 웬만하면 대통령님 말씀대로 할 테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위원장님! 우리가 동이 틀 때까지만 인내할 수 있다면 교황님의 말씀대로 한반도와 이 세상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세상에 사랑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날입니다,

당연히 하느님도 우리 편이 되어줄 것이니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평화를 기원해 봅시다!”


남북의 두 정상이 서울과 평양에서 서로를 다독이고 있었을 때 괌에서 출격한 스텔스폭격기들이 북한영공으로 다가왔다.

엔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편대가 각기 2000파운드의 핵무기를 탑재한 채 12200m의 고고도로 비행하면서 다가왔다.

그런데 북한영공으로 들어간 B‒2 폭격기 편대가 십여 분이 지나도록 되돌아 나오지 않았다.

한국공군의 장거리 대공감시 레이더망에서도 잡히지 않던 B‒2 편대의 이동경로는 경악스럽게도 평양 상공을 한 바퀴 비행한 후에 유유히 동해상으로 빠져나왔다.

정 위원장과의 통화를 마친 후에야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은 민 대통령은 심장이 멎는 듯한 큰 충격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후의 특이 동향은 감지되지 않았다.

정 위원장의 향후 선택이 걱정된 대통령은 직통전화기를 다시 만지작거리면서도 선뜻 수화기를 들지는 못하고 머뭇거렸다.


“대통령님 아마도 북한은…”

최 실장과 함께 대통령을 마주 보고 서있던 국방부장관이 신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했을 때 수화기를 들어 올리려던 대통령의 오른손이 멈추었다.   

“계속 말해보세요?”

국방부장관이 다소 경직된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B‒2는 스텔스 폭격기이기 때문에 평양상공에 진입한 사실을 한미연합사가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우리조차도 몰랐을 극비 정보입니다,

북한은 아마도 지금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최 실장도 조심스럽게 거들며 나섰다.

“대통령님! 북한이 모르고 있다면 이 시점에서 굳이 우리가…”

생각이 정리된 듯 대통령이 집무책상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지금은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우리 모두의 침묵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최 실장이 대통령 앞으로 한 발작 더 다가서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입니다만 북미 간의 전쟁에 대해서 대단히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던 미 국방부장관의 태도로 볼 때 이것은 어쩌면 뉴프레지 대통령을 배려하는 마지막 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 실장의 이 말에 국방부장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표하는 말을 했다.

“실장님의 의견에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작전을 수행하던 폭격기 편대가 평양상공을 진입하고서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빠져나온 걸 보면 펜타곤의 명령이 그렇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

대통령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들의 추측이 진실이기를 기대하는 표정이다.

“큰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선제공격은 피하면서도 뉴프레지의 체면을 살려주는 이른바 어른의 백악관 어린아이 달래기란 말이죠,

끝까지 전쟁의 명분을 제공해주지 않은 북한당국의 인내심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잘하면 메리 크리스마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메리 크리스마스 말입니다!”  

모두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평화를 위한 침묵 모드에 동참했다.


드디어 성탄절 아침의 새벽 동이 트자 집무실에서 꼬박 밤을 지새운 대통령 일행을 위하여 영부인이 손수 샌드위치와 커피를 만들어 왔다.

대통령집무실의 바로 위층으로 관저가 옮겨온 이후 영부인은 이렇듯 몸소 간식을 준비하는 등 지근에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집무실의 공기를 팽팽하게 짓누르던 긴장된 분위기 탓에 쟁반만 내려놓은 채 서둘러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렇잖아도 커피 한 잔이 몹시도 그리웠던 대통령이 커피 잔을 들면서 또다시 기대 섞인 발언을 했다.  

“이제 날이 밝았으니 우리나라를 뒤덮었던 전쟁의 먹구름도 물러갔겠지요?

암요! 떡하니 교황님께서 우리 땅을 지키고 계시는데 성탄절 폭죽놀이는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잔뜩 기대 섞인 표정으로 최 실장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예 지금부터는 교황님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간밤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2029년 성탄절 아침의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자연스레 세계인들의 시선은 교황이 머무르는 평양을 항해서 집중되었다.

실제로 어젯밤 스텔스 폭격기가 평양상공을 진입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을 통틀어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교황의 제2차 집결지인 능라도종합경기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황을 따라서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능라도종합경기장 인근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 구름같이 몰려든 군중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평양시민들이었다.

오만여 평에 이르는 운동장의 상공에는 대형 애드벌룬에 매달린 평양대기도회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위풍도 당당하게 떠있었다.

구십아홉 개에 이르는 운동장의 문을 통해서 끝도 없이 사람들이 밀려들자 십오만 석의 좌석은 이내 만석이 되고 말았다.

앉을자리가 없어 뒤쪽에 서있는 사람들만 해도 족히 수만은 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오전 열한 시,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교황과 함께 정 위원장이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면서 입장했다.

백악관의 상황실에서도 전면에 부착된 대형 TV모니터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악관의 참모들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뉴프레지만큼은 달랐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기가 그의 얼굴 표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대체 교황이 언제부터 독재자의 후원자가 되었지?

저 늙은 교황은 중증 치매에 걸린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교황이란 작자가 어떻게 사탄의 무리와 한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뉴프레지의 빙정거리는 듯한 말을 튼볼이 곧바로 받아서 맞장구를 쳤다.

“이 모두가 한국정부의 농간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들이 기획한 정교한 각본에 의해서 세상 사람들이 놀아나고 있어요,

수소폭탄으로 일본을 위협한 독재자가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세상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백악관의 이런 푸념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지금 능라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감동적인 장면에 푹 빠져들었다.

교황의 기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들이 사라지게 해 달라는 간청으로 일관했다.

CNN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들이 정조준하는 카메라의 방향은 정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인사들이 두 손을 모은 채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능라도에 운집한 이십만의 인원이 함께 기도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종교생활을 하지 않던 북한사람들이 갑자기 독실한 가톨릭신자라도 된 것처럼 교황의 기도에 동참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갈망하는지를 모든 지구촌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백악관 상황실의 분위기는 몹시도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자칫 미국이 악당으로, 북한이 그 반대편에 선 선량한 피해자로 비칠 수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자 뉴프레지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봐요 튼볼 보좌관!

저 교황 영감탱이가 대체 언제 떠나지?

차라리 저 미친 영감이 떠난 뒤로 폭죽놀이를 연기하는 것은 어떨까?”


팔짱을 한 채 뒤쪽의 벽에 기대어 있던 튼볼 보좌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문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의 농간에 꼬리를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미군단독으로 수행하는 전쟁은 자칫 베트남전에서처럼 수렁에 빠질 수가 있어요,

교활한 시 주석이 또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요”


이때 뉴프레지의 옆 자리에서 내내 TV 모니터만 응시하던 국방부장관이 이번에는 작심을 하고서 말문을 열었다.

“어쩌면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와 맞서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이미 그렇게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도 있습니다,

자칫 3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어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실익도 발생하지 않는 이 전쟁은 이제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백악관의 참모들조차도 온통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서자 뉴프레지가 짜증이 났던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면서 워룸 안의 참모들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거친 목소리로 질책했다.

“이런 겁쟁이들! 초강대국 미국이 고작 북한 따위 하나를 어쩌지를 못해서 쩔쩔맨다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야!

국방부 장관! 당신은 나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마음대로 씹어먹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B‒2 폭격기 편대가 평양상공을 한 바퀴 순회만 하고 빠져나왔다는 것이 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국방부장관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로 앉은자리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평양에는 미국시민을 비롯하여 수많은 세계인들이 교황과 함께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폭격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드디어 뉴프레지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감히 미합중국 대통령의 명령을 씹어 먹은 자가 또박또박 말대꾸는 잘하는구먼!

국방부장관! 내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 결정하시오!

오늘 크리스마스가 끝나기 전까지 폭죽놀이를 시작할 수 있겠소? 없겠소?

자신이 없으면 당신은 아웃이니까 분명히 말하시오!”


흥분하면서 다그치는 뉴프레지와는 달리 정작 이번에도 국방부장관은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단호하게 밝혔다.

“그렇다면 난 이 시간부로 당신의 국방장관이 아닙니다!

세계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당신은 지금 이성이 아닌 감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국민들이 부여한 미합중국 대통령의 권한을 당신의 사적인 감정을 위해서 행사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이 말에 충격받은 뉴프레지 대통령이 워룸 상황실의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자 그제야 백악관 참모들의 표정이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주류 언론에서도 백악관에 남아있는 유일한 어른으로 지목했을 만큼 국방부장관의 판단력은 늘 신중했다.

그 덕분에 뉴프레지가 백악관의 워룸을 나간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SNS X경질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보수매파의 상징과도 같았던 튼볼 국가안보 보좌관이 특유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미국의 진짜 군인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군!’


2029년의 긴박했던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상황도 크리스마스가 지난 이후로는 확실히 호전되었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국방부장관을 해임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했지만 그것으로 성탄절 폭죽놀이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초강대국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경제적인 압박으로 북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다시 옥죄기 시작했다.

다시금 몰려오는 이 위기상황을 남과 북은 코리아연방이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대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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