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푸른 뱀의 해라는 2025년 을사년은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한 해로 남을 것 같다.
봄에는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고, 여름에는 인생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특별한 생일을 맞이했다.
을사년에 태어나 육십 년 만에 갑자(간지)가 한 바퀴 순환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다는 환갑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가 다 가기 전, 둘째가 식을 올렸던 바로 그 장소에서 우리 집 맏이 딸아이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혼주덕담을 해야 될 것 같은데 한 해에 두 번 연속으로 하려니 민망한 생각은 들지만,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느냐는 질책이 두려워서라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라서 그런지 마음의 부담은 줄었다지만 역시 딸아이를 시집보낸다는 감정선의 차이는 숨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필 집안의 자금사정이 말이 아닐 때 집안의 대사가 연속으로 이어져 남들이 들었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의 지원밖에 할 수 없음에도 가장으로서 난 여전히 당당하다.
논리는 간단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속되어 있지만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보다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오래된 가장의 허풍스러운 큰 소리지만 어쨌든 우리 가족은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감내하면서 나름 슬기롭게 살아가고 있다.
아들의 신혼집은 자동차로 십오 분 거리의 신도시에 거주 중인데 아들 며느리가 마치 앞집 마실 다니듯이 번지르르하게 우리 집을 들락거린다.
결혼을 앞둔 딸아이도 같은 신도시에 살림집을 계약해 두고 지금은 우리 집에서 그냥 무료 하숙 중이시다.
신구세대 간 사고방식의 차이가 별로 없는 편이니 쌍방 간에 고리타분한 부담감 같은 것이 없는 관계라고나 할까!
우리 집안의 가풍은 한마디로 '과학적 사고방식'이다. 우리 전통문화에서 비과학적인 것을 배제하면서도 얼마든지 고유의 미풍양속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의 확고한 생활태도임을 자부한다.
가령 육신을 벗어난 혼령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얼마든지 차례상을 차릴 수 있고 "우리를 이처럼 행복한 세상에 나게 해 주신 조상님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와 같은 묵념의식으로 얼마든지 조상님께 감사를 표할 수 있다.
물론 차례상에는 기름진 전 종류의 음식 대신 요사이의 후손들이 즐겨 먹는 담백한 브런치로 대체하는 편이다.
죽음의 기일을 지키는 제사문화는 이미 혁파되고 없지만 돌아가신 분의 생일상을 차리고 아기 예수와 아기석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 생일축가를 부르며 그리워한다.
그런데 하물며 산 사람의 생일이야 말해 무엇하랴! 우리 집안에서는 생일이 제일로 성대하고 중요한 행사다.
오늘은 두 살 아래 터울인 아이들 엄마의 생일을 맞이하여 아이들이 예약해 두었다는 식당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집에서 이십여분 달려와 도착한 곳은 일본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고적한 분위기의 샤부샤부 식당이었다.
가로등도 없는 좁은 도로를 따라서 진입하는 열악한 도로 사정임에도 평일의 저녁 타임치고는 제법 손님이 많은 편이다.
테이블 위의 가스레인지를 위장하기 위하여 직사각 형의 판 안에 회색 모래를 가지런히 쌓아서 운치를 더한 묘미가 손님을 대하는 이 집 주인장의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골라먹는 풍성한 저녁 식사에 이어서 아이스크림 디저트로 개운하게 입안을 마무리한 후 준비된 작은 케이크가 탁자 위에 놓였다.
준비한 케이크에 달랑 초 하나를 꼽고 불을 붙이자 주변 손님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낮은 목소리로 아이들이 생일축가를 불렀다.
오늘의 주인공이 환한 표정으로 일어나서 촛불을 끄자 한아름의 꽃다발을 선물한 큰 아이에 이어서 둘째 내외의 선물증정식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아들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정성스럽게 꺼낸 카드를 애교스러운 표정으로 엄마에게 전하자, 아이들 엄마는 한껏 행복한 표정으로 봉투 속의 카드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변하면서 눈물을 글썽였고, 옆 자리의 나도 그만 숨을 멈추고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우리 부부가 콩알만 한 손주의 초음파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안 오늘 병원을 다녀왔다는 며느리로부터 이제 5주 차에 접어들었고, 내년 6월 23일 즈음 출산 예정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생일 선물을 받아 들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우리 부부는 한동안 말문을 열 수가 없었다.
가끔씩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친구들의 신생아 손주들을 바라볼 때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감동이 밀려왔었다.
그런데 내년 여름이면 우리 부부도 진짜 친손주를 안아볼 수 있다는 말에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전율이 몰려왔고 그 감동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굳이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당의 한편에 요람을 걸 수 있는 기둥걸이를 준비하고, 아이들의 그네를 준비하는 등 나름 미래의 손주들을 위하여 하나 둘 준비하면서 은근히 새 생명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삼십여 년 전, 우리 집안에 처음으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그때가 또렷이 떠올랐다.
뭔가의 분위기 전환을 위하여 집안에 활력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아이들의 울음소리만 한 반전 드라마는 없었다.
여러 어려운 사정으로 침울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을 때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집안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아이에게 집중되었고, 아이를 중심으로 집안이 돌아가는 신기한 현상이 지속되면서 침울했던 집안 분위기를 일거에 날려버리는 분위기 메이커가 바로 갓 태어난 아기였다.
이 와중에 아들 녀석이 방긋이 웃으면서 던지는 한마디가 의미심장했다.
"내보다도 아빠의 어깨가 더 무거워 보여요!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아빠!"
아들의 이 말속에서 자본주의의 음흉한 냄새가 내포되어 있음을 감지한 우리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요사이는 어느 집 할 것 없이 저출생시대가 보니 신생아이의 존재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졌고, 할비 할미로 불리어지는 우리 세대의 역할도 덩달아서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할비는 선택받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았다는 이유로 호주머니 속에 잔뜩 지폐를 구겨 넣고 대기해야 되고, 할미는 호출이 있을 때마다 땜빵 도우미로 달려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 아기의 태명은 정했냐?
여전히 초음파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연신 싱글벙글 미소가 떠날새 없던 표정으로 질문했을 때 아들 녀석이 "콩이가 어때요?"라고 대답했다.
"콩이라고?"
"아직은 콩처럼 작다는 뜻이지만, 한 알의 콩알이 무럭무럭 자라서 나중에는 수백 개의 콩알을 달게 되니까 콩처럼 잘 커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기로 했어요"
"부르기도 좋고, 잘 정했네, 앞으로 배 나올 때까지는 특히 조심해야 되는 것 잘 알지? 콩이 아빠는 콩이 엄마한테 스트레스 같은 것 주고 그러면 절대로 안돼!"
시어머니의 이 말에 잔뜩 장난기 어린 얼굴로 둔갑한 며느리가 아들을 빤히 쳐다봤다.
"오빠! 앞으로 나한테 잘해야 돼! 우리 콩이를 위해서 나한테 스트레스 같은 것 주면 안 돼!"
아들도 며느리의 배를 바라보며 바로 호응해 준다.
"그럼! 우리 콩이 엄마한테 스트레스 주면 안 되지! 나만 믿어"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삼십 년도 더 된 오랜 전 나의 모습이 오버렙되었다.
큰 아이에 이어서 연년생으로 태어난 둘째까지 나의 어깨 위에는 언제나 가장이라는 묵직함이 있었고, 아이들이 내 인생의 목적이 되었다.
지난 세월, 때로는 좌충우돌도 있었지만 어쨌든 '가정'이라는 명제를 향해서 달려왔듯이 우리 아들의 눈빛에서 당시 나의 각오가 아로새겨졌다.
난생처음으로 할비 할미가 된다는 설렘 때문인지 부푼 기대감으로 가슴속에서 모락모락 희망이 영글어 오르는 기분이다.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의 손주들이 태어날 때마다 이 심쿵 오묘한 기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생명이 태어나고 가족이 번성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다.
그나저나 "내보다는 아빠의 어깨가 더 무거워 보여요!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아빠!"라는 말이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네.
그래도 기분만큼은 진짜로 째지게 좋다!
손주들 필요한 것 사는데 보태라면서 시원하게 용돈도 찔러주고, 땜빵 육아 도우미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우리 부부가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면서 보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보태어졌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