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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기자 Jun 01. 2022

6. 시간을 달리는 기자

야구장의 뚝순이

취재(Pen) 언론에는 크게 종이 신문(지면)과 온라인 신문이 있다. 구체적으로 스포츠 분야에서 지면은 크게 여러 분야를 다루는 종합지와 스포츠 전문지로 분류된다. 그 외 온라인 신문은 자사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전송하는 온라인 뉴스 매체들이다. 

 

온라인 신문들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구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포털사이트에서 더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써야 한다. 이런 대학 교양 '미디어와 사회' 수업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부끄럽지만 내가 기자 생활을 하며 친 몇 가지 실수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다른 기자들은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무난하게 기사 작성을 해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대놓고 기자들의 실수를 까발려 기자들의 수치를 유발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내 치부를 이렇게 드러내는 것은 누군가 혹시나 나의 뒤를 따를 뻔한 이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한 번이라도 더 조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억울한 하루가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등에서 땀이 나는 느낌이다. 인턴 딱지를 떼고 수습기자가 되어, 선배도 없이 혼자 야구장에서 가서 기사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경기 전부터 모든 기사를 쓰는 마음이 후들후들 떨리고 긴장됐다. 경기는 무난하게 흘렀다. 점수차도 크지 않았고 투수전이었다. 오히려 1점차 접전이 나를 더 떨리게 했다. 1~2점차처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경기라면 최근에는 팀마다 이길 경우를 대비해 미리 2개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써두지만 그때는 그런 노하우가 없었다.

 

홈팀인 A팀이 B팀에 1점 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B팀의 마지막 공격인 9회초 2사 1루였다. 2볼-2스트라이크에서 투수가 던진 공이 주심에게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왔다는 판정을 받았다. 루킹 스트라이크 아웃. 3아웃이 된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포털사이트에 전송해야 하는 온라인 기자들은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고 몇 명이 기사를 송출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 하루 잘 넘겼다는 안도감이 3초도 안돼 깨졌다. 주심이 갑자기 두 팔을 가로저으며 양팀 감독에게 사인 미스였다는 사실을 전했다. 볼이라는 것이다. 공이 빠졌는지 심판도 잠시 헷갈려 고민한 끝에 판정을 번복했다.

 

이 때문에 경기가 끝난 게 아니라 3볼-2스트라이크, 절체절명의 풀카운트가 됐다. 주자는 결국 볼넷을 얻어 나갔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불행히도 그때는 아직 스포츠 기사에 댓글 칸이 있을 때였고 중계방송을 보던 일부 야구팬들은 이미 송출된 내 기사에 "아직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기사가 나왔다", "시간을 달리는 기자다" 등 다양한 댓글을 달며 나를 '놀려댔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2아웃이니까 경기가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절망적인 일이 발생했다. 그날 토요일이고 A 구장은 매주 토요일 불꽃놀이를 했다. 깜깜해야 불꽃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명탑을 꺼야 했다. 구장 조명탑이 꺼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자마자 조명을 하나씩 끄기 시작했다. 결국 조명이 꺼지는 상황에서 두 팀과 심판들은 어두워서 경기 진행이 되지 않자 조명이 다시 다 켜질 때까지 8분 동안 경기를 중단했다.

 

그 8분 동안 2년차 기자인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회사에 경위서를 내고(실제로 그 정도 실수로는 경위서를 내지 않지만 이 수습기자는 모든 걸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포털사이트에 기사 삭제를 요청하는 상황을 그리기에 8분이면 충분했다. 기사의 댓글은 계속 늘어갔다. 내가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사이, 영겁과 같던 8분 후 경기가 시작됐다.

 

1점차. 2사 1,2루. 한 방이면 동점이 되고 이미 송출된 기사가 거짓말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는 다행히도)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 

 

만약 경기 내용이 뒤집혔다면? 포털에 기사 삭제를 요청한 뒤 다시 써서 송출해야 한다. 혹은 기사를 삭제하는 대신 수정해서 재전송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기사 내용 수정은 최대한으로 피하는 게 내 원칙이다. 기사 흐름을 바꾸지 않는 오타, 아님 조금 상황 설명이 부족했다 싶을 때 내용 추가 정도로 나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있다. 온라인 기사는 누구든 송출 후에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스스로가 기사 수정을 잘 통제해야 한다.

 

미래를 달린 경우는 그 외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한 포스트시즌 때가 생각난다. 온라인 매체 같은 경우 포스트시즌은 어느 때보다도 손이 빨라야 한다. 기사를 여러 각도로 미리 써두었다가 경기가 끝날 때에 맞춰 여러 개의 기사를 한꺼번에 내보낼 수 있게 해둔다. (참고로 지면들은 회사 자체 마감 기한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포털용 기사를 따로 쓰기도 한다).

 

포스트시즌은 홈팀, 원정팀 기사를 모두 여러 개씩 준비하는데 어느 날 한 선수가 초반부터 잘했다. 그래서 그 선수의 활약 기사를 미리 써두면서 기사 내부에 일단 "C팀이 D팀을 ()-()로 이겼다"고 괄호를 활용해 최종 스코어를 대충 써놨다. 나만의 기사 틀을 짜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아뿔싸. 사정을 모르는 선배가 그 기사를 완성본인 줄 알고 5회도 끝나기 중에 송출했다. 다른 기사를 쓰느라 바빴던 나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기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이미 수십 개의 댓글로 채찍질당하고 있었지만 억울해할 수만은 없던 터. 후다닥 해당 부분을 뺀 뒤 ‘현재 C팀이 D팀을 O-O으로 이기고 있다’고 수정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다였다.

 

요즘은 대부분의 구장 조명탑이 LED로 바뀌어 한꺼번에 켜지고 꺼진다고 한다. 야구장 조명의 발전이 기쁜 건 야수들 뿐 아니라 기자인 나도 있다.

 

어느 일을 하든 수만 가지 실수를 하면서 배우겠지만 기자는 다른 일반인들에 비해 조금은 까다롭다. 대중들은 내가 1년차 초보인지, 5년차 이상 중고참인지를 알아봐주지 않고 알아볼 필요도 없이 평가한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 초보라고 해서 봐주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해서 데뷔해야 하는 것은 마치 연예인과도 같다.

 

한 선배는 말했다.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다. 줄이는 것, 그리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좋은 기자다". 기사를 쓸 때마다 항상 맞춤법을 체크하고 숫자를 더블 체크하며 그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실수를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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