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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기자 Jun 01. 2022

4. 제 학교가 어딘지는 아세요?

야구장의 뚝순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사의 꽃은 인터뷰인 만큼 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해왔다. 그 때문에 생긴 나의 인터뷰 실수 에피소드는 끝도 한도 없다.

그중에서도 내가 10년 동안 가장 잊지 말아야 할 지침으로 삼고 있는 실수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인턴을 뗀지 얼마 되지 않았던 비시즌 겨울. 

한 야구장에 기삿거리를 찾는 하이에나의 심정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기사를 갈구하는 꽃사슴 같은 홍보팀 직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기사가 하나라도 더 나오길 바라는 홍보팀과,

어떻게 해서든 좋은 기사를 하나라도 더 쓰고 싶은 기자의 마음은 

'재앙 같은 만남'을 낳았다.

 

홍보팀은 나에게 한 선수를 소개시켜주면서 인터뷰 좀 잘 해달라 부탁하고는 한 방에 선수와 나를 앉혀놓고 나갔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였다.

나는 선수와 추운 방에 마주앉아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몇 마디 이어갔다. 인터뷰이를 잘 모르는 기자들이 주로 쓰는 ‘근황’, ‘다음 시즌 각오’ 등 아주 전형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그 선수가 (아마도 참다참다) 한 마디를 던졌다.

"근데 제가 어디 고등학교 나왔는지는 아세요?"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했다. 그리고 나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어디서 쓸데없이 배운 '선수와 기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말이 생각난 것이다. 나는 "제가 왜 알아야 되죠? 포털에 치면 다 나오는데"라고 받아쳐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10년이 지났는데도 실제로 이불을 찰 정도로 부끄럽다.

 

선수가 어디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성격인지, 근황은 어떤지 등의 정보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기자의 기본이다. 당장 지금 인터뷰에서 출신교가 필요하지 않더라도 언제 어떻게 기삿거리로 연결시켜 써먹을지 모른다.

 

특히 경기장 안팎에서 타팀 선수들 간의 친목을 볼 때 바로 이들의 출신교, 혹은 출신지역이 같은지, 리틀야구단이 같았는지, 혹시나 상무 복무 기간이 겹쳤는지 재빨리 머리를 굴려봐야 한다. 나중에 그 선수를 만났을 때 상대 선수에 대한 칭찬, 평가, 조언 등을 물어봐 기사로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유명 선수가 둘 중 하나라도 끼어 있다면 무명 선수의 인터뷰를 할 때 아주 좋은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출신교 뿐 아니라 근황이 어떤지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팔꿈치 수술을 한 선수에게 다짜고짜 "이번 시즌 준비 잘 돼가세요?"라고 물으면 선수는 "이 기자가 나를 인터뷰하는 게 맞을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이마저도 너무나 수치스럽지만 내가 겪은 일이다.

 

돌아가서 나에게 자신의 고등학교를 물은 그 선수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다행히도 끝까지 얼렁뚱땅 인터뷰를 잘 마쳐줬다. 나는 나중에야 나의 과오를 사과했고 두고두고 놀림감이 됐다.

 

내가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야, 이 기자는 내 학교가 어딘지도 몰라. 너도 대충 해"라고 비수를 꽂는 식이다. '대충 해'라는 말에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하고 싶지만, 실제로 내가 대충 했었기에 나는 그저 다시 한 번 미안할 뿐이다.

 

한 번은 나의 실수가 아니라 상대의 실례로 인터뷰를 망쳤다. 비시즌 2군에서 훈련하는 베테랑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약속시간을 잡고 홍보팀의 차를 얻어탄 채 2군 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차를 대다가 자신의 차를 타고 있는 그 선수를 만났다. “어떡하지? 나 약속이 있는데”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선수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던 나와 홍보팀 직원이었다.

 

그 직원은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2군 구장에 남아 있던 다른 선수의 인터뷰를 얼른 잡아줬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선수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선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나의 질문 실수를 모두 이해해주긴 했지만, 다시 한 번 인터뷰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좋은 인터뷰가 나오기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그 뒤로 바로 완벽해질 수는 없었다. 나는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좋은 인터뷰를 위해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하는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여기자는 준비가 부족하고 모르는 게 보이면 선수들에게 좋은 놀림감, 먹잇감이 되기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일례로 한 선수는 새로 익혔다는 구종에 대해 설명을 하다 "누나, 근데 이거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어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당연히 알지”라며 그 선수한테 큰소리를 떵떵 치긴 했지만 솔직히 100% 알아듣지는 못했다. 한 베테랑 감독은 내가 투수 기용에 대해 질문을 하자 다짜고짜 "답하면 뭐 아냐"고 무시하기도 했다(많은 사람들이 '네가 어려보여서 그런다'고 달랬지만 '어려서 기자다운 대접을 받을 수 없다'면 그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야구기자를 시작한 후 처음에는 왜 좌투수가 좌타자한테 강한지, 왜 좌타자가 1루까지 도달하기 유리한지. 모든 것을 몸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이론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다 보니 머리에 과부하가 오는 일이 많았다. 사회인 야구라도 해야 하나 고민을 했을 정도다

.

하지만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있어 결국 사회인 야구는 포기했다. 대신 나는 알아도 모르는 척 최대한 잘 묻는 기자가 되기로 했다.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것 같은 티를 내면 "내가 다 알면 왜 묻겠어요?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대신 묻는 겁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나의 일이 독자들의 궁금함을 풀어주는 것이기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 번은 베테랑 선수가 나에게 “여기자들은 특히 야구장에서 아는 척을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해줬다. “선수들이 여기자가 소위 나대는 것을 보면 ‘야구도 안 해봤으면서’라고 욱하기 쉽다”는 것. 해보지는 않았어도 해본 사람처럼 이해해야 하고 안 해본 사람들을 위해 해본 사람처럼 전달해야 한다. 야구기자에게는 힘들지만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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