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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기자 Jun 01. 2022

5.이런 대화도 기사가 되나요?

야구장의 뚝순이

인터뷰를 하려고 다가가면 귀신같이 알고 도망가는 선수들이 있다.

 

인터뷰는 대중을 대표해서 그들을 상대하는 미디어의 권리라지만 거부하는 것도 선수들의 권리니 어쩔 수 없다.

어떤 선수는 "맨날 똑같은 질문을 받고 똑같은 답을 몇 번씩 하려니 힘들다"고 거절의 이유를 댄다. 선수는 한 명인데 매체는 수십 개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중에는 “신선한 질문을 가지고 오면 인터뷰를 해주겠다”고 협상을 하는 선수들도 있다.

 

어떤 선수들은 "경기 전에 인터뷰를 한 날은 꼭 성적이 안 좋아서"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선수에게는 큰 징크스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핑계 같기도 하다. 특히 스타 선수가 그렇게 말하면 “수십억 원의 연봉에는 경기 실력 뿐 아니라 팀을 대표해 미디어를 상대하는 역할도 포함돼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를 거절당하고 나면 좋은 기삿거리를 하나 놓쳐서 아쉽지만 매일 일희일비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고충도 조금은 이해가 되기에, 인터뷰를 거절하는 선수들은 최대한 피하고 우호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시도한다.

 

그리고 가끔씩 생각한다. "이들에게도 신인 시절이 있었을텐데..."

 

가끔 신인이나 2군에 있는 유망주 선수들을 보러 2군 구장에 갈 때가 있다.

입단 때부터 주목을 한몸에 받은 1라운더급 신인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인터뷰에 익숙한 이들도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팬클럽이 있는 선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마추어 전문 기자들과 인터뷰 경험이 많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2군 구장을 돌아다니는 내가 기자인지도 모르고 그냥 홍보팀 직원인가보다 할 때가 많다. 특히 비시즌 기삿거리를 찾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거나 개인 훈련을 하는 선수들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기자들은 직원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신인 선수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코치, 선배들에게 캐물어봤을 때 ‘크게 될 것 같다’, ‘떡잎이 좋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선수에게는 눈과 귀를 기울인다. 미리 안면을 터두면 나중에 유명해졌을 때 말을 건네기가 한결 쉽기 때문에 ‘얼굴도장’을 찍는 의미도 있다.

 

든 그렇게 다니다 잠깐 쉬고 있는 선수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프로에 와서 달라진 게 뭔지, 프로 훈련은 어떻게 다른지, 프로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훈련을 하고 있는지 등이 주 질문이다. 어린 선수들은 질문을 받으면 얼떨결에 대답을 하다가 용기를 내 묻는다.

 

"근데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내가 웃으며 "기사 쓰려고 묻죠"라고 하면 한 번 더 묻는다.

“기자셨어요?”. 그리고  질문한다. "이런 대화가 기사가 돼요?"

 

선수는 자기의 말이 기사 코멘트로 바뀌는 것을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거나, 거의 없었기 때문이리라. 특히 매체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기자수도 적었기 때문에, 이른바 비인기팀이라고 불리는 팀들은 그 팀만 전문적으로 파는 담당기자가 없어 그런 에피소드가 자주 생겼다.

 

한 선수는 아예 믿지를 않았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가면 구단에서 호텔 방번호 표를 기자들에게 공유해줬다(지금은 프라이버시 문제로 하지 않는다). 그럼 선수들과 연락하고 싶을 때 휴식시간을 맞춰 호텔로 전화해서 로비를 통해 방으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한 신인급 선수가 마무리훈련 연습경기에서 곧잘 하길래 궁금해져서 그 방에 전화했더니 그 선수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기자라고 하자마자 "잠시만요"라고 하더니 바로 옆에 있던 룸메이트 선배를 바꾸는 것이 아닌가. 기자가 자기를 취재할 거라곤 생각도 못한 것이다.

내가 다시 전화를 바꿔달라고 해 "난 당신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말하자 그 선수가 의아해하면서 대답했다. 

 

"저를 왜요?".

 

그때 그 어떨떨해하던 선수의 전화 인터뷰를 옆에서 듣던 선배가 단답형의 어리숙한 대답에 답답했는지, 전화를 가로채 “이 선수의 장점은 이것이고 저것도 잘한다고 써달라”며 대리 ‘홍보’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런 선수일수록 최대한 구체적이고 많은 정보를 넣어 더욱 완성도 있는 기사를 만들어주려 애쓴다. 그 선수가 기자에 대해, 그리고 기사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가지고 앞으로도 취재라는 말에 도망가는 대신 따뜻하게 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현실은 아쉽게도 그런 일이 많아질수록 유명한 선수가 되면서 기사에 익숙해지고, 기자들에게 모두 친절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 사이에서 ‘저 선수 불친절하다’고 소문이 나는 것도 순식간이다. 그런 선수들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은 이상하게 묘하다.

 

한 선배가 했던 말도 생각이 난다. "선수와 기자는 불가근불가원이기도 하지만 운명 공동체다"

 

선수가 없으면 우리는 기사를 쓸 수 없고 기자가 없으면 선수들은 활약을 해도 기사로 조명받을 수 없다. 기자들은 조금 더 완성도 있고 자극적이지 않은 기사를 쓰고, 선수들은 최대한 기사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협조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보충 설명을 하자면 나를 왜 인터뷰하냐던 선수도 크게 돼서 인터뷰에 통달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선배에게 인터뷰 스킬을 배웠는지 둘다 ‘국어책’ 같은 인터뷰만 하기로 야구계에 소문이 났다. 인터뷰 후에 “내 대답 재미없지?”라고 묻는 것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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