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짐 빠짐없이 다 챙겼어?"
"네, 다 챙겼어요."
2020년 9월 초,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때 나는 낭트(Nantes)에서의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학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자,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낭트의 신학교에서 받아주겠다고 메일을 보내준 건 깜짝 놀랄 일이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8월 여름방학 동안 기존에 배웠던 신학과 철학 과목을 열심히 복습했고 마침내 낭트로 출발하는 날이 다가온 것이다.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신부님들은 함께 기뻐하며, 나를 낭트의 신학교까지 차량으로 바래다주었다. 짐을 다 싣고 두 시간 반 동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날씨는 맑았고, 낭트라는 도시는 넓고 깨끗한 이미지였다. 개인적으로 파리보다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많은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차량안내를 하고 계셨다. 직접 신학교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설렜다. 직접 메일로 나를 받아주겠다고 한 이곳의 담당 신부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환영합니다."
짧은 인사말 뒤에 비치는 미소는 긍정적이었다. 이어서 입학 미사를 드리고, 참석하신 분들과 함께 다과를 나누어 먹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교수님들께서 손님분들께 무사히 돌아가시라고 인사를 드린 후, 입학식의 모든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나도 우리 신부님들과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다. 앞으로 주중에는 이곳 낭트에, 매주말마다는 신부님들이 계신 곳으로 왔다 갔다 할 예정이라서, 신부님들과 오래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헤어지는 순간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손님들이 떠나가자, 학교는 고요해졌다. 이어서 교수님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올해 새로 입학, 편입한 학생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아시아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프랑스 본토 사람, 레위니옹 섬에서 온 사람, 모리셔스섬에서 온 사람 그리고 나 한국 사람.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외적으로는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인종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많은 경우, 동료학생들이 한국은 어떻냐며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부담 없이 알려주곤 했다.
자기소개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많이 떨었다. 외국어로 하는 부담감도 있었고, 그걸 알아채는 주변사람들이 있을까 오히려 더 '괜찮은 척'을 하려고 하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것이다. 소개를 하러 강당 무대 위로 올라서자 수많은 눈동자는 나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들은 나에게 마치 '말을 잘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는 듯해 보였다. 그 눈동자들을 보자마자 나는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주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나를 지배했다. 떨린 목소리 없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동료학생들의 질문도 성공적으로 받았다. 무대에서의 짧은 경험은 이곳 낭트에서 나 혼자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욕심내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그리고 무엇을 하든 양심적으로 하자.'
이 두 가지만은 지키면서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낭트에서의 삶은 이렇듯 나의 다짐과 함께 시작되었다.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길을 걷는 나로서는 하느님의 힘이 필요해서 매일 기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학교에서 공동기도 때마다 연주하는 하프는 그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워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가끔씩 그 선율이 그립기도 하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서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다고 믿는다. 성당에 다니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고, 일상 안에서 모범이 되는 분들을 만나고, 우연히 수도원을 알게 되어 입회하게 되고, 프랑스로 보내져 학업도 하게 되는 이 모든 순간들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 있었던 나에게 하느님이 준 선물은 '나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작업'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계속 하느님을 믿고 살아갈 수 있었다.
외국어로 신학이라는 과목을 배운 다는 것도, 고등학교 때 성적이 우수하지 못했던 나의 약점을 채워나가는 작업과 마찬가지였다. 거의 매일 밤 머리가 지끈거리게 아팠다. 낭트의 신학교에서 수업은 오프라인 수업 절반과 온라인(Zoom) 수업 절반 정도로 배정되었는데, 매일 숙제 양이 많았다. 공동 체육 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숙제 걱정을 할 정도였다. 교회 법 조항이나 성경 해설 부분을 공부할 때는 인터넷으로 한글 번역 후 추론을 하며 조금씩 이해해 갔다. 시험을 칠 때는 쓰기보다 말하기 시험이 더 어려웠다. 나름대로 시험을 치르고 공부하면서 낭트 신학교라는 곳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 2021년, 신부가 되기 이전 단계인 부제 서품을 받게 되었다.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에게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