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과 안이 속에서
욕심을 부려 필라테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 근력운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근 감소가 눈에 보일 정도가 되자 겁이 났다. 근력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을 찾아다닌 지 몇 달, 겨우 마음에 드는 필라테스 학원을 찾았다. 마음에 든다는 것은 깨끗한 시설과 자상한 강사 그리고 가까운 곳을 말한다. 비용도 만만치는 않다. 강사는 친절하게 몸의 불편한 곳과 운동 이력 등을 물어보았다. 비용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의 구조를 컴퓨터로 측정했다. 아, 내 생각만큼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목은 앞으로 3도쯤 수그러지고 오른쪽 어깨는 2도쯤 올라갔네요.”
“골반도 2도쯤 오른쪽으로 틀어졌어요!”
순간 당황했다. 무슨 옷을 입어도 그리 나쁘지 않은 체형이라 내 몸의 균형이 꽤 괜찮은 편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팔자걸음이 되지 않도록 모델처럼 두 무릎을 살짝 스치며 걸으려고도 노력했다. 스스로는 바르게 걷는다 생각해도 몸은 한쪽으로 계속 쏠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 걸음뿐이랴! 삶의 길도 그렇지 않았을까? 제대로 가고 있다고,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의 궤적도 어느 한 편으로 치우쳐진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혼란스러웠다. 낯설기는 하지만 필라테스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날의 충격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몇 날을 그냥 보냈다. 그러다 문득 불안이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이 가을을 리셋해야 한다고.
9월 들어 드럼 클래스를 시작했다. 사실 오래전 우울의 늪에 빠졌을 때 한두 달 드럼을 배우기는 했다. 그때는 꼭 드럼을 배우겠다 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춥고 어두운 계절, 새로 시작한 이국땅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가까운 지인은, 맥 놓고 있는 나를 달래 주려고 애를 썼으나 여전히 세상은 잿빛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러면 너를 두들기든 세상을 두들기든 실컷 두들겨봐! ’ 라며 드럼 선생을 소개했다. 아쉽게도 길게 배우지는 못했다. 몸치이고 음치인 나에게는 슬로우 고고까지는 가능했으나 셔플 리듬부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두들기는 것은 내 적성에 맞았다. 아마도 드럼을 치면서 내 안에 억눌린 무언가를 풀어냈던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리듬을 타기 위해 다시 드럼에 도전한다. 리듬을 혼자 잘 타는 중학생도 있고 솔로곡을 연습하는 앞선 사람도 있다. 나는 초보다. 삶은, 나이가 들어도 나는 항상 초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아 고맙다.
가까운 문화센터에 가서 ‘살아갈 날들을 위한 읽고 쓰기’ 수요 책 모임에도 신청했다. 석 달 동안 소설과 에세이 두 편씩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모임이다. 한때는 시와 인문학을 공부하는 수요모임을 주도한 적도 있고 또 한때는 고전을 강독하는 더 클래식(The Classic)이라는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얼마 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남들은 이 책에서 다루는 이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책을 읽지 않은 친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때 이 수요모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읽지만, 누군가와 토론한다거나 독후감을 말해야 할 때는 늘 부담감이 생긴다. 그것은 나의 어눌한 말솜씨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다른 젊은이들처럼 빨리 재치 있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는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떻든 나는 다시 나의 지적 허영을 위해 리셋 중이다.
오롯하고 조용한 추석 아침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노을과 함께 걷기 운동을 끝냈다. 아이들은 어제 다녀갔고, 송편이며 부침이며 남은 음식은 아이들의 여운과 함께 점심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오붓한 날에는 옷장을 정리하거나 책장 정리를 하는 편이나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하고 앞으로 달려갈 채비를 한다. 새로운 도전들이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걷기와 빵 굽는 일과 꽃 가꾸는 일과 함께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