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푸른 사과를 읽다
웰컴센터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친구처럼 보이는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두 분이 함께 오셨네요. 보기 좋아요!’ 부러운 내가 먼저 말을 건넸고 그들은 ‘혼자 오는 것 잘 안되던데, 참 부러워요!’라고 답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가끔은 본인이 할 수 없는 것, 하지 못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사는가 보다.
웰컴센터를 나와 붉은 패랭이꽃과 자작나무가 있는 플라워가든을 지나니 본관으로 가는 워터가든이 나왔다. 마치 본관이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요하고 눈부신 물의 정원이었다. 자연환경과 본관의 인공 건축물을 반사하고 있는 수水공간. 마치 안과 밖, 자연과 건축의 구분이 사라지고 주변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빨간색의 아치웨이(Archway)가 물 위에 그림자를 내리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특징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지점이었다.
본관에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의 10주년 기념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작품들은 초기 도시 게릴라 주택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풍경을 창조하는 공공건축, 세계 공공장소에 대한 도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역사와의 대화 건축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응모전에 여러 번 실패하기도 했지만, 건축의 공공성을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다던 그의 도전정신은 여전히 대지와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었다. 사실, 안도 다다오 작품은 제주도 본태박물관에서 처음 만났다. 노출 콘크리트와 물과 하늘을 연결한 박물관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건축물과 전시 내용을 보면서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도전을 끊임없이 이어 왔음에 감동하였다.
내부 관람을 끝내고 카페테라스에 나와 커피 한잔을 마신다.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새하얀 구름과 물과 산,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여기 있다. 물 위에 비친 두 그루의 나무 그림자까지. 역시 하나보다 둘이 보기 좋다. 둘이 되지 못한 나는 오늘도 혼자만의 시간을 아끼며 물소리 바람 소리를 담아 본다. 좋은 곳이다.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아쉽게도 장마 관계로 빛의 공간은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사각형의 콘크리트 건물만 바라보다, 천장의 십자가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어떤 느낌일까? 뭐라고 말을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출구에서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야외 조각 <청춘>을 보며 울만의 시구절을 떠올려보았다. ‘청춘은 삶의 한 시절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 그런 것이 아니다;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 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 가나니…’
특히 ‘안테나를 올리고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라는 말은 많은 용기와 위로를 준다.
오길 참 잘했다. 피부 알레르기로 고생하던 중이었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집에만 있는다고 빨리 낫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예정한 대로 산(SAN)에 다녀오자고 나선 걸음이었다.
나이를 핑계로, 때로는 안락함을 우선으로, 자꾸만 게을러지는 나를 다시 한번 추스르며 발길을 돌렸다. 청사과처럼 푸르고 무르익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인간과 사회를 꿈꾼다는 안도 다다오. 뮤지엄 산(SAN)과 푸른 사과는 오랫동안 내 마음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
*사무엘 울만의 시구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