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건가 봐. 기쁨이 줄어드는 것' (인사이드 아웃 2)
해외에 사는 손녀가 여름방학 동안 서울에 들어왔다.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이벤트 같은 만남을 위해, 아이와 함께 무얼 하면 좋을까 미리부터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박물관도 가고 과학 교실도 참여하고 책방에 가서 책도 고르고 그러다 심심하면 쿠킹재료를 사서 빵을 굽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정을 모두 비웠다.
며칠 전, 열 번째 생일을 보낸 아이. 키는 일 년 사이 또 자라 거의 170센티가 되게 커버렸다. 이제는 사춘기를 앞둔 아이이기에 이전과는 다른 계획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아이와 함께 몇 개의 계획을 세우고 우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마침 <인사이드 아웃 2>가 상영되고 있었다. 오래전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사람의 감정과 자아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은 심리학적 개념들을 어떻게 만화 캐릭터로 보여주는지 자못 궁금했다.
사춘기를 맞은 라일리의 감정 센터에 기쁨이 소심이 까칠이 등 기존 감정 대신 불안, 따분, 부러움, 당황과 같은 새롭고 복잡한 감정들이 들어와 감정제어본부를 장악한다. 특히 불안이는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느끼는 라일리의 자아를 멀리 내보내고 ‘난 아직 부족해’라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낸다. 무얼 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열등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 과도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같지만, 실은 오늘날과 같은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도 이러지 않을까 싶었다. 어떤 성과에도 만족하지 못하며, 잘해도 더 잘해야 한다고 자신을 질책하는 고문 같은 자기 비난은 때로는 자기 파괴적으로 될 수도 있다. 아이는 아이 수준에서 나는 내 수준에서 영화를 이해했지만, 함께 웃는 장면은 비슷했다. 잘 만든 디즈니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지나친 불안이나 부러움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엿보이는 장면들. 특히 불안이라는 개념을 흉측하고 두려운 감정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왠지 사랑스럽고 때로는 안쓰러우며 귀여운 외모의 캐릭터로 묘사한 점. 어쩌면 앞으로 수없이 닥쳐올 불안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을 해도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자아의 혼란을 경험했던 시절, 사춘기. 그런 시기를 겪으면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던 경험들이 모여 오늘의 나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를 도전하게 만든 힘은 불안감이었다. 나태해지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내게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하는 불안이 내 손을 잡으면 더럭 겁이 났다. 그러면 나는 다시 책상을 정리하고 자세를 바꾸고 새로운 다짐을 한다. 지금도 그런 편이다. 어쩌면 강박관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볼 때 참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내가 그리 싫지는 않다. 과도한 불안은 우리의 내면을 피폐하게 잠식해버리기도 하지만, 적절한 불안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기쁨도 줄어들고, 나이가 들면 맘껏 걷고 달리던 다리도 좋았던 시력도 선명하고 반짝거렸던 기억력도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언젠가는 하나씩 잃어갈 것이다. 존 릴러드 기자가 말한 것처럼 나이 들어 알게 되는 것은,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막연한 두려움이나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편안해졌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아마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기억 속에 저장된 수많은 경험과 사건, 그리고 다시 마주하고 싶은 순간들이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즐겁고 슬프고 속상하고 아쉬웠던 때로는 화가 났던 기억들까지.
아이는 학교로 돌아갔다. 내년 여름방학 때까지는 또 기다려야 한다. 헤어지는 아쉬움은 남지만, 문득 어느 날 어떤 기억의 저장소에서 불안이를 보면서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