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것과 내 바깥의 것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대학로. 8월 마지막 토요일의 대학로는 싱그럽고 푸르렀다. 혜화역에서 내려 극장으로 걸어가는 길, 건물들은 나이 들어갔지만, 거리는 여전히 청춘이었다. 몇 년 만에 대학로를 걸어보는 것인지 까마득했다. 길목마다 옛 이름을 걸고 남아있는 소극장들이 반갑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연히 지역 구립 극단에서 창립 단원을 모집한다는 홍보물을 보고 지원했다. 학생과 성인을 포함하여 103명, 꽤 많은 지원자가 모였다. 실기와 면접을 보는 날, 명찰을 달고 대기실에서 순번을 기다릴 때 떨렸던 기억이 새롭다. 아직 대사를 외우지 못한 사람, 자신만만해 보이는 젊은이, 모두 그날은 경쟁 대상이었다.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하는 동안 얻는 즐거움이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전업보다는 늘 시간제 일이나 프리랜서 일을 선호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아직도 완성본보다는 진행형인 삶을 살고 있다는 변명인지도 모르겠다. 시험 운이 좋았는지 합격했다.
문제는 합격 통지받은 후부터였다. 왠지 갑자기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며칠은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왜 또 번거로운 일을 만들어 사서 고생하는 거지?’, ‘아니야, 이렇게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것, 내가 원하던 것 아니야?’ 며칠 마음이 요동쳤다.
지금껏 살아온 이력을 잠시 접어두고 다른 인생을 연기하는 것, 무대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 해보는 거야!’ 발걸음은 어느새 대학로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공연 관람이었다.
프랑스 고전 희극의 거장, 몰리에르의 연극 <강제 결혼>을 관람했다.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과 이국적인 분위기, 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지는 공연에 객석은 웃고 답하고 환호했다. 돈 많은 자린고비 영감 스가나렐의 ‘결혼을 할까 말까’, 인생의 코미디 같은 흥미진진한 플롯도 유쾌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을 보며 ‘연극은 내 안의 것도 보고 바깥의 것도 보게 한다.’라는 어느 배우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처럼 열정적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초보다. 스스로를 격려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감독님은 연기경력이 없는 사람들을 뽑았다고 했다. 연기 조금 한다고 나서는 자세를 경계하신 듯했다. 모인 사람들 모두가 초보라니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곧 다음 주에 대본을 주고 캐스팅한다니 또 긴장된다. 어쩔 수 없다. 이제 문간에 발 들여놓았으니 반은 시작된 셈이다. 달리는 수밖에.
연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보는 것, 그리고 그 삶을 통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질문을 하게 만든다. 대사와 기교만 있는 배우가 아니라 진정한 배우가 되기 위한 소양을 기르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미션인지도 모르겠다. 연극에서 나는 다시 인생을 배운다.
어두워지는 대학로, 거리는 여전히 청춘의 푸르름과 흥겨운 만남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 눈도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