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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Aug 27. 2023

연극에서 배우다

내 안의 것과 내 바깥의 것

 

 대체로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여럿이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무엇을 배우는 시간은 더욱 그렇다. 독불장군처럼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지만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 또한 소중하다고 생각되어 소그룹 모임이나 강의는 열심히 찾아다닌다.   

 요즘은 독서모임도 그만두고 드럼 치기는 소그룹이긴 하지만 결국은 자기 진도대로 나가는 것이라 그룹 상호작용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도 광주가 고향이라는 춘자 할머니 옆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는 일, 드럼 레슨을 받는 일,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는 일은 토요일에 만나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지난 6월에 '연극과 놀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연극으로 즐기고 나누고 행복한 관계 맺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아주 오래전 뉴욕에 거주할 때 기억이 떠올랐다. 뉴욕의 겨울은 늘 춥고 우울했다. 활력을 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간 직장인 연극 동호회. 그러나 연극을 하기에는 모든 것이 열악했다. 몇 명이 모이기는 했지만 연습장도 대본도 연출선생님도 여의치 않아 결국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기억.  연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보는 것,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될까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지금껏 살아온 나의 이력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인생을 연기한다는 것,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 연극에 한번 발을 담가 보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이 강의를 들었다. 

 첫날 연극놀이를 하고 와서는 온몸이 힘들었다. 안 쓰던 근육을 오랜만에 써서 생긴 일이란다. 수업은 놀이를 통해 연극에 필요한 기본 법칙을 익혀가는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과일 샐러드>, <나는 술래>, <천사와 악마>, <마피아 게임>, <젓가락 이용 거리두기>, <천사와 공주>등의 놀이를 통해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배우기도 했다. 몇 가지 기본 법칙도 배웠다. 

 매주 다른 회원들과 소그룹활동을 했다. 나는 자주 20대 젊은 여성과 한 팀이 되었다. 요즘 젊은이라고 하기에는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이었다. 그래도 10회를 끝내고 났을 때는 목소리에 힘이 생겨 있었다. 자기 안의 소리를 내본다는 것,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마지막날 우리는 서로의 발전된 점을 격려하고 작은 쫑파티도 했다. 그리고 다시 9월 학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구내 극단 단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가슴이 떨렸다. 지원서를 작성해 메일로 보냈다. 


 

 8월 마지막 토요일의 대학로, 여전히 싱그럽고 푸르렀다. 구립 극단 단원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외출이었다. 지난번 지원한 구립 극단 단원모집에 운 좋게도 합격했다. 학생과 성인을 포함하여 103명, 꽤 많은 지원자들이 모였다. 실기와 면접을 보는 날, 명찰을 달고 대기실에서 순번을 기다릴 때 떨렸던 기억이 새롭다. 대학로에는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길목마다 소극장들이 여전히 이름을 걸고 남아있어 반갑기도 했다. 사실 몇 년 만에 대학로를 걸어보는 것인지 까마득하게 생각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혜화역에서 내려 극장으로 걸어가는 길, 건물들은 나이 들어갔지만 거리는 여전히 청춘이었다. 프랑스 고전 희극의 거장, 몰리에르의 연극 <강제 결혼>을 관람했다. 우선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과 이국적인 분위기, 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지는 공연에 객석은 웃고 답하고 환호했다. 돈 많은 자린고비 영감 스가나렐(우리의 예술감독님)의 ''결혼을 할까 말까", 인생의 코미디 같은 흥미진진한 플롯도 유쾌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을 보며 "연극은 내 안의 것도 보고 바깥의 것도 보게 한다"는 어느 배우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처럼 열정적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초보다. 대사와 기교만 있는 배우가 아니라 진정한 배우가 되기 위한 소양을 먼저 기르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미션인지도 모르겠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감독님은 연기 조금 한다고 나서는 자세를 경계하셨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초보라니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곧 다음 주에 대본을 주고 캐스팅을 한다니 또 긴장된다. 어쩔 수 없다. 이제 문간에 발 들여놓았으니 반은 시작된 셈이다. 달리는 수밖에...


 어두워지는 대학로, 거리는 여전히 청춘의 푸르름과 흥겨운 만남들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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