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햇살 아랑곳하지 않고 초록 덩굴을 축축 늘어뜨린 채 주홍빛 꽃을 피우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6월 말쯤부터 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요.
그 꽃이 마치 트럼펫 모양처럼 생겨서 영어로는 Trumpet Vine이라고 불린데요.
여름을 대표하는 꽃으로 담장이나 대문 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덩굴식물입니다.
하늘을 뚫을 듯 계속되는 능소화 줄기들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던 8월의 어느 날, 차를 타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중 저의 시선을 사로잡는 커다란 능소화 덩굴을 만났습니다.
잭과 콩나무에서 나오는 콩나무처럼 키가 어마무시하게 커요. 제 키로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 그 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홍색 꽃이 활짝 핀 모습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땅 위로 소복히 쌓인 꽃송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금방 떨군 꽃잎들
신기하게도 능소화는 꽃잎이 흩날리지 않고 꽃송이채로 툭! 하고 떨어진데요. 그래서인지 바닥에 떨군 꽃송이들은 꽃이 떨어진 후에도 여전히 예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싱싱하고 보기 좋을 때 송이채 떨어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해요. (생채기 하나 없는 예쁜 모습인데 이렇게 생을 다하니...)
나무를 타고 올라간 덩굴 아래로
떨어진 꽃잎들이 너무 예뻐서 하나를 손바닥에 얹었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져나 온 꽃송이를 물끄러미 이리저리 살펴보았어요. 꽃얼굴을 아래로 향하게 하니 고깔모자처럼 보여요.
땅에 떨어진 꽃이 아쉬워 한참을 손에 두고 보다가 다시 나무아래에 두려고 나무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나무 곁에 빙 두른 펜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봉긋하게 올라온 펜스 장식에 꽃송이를 살짝 얹어 보았어요. 오~~~
어떤가요? 아기요정 같지 않나요?
예쁜 꽃고깔모자를 씌어 놓으니 왠지 사람이 꽃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 같아 보여요.
살살 눈을 그리고 발그레
볼 빨간 시골요정! 뺨도 살살 동그랗게
그려주고 나니 왜 이리 사랑스러운 가요?
빙그레 요정
동그란 얼굴에 빙그레~소리 없는 미소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바람이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바닥에는 고개를 떨군 꽃송이들이 가득입니다.
고깔처럼 꽃을 세우니 모자 같기도 하고
또 꽃얼굴 쪽을 보고 있자니 노래하는 작은 입처럼 보이네요. 이 또한 눈을 그려주고 발그레 볼터치도 넣어주니 노래하는 한 소녀의 얼굴이 되었네요.
정말 사랑스러운 꽃얼굴이죠?
노래 부르는 얼굴
제게 노래를 불러주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표정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꽃들은 곧 저렇게 뜨거운 햇살에 마르고 거름이 되겠죠? 시들어서 떨어지는 꽃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아쉼을 남게 하는 것 같아요. 헌데 자세히 보니 능소화의 덩굴이 커다란 나무의 몸통을 칭칭 감아두고 있는 모습이에요.
와우! 멀리 서는 능소화나무 전체로 보였건만, 살펴보니 키 큰 나무를 능소화 덩굴이 타고 올라간 것이었어요. 또 다른 나무의 희생(?)으로 이런 예쁜 능소화덩굴을 볼 수 있었네요. 꽈배기처럼 능소화 덩굴이 키 큰 고목을 두르고 있었고, 그 덩굴 둘래 안으로 고목은 꽁꽁 숨겨져 있었어요. 덩굴 때문에 나무가 죽은 것인지 죽은 나무 둘레에 능소화가 자리 잡은 것인지 알 길은 없어요.
하지만 매우 궁금한 저입니다.
(ㅎㅎ 무슨 추리 탐정 같지요?그것이 알고 싶다!)
6월 말부터 두 달 넘게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는 오렌지빛 능소화!
긴 개화 기간이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라 불릴만합니다.
화려하게 피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능소화의 저 너머에는 나무의 희생이 있었음이 제겐 더 인상적인 발견이었네요. 여러분들도 능소화 덩굴을 만나시게 되면 덩굴너머를 한번 살짝 넘겨다 보세요. 분명, 덩굴에게 희생한 무엇인가가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보이지 않게 아름다움을 지지해 주고 있을 버팀목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