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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리다 Jan 09. 2024

겨울에 만난 박주가리

 Milkweed의 먼 여행

 추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잔뜩 세운 채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늘 오고 가던 골목이었는데, 골목 담벼락에서 파르르 떠는 물체가 보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찬 바람이 휙 하고 스치자 어느새 눈앞에 반짝이는 홀씨들이 둥실둥실 하늘을 날고 있네요.

너무도 신기하고 반갑기도 하여 가까이 가보니 여름내 예쁜 꽃과 향기로운 향으로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박주가리였습니다.

여름 한창이던 박주가리 꽃과 열매

박주가리 열매는 예쁜 꽃에 비해 울퉁불퉁 다소 거칠게 생겼어요. 겨울이 되자 어느새 수분을 다 잃고 씨앗을 맺었네요. 씨앗 주머니가 터져서 이제 저마다 다른 갈길을 가려던 중이었나 봐요. 단단하게 말라서 지금껏  품고 있던

씨앗 주머니는 이제 서서히

씨앗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호두 껍질처럼 단단한 씨앗 주머니
나폴나폴 춤추는 홀씨

명주실처럼 가느다랗고 반짝이는

솜털이 너무도 신기합니다.

만져보니 진짜 보드랍습니다.

살짝 톡! 하고 건드리니 퐁퐁 하나, 둘

공기 중으로 날아오릅니다.

옛날, 솜이 귀하던 시절에는 박주가리씨앗을

솜 대신 이용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바늘꽂이 안에 홀씨를 넣어 퐁신퐁신하게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가지런히 맞대어 있는 씨앗들

바람에 제법 날려버린 후

남은 씨앗들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단정하고 나란하게 포개어 있어요.

가볍고 가느다란 이 몸으로 어디로 날아갈까요?

얼마나 먼 여행을 떠날까요?


박주가리꽃말은 먼 여행이라고 합니다.

가을을 보내고 이 추운 겨울에

어디로 여행을 떠나려는 건지!

멀리 훌훌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이 씨앗들이 오늘은 참으로 부럽습니다.

저기 지구 반대편까지 갈지도,

따뜻한 남쪽으로 갈지도, 혹은 푸른 바닷가 근처로 갈지도 모르겠지요? 바람에 몸을 싣고

세상 아래를 내려다보며 훨훨 나는 기분은 어떨까요? 열매꼭지가 떨어진

씨앗 주머니를 집으로 데려왔어요.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만져보다가

피아노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지요.

헌데 신기하게도 실내 공기가 따뜻해서인지

 씨앗 주머니에서 꽃을 피우듯 퐁퐁퐁.

하나씩 둘씩 씨앗들이 스스로 빠져나오더라고요.

아뿔싸! 제 사소로운 욕심으로

 이 홀씨들의 생애 최초의 여행을 방해했네요.

내일은 공터에 나가서 이들에게

자유를 줘야겠어요.  

가고 싶은 그곳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폴폴 날리는 씨앗들

글. 사진 by 꿈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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