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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Jan 27. 2024

인스타그램 셀럽의 진실(완결)

인스타 셀러브리티


지난 시간 발행한 "인스타그램 셀럽의 진실" 속편입니다.



https://brunch.co.kr/@7615295/30



똑똑.


예지의 방문을 노크했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경찰 아저씨야. 좀 들어가도 되니?”


나는 다시 노크하며 말했다. 몇 초 정도 지나서였을까.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됐다니까요! 그냥 가세요! 어차피 도와주지 못하잖아요!”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옆에 있는 후배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는 예지 할머니와 어머니를 번 갈아가며 쳐다봤다.

신고해 놓고 그냥 가라니·····것도 매몰차게····· 오라고 할 땐 언제고.

 

그러자 할머니가 나서서 문을 열며,  “예지야 경찰관 왔으니까 말 좀 해봐!” 하고 말했다.


"아. 아! 열지 마. 열지 말라고!"


손녀 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할머니는 문을 활짝 열었다. 꽉 막힌 내 가슴도 열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셀럽의 방을 구경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검은 속마음을 숨기고는, 억지로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예지의 방을 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명 셀럽의 방은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다양한 옷, 소품이 가득해야 했다.(어디까지나 내가 상상했던 셀럽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예지의 방은.


그러니까 내 앞에 보이는 방은 셀럽의 공간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였다.


정면에 떡하니 가로막은 낡아 빠진 싱글침대와 우측 벽에 붙은 누런 색을 띤 목재 재질의 책상. 이게 전부였다.


아아. 추가적으로 정면에 보이는 창문 앞에 행거가 있었는데 그 위에 시커먼 겨울옷들이 걸려 있었다. 검은 옷이 방에 들어오는 햇살을 전부 차단하고 있었다. 이 방은 실로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 예지는 어떤가. 그녀는 낡은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누워 소리만 바락바락 지르고 있었다.


“나가! 나가라고! 빨리 나가!”


이불속에 가냘픈 18살 소녀의 형태만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김순경. 상황 근무자한테 그동안 이 집에서 신고된 이력 좀 조사해 달라고 요청해 봐.” 나는 옆에 있던 후배에게 말했다. 좀 더 면밀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잠시 후 후배의 무전을 받은 지구대 상황 근무자가 나에게 전화했다. 내용을 들어본 나는 더욱 놀라게 되었다.


예지가 신고한 횟수는 30번도 넘었다. 이쯤 되면 단골 고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모두 제대로 된 신고가 없었다. 정확한 피해 사실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대부분이 허위 신고였다. 한마디로 예지는 악성 신고자나 다름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짜 현실에서 피해당한 건지, 상상 속에서 피해당한 건지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 속으로 굳은 결심을 하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예지에게 말했다.


“예지야. 내 말 들어봐.”


“무슨 말이요. 그냥 가라고요. 제발.”


살짝 분노가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누그러뜨렸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예지에게 단호히 말하고는 예지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행해서도, “보호자께서도 잘 들으세요.”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 해킹이라면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병원 직원이 그런다고 하는데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도 있어요.”


예지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신고한 내용을 봤어요. 같은 내용으로 수십 번 신고했네요?”


“아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경찰 아저씨는 내 말 믿으려 하질 않잖아요!” 갑자기 이불속에서 예지가 소리쳤다.


나는 예지의 말을 자르고 계속 말했다.


“피해당했다는 근거를 나에게 말해봐.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처리해 줄 테니.”


“흥. 아무것도 하지 못하잖아요!” 예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는 그녀가 누운 침대로 가까이 가서 “너 핸드폰 줘봐. 내가 해킹당한 건지 봐줄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예지는 더욱 움츠리며, “됐다고요! 됐다니까요!” 하고 소리쳤다.


피해가 사실이라면 나에게 핸드폰 보여주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거부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해서 이젠 예지가 인스타그램 셀럽이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웠다.


“예지······ 너 허위 신고한 거지? 인스타그램 셀럽이니 뭐니 다 거짓말이지?”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예지를 추궁했다.


“뭐라고요? 이 아저씨가 진짜······”


“인스타그램에 댓글이 싫으면 비공개로 하면 되는 건데 말이야. 안 그래? 병원 직원이 널 스토킹 했다고? 어떻게 스토킹 했는데?” 나는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예지는 병원 직원만 일방적으로 비난했을 뿐, 스토킹 당한 사실은 말하지 않았었다.


“내 게시물 보고 그랬다고요!”


“너 게시물 사람들에게 보라고 올린 거잖아. 그런데 그거 보고 댓글 쓴 게 해킹이고 스토킹이야?”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고 다시 말했다. 그들에게도 정확히 확인시켜 줄 의도였다.


“만약 피해 사실이 이게 전부라면요. 이거 해킹 아닙니다.” 내 말을 들은 예지 할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예지를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예지 너. 제대로 이야기한다면 내가 들어주고 도움 줄 수 있는데······ 이렇게 행동하면 아무 도움 주지 않을 거야.”


나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한 번만 더 이렇게 신고하면 허위신고로 처벌할 테니 그리 알아. 알겠어!?”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 건지 예지는 나가라는 소리만 반복했다.






후배와 나는 집을 나가기로 했다.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을 때 예지 할머니가 다가왔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경찰관님. 우리 손녀가요. 학교폭력을 당했어요······ 그래서 지금 충격으로 저렇게 살고 있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할머니 모습이 이미 하늘나라 간 내 외할머니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저렇게 심각하면 병원 치료받아야 합니다. 집에 이렇게 두면 안 돼요. 이거 방치하는 거예요. 스스로 나아지지 않잖아요. 지금 보니까 예지는 망상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예지 엄마를 향해서도 말했다.


“어머니가 좀 나서야죠. 치료해야지, 안 그러면 예지 인생 진짜 망가집니다. 그리고 가족은 무슨 죄에요. 정신병 치료해야죠.


예지 엄마는 고개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만 나왔다.



후배와 집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내 뒤에서 예지 할머니가 말했다.

 

“그런데요. 경찰관님.” 그녀는 굽은 등을 억지로 피며, “그건 아니죠. 우리 손녀. 거짓말하는 애 아니에요. 진짜 해킹당하고 있었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 답변도 해줄 수 없었다. 경찰인 내 말보다 손녀 말을 더 믿는 - 아무리 설명해도 - 할머니에게 해줄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그 집을 나왔다.



이 사건은 신고자인 예지가 거부해서, 피해 사실 확인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처리했다. 그러고 나서 상황 근무자가 출력해 놓은 신고 내용을 훑어 보았다. 모두 내가 처리한 결과와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 사실 예지의 집은, 예지의 SNS 활동이 아니라 할머니의 기초생활수급비용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었다. 예지가 인스타그램 셀럽이란 말이나 해킹 피해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지금껏 예지와 그녀 가족에게 들은 말은 뭐란 말인가. 대체 예지의 망상은 어떻게 시작한 걸까? 왜 보호자도 예지가 인스타그램 셀럽이라 믿고 있던 걸까? 망상의 시작은 예지부터였는지, 그의 어머니, 할머니부터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느낀 건 그들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묘했다는 거였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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