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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Jan 18. 2024

어둠 속에 있던 망자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형사"


형사라고 하면 대개는 강력팀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형사가 재벌가에 맞서는 영화 <베테랑>의 황정민이나, 단신으로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범죄도시>의 마동석은 아니다.


경찰서 형사과에는 강력팀 말고도 또 다른 형사들이 있다. 그들이 근무하는 팀을 형사팀이라 부른다.



력팀이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범인을 검거하는 조직적인 수사를 한다면, 형사팀은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최일선 부서인 지역경찰체포해 온 범인을 주로 조사하는 일을 한다. (물론 죄명에 따라 담당 부서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럼 강력팀과 형사팀 중 죽은 사람을 더 많이 보는 부서는 어디일까?     


내 경험상, 형사팀이 압도적이었다.


강력팀이 보는 시신이 살인 피해자로 한정된다면, 형사팀은 온갖 이유로 죽은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살인 사건은 그리 자주 있는 범죄는 아니기도 하다. (물론 없어야 하겠지만)


게다가 자살은 물론이요, 지병으로 죽거나, 고독사까지 전부 담당하는 게 형사팀이다. 이런 사건을 흔히 변사 사건이라 하는데, 형사팀 업무 중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수사를 형사팀에서 시작했다. 많은 선배가 수사의 첫 시작은 형사팀에서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수사 기본을 다룬다고 해서 그렇다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수사과부터 시작해서 잘 적응하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형사팀이 다루는 사건 중 가장 까다로운 사건을 고르라고 한다면 '업무상과실치사'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공장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경우이다. 이때 수사 핵심은 회사 측에서 노동자에게 안전조치를 충실히 했는지, 여부이다.


사망자 처리부터 회사 과실 판단까지 여러 가지 따져볼 게 많아 초임 형사가 하기엔 부담스럽다.



우리나라 공장은 열악한 곳이 많다. 설마 모두 대기업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진 않을 거라 본다. 그런 이유로 나는 다양한 사망 사고를 보게 되었다. 지게차에 깔려서, 프레스 기계에 압사당해서, 덤프트럭 위에서 추락해서. 그리고 또. 음······ 너무 많아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다.  사실 끔찍했다.

  


그중에도 내가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있었다.


분쇄기 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던 사건이다. 사람 두, 세 명을 합친 크기의 암석을 고른 자갈로 만드는 곳이었다. 중소기업치고는 규모가 컸다. 큰 암석을 싣고 오는 덤프트럭이 한 번에 대여섯 대씩 오고 가고, 큰 암석도 자갈로 만들 정도이니 어느 정도 규모인지 대강 짐작할 거라 믿는다.


공장 안에 들어서면 정면에 암석이 들어가는 기계가 보인다. 2미터는 훌쩍 넘는 곳에 나팔 모양을 한 커다란 입구가 있다.


기계 속으로 암석이 떨어지고 나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분쇄한다. 격한 소리와 함께 암석을 배출한다. 그럼 처음 모습보다 작고 다듬어진 암석이 나오게 된다.

그러고 나면 컨베어 벨트를 타고 한참을 가다 다시 2미터 높이에 있는 두 번째 분쇄기로 들어간다. 같은 방법으로 세 번째 분쇄기를 거치고 나서야 고른 자갈로 탄생하게 된다.

    





나는 사고 소식을 듣고 공장에 갔다. 안에 들어가자 작업장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분쇄기가 떡하니 있었다. 바닥은 흙투성이였다. (아마 처음부터 흙이 있진 않았겠지만) 높은 천장에는 띄엄띄엄 형광등 조명도 달려 있었지만 넓은 공장을 비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공장은 어둡고 침침해 보였다. 조명 덕분에 분쇄기는 더욱 기괴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분쇄기 앞에 현장 소장과 119 구급대원. 그리고 지구대 경찰관이 있었다. 그런데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구급대원이나 지구대 경찰관이 먼저 시신을 확보하고 현장을 보존하는데, 공무원들만 있을 뿐 중요한 시신이 없었다.


"다친 사람 어디 있죠?" 나는 지구대 경찰관을 보고 말했다.


"아. 그게 말이죠······" 나랑 비슷한 또래였던 경찰관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현장 소장에게 물었다.


"여기 일하다 다쳤다는 분 어디 있어요?"


소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오른손을 들어 공장 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아!


그곳은 분쇄기가 있는 곳이었다. 그의 손은 3번 분쇄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 저 안에 있을 거예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쇄기 안에 사람이 있다고요?"     


실로 충격적이었다. 분쇄기 앞에 있던 사람들 모두 어쩔 줄을 몰라하는 표정이었다. 구급대원과 지구대 경찰은 분쇄기에 있는 시신을 두고 고민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어떻게 그 안에서 시신을 보존하며 꺼내야 할지 아무도 방법을 몰랐을 테니 말이다.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 나를 포함해서 – 없었다.     



나는 최초 발견자인 현장 소장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내가 본 건, 김 씨가 에어호스를 들고 일하는 거였어요. 저도 현장 여기저기 관리하다 보니 김 씨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겁먹은 표정으로 소장이 말했다.


"점심때가 됐는데 김 씨가 식당에 오질 않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물었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했죠.


나라도 가서 교대해줘야 할 것 같아, 분쇄기로 가봤습니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숨까지 내쉬고는,


“분쇄기에는 김 씨가 없었어요. 어디 있는지 찾아봤는데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보세요. 여기 어디 숨을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김 씨란 분이 왜 저기 기계에 들어갔다는 건가요?”


나는 손가락으로 3번 분쇄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이세요?”


소장은 이번엔 2번 분쇄기와 3번 분쇄기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기다란 컨베어 벨트였다. 벨트 위에 이미 분쇄되고 나온 암석이 드문드문 있었다. 나는 필시 저 암석이 벨트를 타고 다시 2미터 위로 올라가 다음 분쇄기로 이동하는 거라, 생각했다.


"2번 분쇄기에서 3번 분쇄기로 넘어가는 저 컨베어 벨트 위에 있는 작업화를 봤습니다."


 "작업화요?"


"예. 일할 때 신는 작업화요."


그는 발목 아래까지 오는 갈색 작업화를 들어 나에게 보여줬다.


"김 씨가 신던 작업화예요."    

 





피해자는 1번 분쇄기 기계 위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업무는 분쇄기 입구 흙을 에어호스로 털어내는 것이었다. 자기 몸의 반 정도나 되는 쇠로 된 에어호스를 들고 일한다.


암석이 분쇄기로 떨어지고 나면 나팔 모양 입구에 흙먼지가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무슨 약품이 섞여 그렇다고 했다) 입구가 막히지 않도록 에어로 흙을 털어내는 게 그의 임무였다.


이 사고는 여기서 일어났다. 에어호스가 어찌나 힘이 센지 – 내가 실제로 잡고 에어를 쏴보니 반동이 컸다 – 한 손으로 잡으면 순식간에 팔이 뒤로 밀릴 정도다. 완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에어호스 반동으로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암석과 함께 분쇄기 속으로 그만 떨어지고 만 것이다.



피해자는 3차 분쇄기 안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살아 있었다면 살려달라 외쳤을 게 분명하지만, 그런 기대는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시신부터 확인하죠. 그렇다고 기계 안에 둘 순 없잖아요."


내 옆에서 듣고 있던 과학수사팀 직원이 말을 꺼냈다. 그는 과학수사 방면에선 잔뼈가 굵었다. 아는 것도 많아, 초보인 내가 많이 의지했다. 그런 만큼 성격이 까칠하기도 했다.



우리는 기계 안에 있는 가엾은 피해자를 꺼내기로 했다. 소장이 분쇄기 문을 열었다. 2미터 높이의 분쇄기 내부는 다행히 아래쪽에서 열 수 있었다.


"덜컹"


둔탁한 소리와 함께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장이 랜턴을 가져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내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윽고 내 눈이 어두움에 점점 익숙해질 때쯤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뭔가 기다랗게 서 있는 게 보였다. 피해자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서 있는 게 아니었다.


두 발은 기계 바닥에 닿아 있지 않았다.

 


소장이 기계 내부를 랜턴으로 비추자 나는 할 말을 었다. 거기 있는 누구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시신은 기계 안에서 뭔가에 걸렸는지 매달려 있던 것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따로 있었다.


그는 얼굴이 없었다. 상체도 절반 이상이 없었다. 오른쪽이었는지, 왼쪽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흙먼지까지 뒤집어썼다. 처참한 시신은 뭔가에 걸려 떨어지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치 짐승 같은 무언가에 몸이 뜯겨버린 모습이었다. 처참했다. 그가 분쇄기 안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나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그가 김 씨라는 걸 아는 건 한쪽 발에 신고 있던 갈색 작업화뿐이었다.






"이 형사 내가 많이 생각해 봤는데. 유족한테 시신 보여주지 않는 게 좋겠어." 형사팀장이 말했다.


“그래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유족인데······”


“야! 그냥 하라면 좀 해!”


형사팀장은 뭐가 화난 건지 발끈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목소리 톤을 낮추고는, “이 형사. 너라면 말이야. 아버지가 저런 모습으로 죽었는데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어?


 제정신인 사람이 있겠냐고···”


“알겠어요. 팀장님.” 나는 그의 말에 순응했다.


“어떻게 저런 모습을 유족에게 보여줘. 안되지. 지금 그걸 보면 유족이 그 자리에서 쓰러질지도 몰라······”


팀장은 유족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유족은 오열했다. 나는 유족이 오열하는 소리를 한참 동안 들어야 했다. 결국, 이 사건은 회사의 과실이 인정됐다. 유족에게 금전적 보상도 주어졌다. 담당수사관 입장에선 비교적 잘 끝난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한 집안 가장이 죽었는데, 뭐가 중요할까. 금전 보상과 사람 목숨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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