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모가 사망했다는 신고로 현장에 나갔을 때였다. 어리바리한 신임 순경이 못마땅했는지 순찰팀장이 함께 나갔다. 그러곤 사망한 여성 앞에서 나에게 물었다.
“······”
“왜 대답이 없어?”
“팀장님 그게 말이죠······” 나는 우물 쭈물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변사 사건이 처음이라 뭐라 말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잠시 생각하고는 경찰학교에서 배운 대로 말했다. 사실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증거가 멸실되지 않도록 폴리스라인을 쳐야겠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슬며시 팀장의 눈치를 살폈다. 팀장은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 여기 방 안에서 얌전히 돌아가신 분인데, 폴리스라인을 한다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팀장이 말했다.
“아냐 아냐. 이 순경 그게 아니지.”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먼저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는 거야.”
지금까지 경찰 생활하며 죽은 사람을 정말 많이 봤다. 우리나라는 사망 사건이 생기면 경찰과 소방에 연락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대 경찰관이 가장 먼저 나와 확인한다.
핵심은 타살인지, 아닌지를 본다. 그러나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부검까지 해야 한다. 유족이 원하지 않아도 한다.
지구대는 그나마 괜찮다. 곧이어 오는 과학수사팀과 형사에게 사건을 넘기고 돌아오면 되니까. 하지만 담당 형사는 끝까지 처리해야 한다. 자살이라면 왜 그런 건지 알아내야 하고, 지병이라면 어떤 병 때문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게 형사의 일이다. 당연히 유족을 불러 조사도 한다.
그럼 모든 유족이 협조적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가족이 죽었는데 경찰이 왜 조사하냐며 항의할 때가 많았다. 그것까진 그래도 괜찮다.
조사해야 하는데 내 앞에서 오열하기 시작하면 – 유족의 아픔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 그만큼 일 처리가 늦어지게 된다.
나는 초임 시절 1년 6개월 지구대 생활을 끝으로 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했었다. 그때 본 사망 사건은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젠 하나하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도 형사로서 처음 나간 사건은 기억이 난다.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한여름 좁은 빌라에서 사망한 사람이었다. 50대 남성인데, 그는 혼자 살고 있었다. 유서도 없었다. 침대에 누운 채 죽어 있었다.
형사기동대 차를 타고 빌라 앞에 도착하자, 먼저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과 빌라 주민 대여섯 명이 보였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나는 정신 차릴 수가 없었다. 부패한 시신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누워 있는 시신은 얼마나 지난 건지, 얼굴은 두 배, 세 배 이상 부어올라 있었다. (여기서 부패가 더 진행하면 구더기가 나온다.)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솔직히 시신 앞에서 가엾은 생각보다 빨리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유족이 생각하면 나를 비난하겠지만, 그만큼 부패한 시신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초임 형사인 내게는 상당히 버거웠다.
나는 과학수사팀 직원에게 마스크를 빌려 쓰고, 선배 형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먼저 신분증을 확인해봐야 해. 죽은 사람이 맞는지. 그리고 왜 죽었는지 봐야겠지? 생전에 지병이 있을 것 같은데. 처방받은 약이 있는지 찾아보자.”
나와 선배가 집안 곳곳을 뒤졌지만, 약봉지는커녕 비타민도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생전에 쓰던 핸드폰에서 딸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우리 아빠가 죽었다고요? 아니에요. 우리 아빠 건강했어요. 지병도 없었어요.”
평소 왕래가 드물어 부친을 돌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가족도 남자의 사망 원인을 알지 못했다.
선배는 한숨 쉬며 “이 형사, 부검 영장 신청해야겠다” 하고 말했다.
우리는 경찰서에 들어와 유족인 딸을 조사하고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부검 영장을 만들어 검찰청에 접수했다. 부검 일은 바로 내일 오전이었다. 비록 내일 야간 당직이지만 오전부터 경찰서에 나와 있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선배와 함께 과학수사연구소로 출발했다. 전날 본 부패한 시신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제야 생전에 얼마나 외로웠을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한 30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연구소에 도착했다. 정문을 지나 중간쯤 갔을 때 전국 각지에서 온 병원 운구차가 보였다. 저기 있는 건물이 부검하는 곳인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건물 대기실에는 장례식 복장을 한 유족들이 앉아 있었다. 나처럼 사복 입은 형사들도 보였다. 나도 모르게 괜히 숙연해졌다. 내 사건 유족이 먼저 도착해 있어 앞으로 절차를 말해주고 대기했다.
그런데 내 느낌인지, 아니면 진짜였던 건지 모르지만, 부패한 시신 냄새가 대기실 안을 가득 채웠다. 마치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숙연한 마음과 반대로 악취 때문에 불쾌한 기분도 함께 들었다.
잠시 후 부검의가 나와 나를 맞이했다. 나는 간단한 사건 경위를 말해줬다. 수술 복장을 한 부검의는 나를 보며,
“시신이 많이 부패해서 특수부검실에서 진행합니다. 먼저 시신이 맞는지 확인부터 해주세요.”
나는 부검의 뒤를 따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 다른 문이 나왔다. 장소를 말해주는 이름만 없을 뿐,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는 통제구역 느낌이었다.
그곳에 앙상하게 부패한 남성이 누워있었다. 다시 보니 어제와는 또 다른 느낌을 풍겼다.
“예. 맞습니다.”
“그럼 나가 계시면 됩니다. 아니면 옆에서 부검하는 거 지켜봐도 괜찮아요.” 부검의는 마스크를 올리며 나를 보고 말했다.
“어떻게 할래요?”
나는 손을 흔들며, “아니에요. 나가서 기다릴게요.” 하고는 얼른 부검실을 나왔다. 도저히 그 어두운 곳에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실에서 앉아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부검이 끝났다. 정확한 결과는 몇 주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은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없었다.(부검한다고 모든 원인이 밝혀지는 건 아니다) 다만 타살이나 자살이 아니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사건을 종결했다. 유족도 반문하지 않고, 조용히 장례 치르길 원했다.
부검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옆에 앉은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처음 부검 가면 선배들이 내장탕을 사줬었지.” 그는 사악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제 그 내장탕 집이 없어졌네. 아쉽게 됐어.”
나는 속으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평소 식욕이 왕성한 나였지만 이날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견디기 힘들어?”
“아뇨. 괜찮아요.”
“그래. 이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면 형사 못해.” 선배가 창문을 열고 말했다.
“직업이라고 생각해.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어.”
그의 말에는 그간 농축된 경험이 묻어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운전하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있잖아. 내가 그렇게 많은 시신을 봤는데. 딱 하나 적응이 안 되는 게 있어.”
나는 잠깐 선배를 쳐다봤다. 그는 정면 도로를 응시하며 말을 했다.
“아이가 죽은 건······ 진짜 못 보겠더라고.”
“아이요?”
“그래. 10년 전인가? 아무 이유 없이 갓난아이가 죽었거든. 타살도 아니었어. 그냥 자다가 죽은 거야. 그래서 부검했지.
그 자그마한 아이를 부검했다고. 너 상상이 가? 아이 부모가 오열하는데 나도 눈물이 나는 거야······”
선배 말을 듣고, 절대로 나는 아이 죽는 건 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는지, 몇 개월 후 나 역시 여섯 살 아이의 죽음을 보고야 말았다.